"전 상주 자원봉사자 강석민입니다"
2026년 03월 12일
청주 흥덕구 봉명동엔 대우꿈동산이 있습니다. 1992년 소년소녀가정 자립 지원 목적으로 건립된 아파트형 주거 공간입니다. 故 김우중 설립자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와 연관이 깊은데요, 이곳은 6개월 만에 1백만 부 이상 팔린 인세의 전액 기부를 통해 건립된 자립 지원 복지기관입니다. 총 91세대 규모의 대우꿈동산은 소년소녀가정이 가족의 기본 생활 단위를 유지하면서 사회 일원으로 당당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죠. 500여 가구, 1,500여 명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한 한편,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다문화 한부모가정, 나아가 조손가정으로 입주 대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우꿈동산엔 든든한 오랜 지역 후원자님들이 많습니다. 여러 기관부터 개인 후원자까지 그 범위가 넓은 까닭에, 후원의 뿌리가 깊은 대우꿈동산에서 후원자 인터뷰를 출발하면 좋겠다며 은연중에, 그러나 확실하게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이곳에서 10년간 상주 자원봉사자로 지낸 강석민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이십 대 청춘을 아이들과 함께한 자원봉사자이자, 아이들의 꿈이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보태는 강석민 후원자님과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봤습니다.

지난달 12일, 대우꿈동산 사무실에서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Q. 후원자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제천시청 수도사업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우꿈동산 후원자 강석민입니다. 유년 시절을 잠깐 말씀드리면 아버님, 어머님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찍 돌아가셨어요. 이에 따라, 저와 두 살 어린 남동생 둘 다 제천시청의 사회적 지원을 받으며 자랐죠. 이후 제가 충북대 토목공학과로 진학하면서 제천시 사회복지관 추천으로 당시 대우꿈동산 대표님이신 유응모 오송종합사회복지관장님을 처음 뵐 수 있었습니다. 상주 자원봉사자로 합류할 수 있던 배경인데요, 사회복지 분야 수혜자로서 보답 또는 환원하고픈 마음이 컸습니다. 당장의 거주를 해결할 수 있는 이점도 물론 크게 다가왔고요.
Q. 지역 내 충북대 위상이 높은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저와 동생 모두 공부는 열심히 했죠. 쑥스럽네요. 제천시 사회복지관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바르게 클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토목공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기술 교과 선생님 도움이 컸습니다. 이공계에선 먹고사는 데 힘이 될 거라며 조언해 주셨거든요. 저로서도 뭐랄까요, 특유의 거친 분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참고로 동생은 청주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에요.
Q. 대우꿈동산 첫인상은 어땠나요?
당시로서도 기초적인 가정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육원은 공동생활이 보편적이잖아요. 반면, 이곳은 개별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가까운 공동체처럼 다가왔어요.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입주 가구 중 누군가가 못되게 구는 친구들로 곤욕을 겪으면 형들이 막아주기도 하면서 말이죠.
또 입주 가구가 새로 들어오면, 또래들이 방문해 자연스레 친해지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요즘엔 아파트 경우만 보더라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러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참,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다 같이 아파트 공동 물청소를 하던 일이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몰라요.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Q. 봉사자 일과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또래 상주 자원봉사자는 다섯 명 정도 있었는데요, 매일 저녁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가르쳐줬습니다. 5층에서 학년끼리 모여 다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고요, 아이들은 나중에 놀더라도 일단은 공부방에 들러야 했어요. 반강제였죠.(웃음) 저희도 공부 싫은 건 잘 아니까 당근도 적절히 건넸습니다. 쉬는 시간엔 짬 내서 야외 잔디밭에서 축구도 하고요. 주말엔 대우꿈동산 인접 봉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한편, 밤 열 시가 되면 순찰하며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으면 귀가시키는 임무도 있었습니다. 외부 친구들을 돌려보내는 일도 맡았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도 어렸기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같이 살아간다는 측면이 더 컸습니다. 함께 성장했단 표현이 더 맞을 듯하네요. 정문 경비 선생님과 저희 역할이 조금 겹칠 수밖에 없었거든요. 순찰 끝나고서 경비실에 들러 선생님과 간식 먹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Q. 군대에서 후원을 시작하셨다고요.
대우꿈동산에서 1년 생활한 뒤 2007년도 군에 입대하며 아이들과 다시 떨어져 지낼 때인데요. 군부대에선 물리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으니, 멀리서나마 ‘후원이라도 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 거예요. 적은 월급이지만 쪼개서라도 조금 보태야겠단 다짐에서 출발했죠. 10만 원 월급에서 5천 원만 아끼면 충분히 후원할 수 있어 사실 큰 부담은 아니었거든요. 선·후임에게도 훌륭한 아동복지시설을 알고 있으니 조금씩만이라도 후원해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Q. 아이들에겐 어떠한 조언을 해주셨어요?
몸소 생활로써 보여주려 노력했어요. 옷자락 붙잡고서 진득하게 조언을 전하는 그러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 배경엔 저도 어렵게 성장해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물론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었어요. 눈물도 보이고요. 그럴 때면 옆에서 다독여 주죠. 그런데 자상하진 못했고요, (웃음) 시간 지나면 다 지나가고 저절로 해결된다, 그렇게 조언해 주곤 했습니다. 가장 마지막 시기 함께 생활한 중학생 친구가 떠오르네요. 지금은 어엿하게 취업해서 사회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세월이 흘러 더는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5년도엔 현 직장으로 취업하면서 저도 새로운 둥지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어찌 보면 제게도 때가 온 것이죠. 섭섭하긴 했지만, 앞길을 떠올리면 조금 시원한 감정도 컸던 것 같아요. ‘드디어 벗어난다’가 아닌, ‘이제 내 살 길 찾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스물아홉 살 때였습니다.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와 당시 함께 순찰을 마치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오종호 경비원. 오종호 경비원은 오늘도 대우꿈동산의 정문을 지키고 있다.
Q. 끝으로 한 말씀 전해 주신다면요.
어느덧 34년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 내부 리노베이션 소식이 속속 들려오더라고요. 큰 틀은 유지하되 세상의 변화 흐름에 맞게 개선되며 나아지면 좋겠어요. 우리 대우꿈동산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분명히 있으니까 믿고 추진해 나가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인연이 지닌 소중함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누군가 제게 도움을 주었고 또 저도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전했을 것이거든요. 대우꿈동산을 매개체로 만나는 인연에도 해당되겠지만, 저는 사회에 나와서도 상대에게 나쁘게 대하지 말잔 마음가짐을 늘 갖고 있어요. 이 사람이 제게 어떠한 인연이 될지는 또 모르는 거잖아요. 덕분에 민원인 포함한 시민들께 기본적으로 친절하단 칭찬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끝으로 후원은 생활 일부분이 되면 습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듯해요.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되죠. 큰 금액을 한 번에 후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가 모두 연예인은 아니잖아요. (웃음) 자그마한 금액이라도 ‘내 생활의 일부를 함께 하고 있다’라는 뿌듯함으로 동행하면, 더 따뜻한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대우꿈동산이 걸어온 스무해의 이야기가 담긴 책 「꿈 하나 둘 셋」을 들고서 기념 촬영하는 모습.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몸담아 거주했던 102동 508호 앞에서 호수를 가리키며 환히 웃고 있다.
강석민 후원자님은 인터뷰 뒤 짧은 소회를 남겼습니다. 돌이켜 보니 자신의 꿈도 이루어졌노라 말이죠. 토목 분야 공무원으로 일하는 지금, 일에 관한 만족감이 무척 높다고 밝혔습니다. 대우꿈동산에서 강산이 바뀌도록 봉사한 지난 시간이 굳은 나이테로 새겨지고, 지금은 큰 자산으로 돌아와 동료들로부터 친절하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 이보다 보람될 수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아이들과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지난날 덕분에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대우꿈동산 측에 감사함을 전한 강석민 후원자님. 후원자님의 진중하고도 일관된 태도로부터 사회초년생인 저 역시 배우고, 선한 영향력의 따스함을 마주할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글 사진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김준성 대리
"전 상주 자원봉사자 강석민입니다"
2026년 03월 12일
청주 흥덕구 봉명동엔 대우꿈동산이 있습니다. 1992년 소년소녀가정 자립 지원 목적으로 건립된 아파트형 주거 공간입니다. 故 김우중 설립자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와 연관이 깊은데요, 이곳은 6개월 만에 1백만 부 이상 팔린 인세의 전액 기부를 통해 건립된 자립 지원 복지기관입니다. 총 91세대 규모의 대우꿈동산은 소년소녀가정이 가족의 기본 생활 단위를 유지하면서 사회 일원으로 당당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죠. 500여 가구, 1,500여 명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한 한편,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다문화 한부모가정, 나아가 조손가정으로 입주 대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우꿈동산엔 든든한 오랜 지역 후원자님들이 많습니다. 여러 기관부터 개인 후원자까지 그 범위가 넓은 까닭에, 후원의 뿌리가 깊은 대우꿈동산에서 후원자 인터뷰를 출발하면 좋겠다며 은연중에, 그러나 확실하게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이곳에서 10년간 상주 자원봉사자로 지낸 강석민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이십 대 청춘을 아이들과 함께한 자원봉사자이자, 아이들의 꿈이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보태는 강석민 후원자님과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봤습니다.

지난달 12일, 대우꿈동산 사무실에서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Q. 후원자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제천시청 수도사업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우꿈동산 후원자 강석민입니다. 유년 시절을 잠깐 말씀드리면 아버님, 어머님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찍 돌아가셨어요. 이에 따라, 저와 두 살 어린 남동생 둘 다 제천시청의 사회적 지원을 받으며 자랐죠. 이후 제가 충북대 토목공학과로 진학하면서 제천시 사회복지관 추천으로 당시 대우꿈동산 대표님이신 유응모 오송종합사회복지관장님을 처음 뵐 수 있었습니다. 상주 자원봉사자로 합류할 수 있던 배경인데요, 사회복지 분야 수혜자로서 보답 또는 환원하고픈 마음이 컸습니다. 당장의 거주를 해결할 수 있는 이점도 물론 크게 다가왔고요.
Q. 지역 내 충북대 위상이 높은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저와 동생 모두 공부는 열심히 했죠. 쑥스럽네요. 제천시 사회복지관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바르게 클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토목공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기술 교과 선생님 도움이 컸습니다. 이공계에선 먹고사는 데 힘이 될 거라며 조언해 주셨거든요. 저로서도 뭐랄까요, 특유의 거친 분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참고로 동생은 청주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에요.
Q. 대우꿈동산 첫인상은 어땠나요?
당시로서도 기초적인 가정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육원은 공동생활이 보편적이잖아요. 반면, 이곳은 개별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가까운 공동체처럼 다가왔어요.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입주 가구 중 누군가가 못되게 구는 친구들로 곤욕을 겪으면 형들이 막아주기도 하면서 말이죠.
또 입주 가구가 새로 들어오면, 또래들이 방문해 자연스레 친해지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요즘엔 아파트 경우만 보더라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러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참,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다 같이 아파트 공동 물청소를 하던 일이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몰라요.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Q. 봉사자 일과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또래 상주 자원봉사자는 다섯 명 정도 있었는데요, 매일 저녁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가르쳐줬습니다. 5층에서 학년끼리 모여 다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고요, 아이들은 나중에 놀더라도 일단은 공부방에 들러야 했어요. 반강제였죠.(웃음) 저희도 공부 싫은 건 잘 아니까 당근도 적절히 건넸습니다. 쉬는 시간엔 짬 내서 야외 잔디밭에서 축구도 하고요. 주말엔 대우꿈동산 인접 봉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한편, 밤 열 시가 되면 순찰하며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으면 귀가시키는 임무도 있었습니다. 외부 친구들을 돌려보내는 일도 맡았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도 어렸기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같이 살아간다는 측면이 더 컸습니다. 함께 성장했단 표현이 더 맞을 듯하네요. 정문 경비 선생님과 저희 역할이 조금 겹칠 수밖에 없었거든요. 순찰 끝나고서 경비실에 들러 선생님과 간식 먹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Q. 군대에서 후원을 시작하셨다고요.
대우꿈동산에서 1년 생활한 뒤 2007년도 군에 입대하며 아이들과 다시 떨어져 지낼 때인데요. 군부대에선 물리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으니, 멀리서나마 ‘후원이라도 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 거예요. 적은 월급이지만 쪼개서라도 조금 보태야겠단 다짐에서 출발했죠. 10만 원 월급에서 5천 원만 아끼면 충분히 후원할 수 있어 사실 큰 부담은 아니었거든요. 선·후임에게도 훌륭한 아동복지시설을 알고 있으니 조금씩만이라도 후원해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Q. 아이들에겐 어떠한 조언을 해주셨어요?
몸소 생활로써 보여주려 노력했어요. 옷자락 붙잡고서 진득하게 조언을 전하는 그러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 배경엔 저도 어렵게 성장해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물론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었어요. 눈물도 보이고요. 그럴 때면 옆에서 다독여 주죠. 그런데 자상하진 못했고요, (웃음) 시간 지나면 다 지나가고 저절로 해결된다, 그렇게 조언해 주곤 했습니다. 가장 마지막 시기 함께 생활한 중학생 친구가 떠오르네요. 지금은 어엿하게 취업해서 사회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세월이 흘러 더는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5년도엔 현 직장으로 취업하면서 저도 새로운 둥지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어찌 보면 제게도 때가 온 것이죠. 섭섭하긴 했지만, 앞길을 떠올리면 조금 시원한 감정도 컸던 것 같아요. ‘드디어 벗어난다’가 아닌, ‘이제 내 살 길 찾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스물아홉 살 때였습니다.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와 당시 함께 순찰을 마치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오종호 경비원. 오종호 경비원은 오늘도 대우꿈동산의 정문을 지키고 있다.
Q. 끝으로 한 말씀 전해 주신다면요.
어느덧 34년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 내부 리노베이션 소식이 속속 들려오더라고요. 큰 틀은 유지하되 세상의 변화 흐름에 맞게 개선되며 나아지면 좋겠어요. 우리 대우꿈동산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분명히 있으니까 믿고 추진해 나가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인연이 지닌 소중함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누군가 제게 도움을 주었고 또 저도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전했을 것이거든요. 대우꿈동산을 매개체로 만나는 인연에도 해당되겠지만, 저는 사회에 나와서도 상대에게 나쁘게 대하지 말잔 마음가짐을 늘 갖고 있어요. 이 사람이 제게 어떠한 인연이 될지는 또 모르는 거잖아요. 덕분에 민원인 포함한 시민들께 기본적으로 친절하단 칭찬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끝으로 후원은 생활 일부분이 되면 습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듯해요.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되죠. 큰 금액을 한 번에 후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가 모두 연예인은 아니잖아요. (웃음) 자그마한 금액이라도 ‘내 생활의 일부를 함께 하고 있다’라는 뿌듯함으로 동행하면, 더 따뜻한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대우꿈동산이 걸어온 스무해의 이야기가 담긴 책 「꿈 하나 둘 셋」을 들고서 기념 촬영하는 모습.

강석민 전 상주 자원봉사자가 몸담아 거주했던 102동 508호 앞에서 호수를 가리키며 환히 웃고 있다.
강석민 후원자님은 인터뷰 뒤 짧은 소회를 남겼습니다. 돌이켜 보니 자신의 꿈도 이루어졌노라 말이죠. 토목 분야 공무원으로 일하는 지금, 일에 관한 만족감이 무척 높다고 밝혔습니다. 대우꿈동산에서 강산이 바뀌도록 봉사한 지난 시간이 굳은 나이테로 새겨지고, 지금은 큰 자산으로 돌아와 동료들로부터 친절하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 이보다 보람될 수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아이들과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지난날 덕분에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대우꿈동산 측에 감사함을 전한 강석민 후원자님. 후원자님의 진중하고도 일관된 태도로부터 사회초년생인 저 역시 배우고, 선한 영향력의 따스함을 마주할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글 사진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김준성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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