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남 전 대우자동차 사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살아있는 화석’이자 ‘현장학 교과서’다. 그의 이력은 자동차 불모지 대한민국의 신진자동차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그의 사회생활을 신진자동차가 도요타와 제휴해 코로나를 조립하던 1966년부터 시작된다. 인천 부평공장에서 기름밥을 먹던 청년 엔지니어는 이후 GM코리아, 새한자동차를 거쳐 대우자동차의 사장이 되기까지 반세기 동안 공장 바닥을 지켰다.
그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었다. 1970년대 도요타가 중국의 정치적 영향으로 철수하고, GM이 들어왔을 때, 일본식 ‘정밀함’과 미국식 ‘대량 생산’의 기술적 간극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1980년대 대우의 첫 월드카 ‘르망’을 만들 때는 독일(오펠)의 도면과 미국(GM)의 관리 시스템 사이에서 피를 말리며 양산을 성공시켰다.
1990년대, 김우중 회장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지구촌 곳곳을 누빌 때, 그 지도 위에 실제로 공장을 짓고 깃발을 꽂은 실행가가 바로 왕영남이었다. 베트남 하노이의 진흙탕에 파일을 박고, 우즈베키스탄 직원을 500명씩 초대해 훈련시켰으며, 폴란드 FSO 공장을 유럽의 전초기지로 키워냈다. 대우 해체 후 20여 년, 그는 “대우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후배들이 달리고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부터 세계경영의 영광과 좌절까지, 그 장대한 서사를 왕영남 사장의 육성으로 복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