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근 전 대우그룹 일본지역본사 사장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온 ‘산증인’이다. 6.25 전쟁 당시 중학생의 몸으로 서울에서 고향 영주까지 500리를 걸어 탈출하며 사선을 넘나들었던 소년은, 훗날 펜을 쥔 언론인으로, 국가 정책을 조율하는 관료로, 그리고 대우그룹의 심장부를 지키는 야전사령관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1960~70년대, 그는 통신사와 KBS에서 정치부장과 경제부장을 역임하며 청와대를 출입했고, 이후 남덕우 부총리의 전격적인 발탁으로 경제기획원(EPB) 공보관(이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질주하던 시기, 그는 정부와 언론의 가교로서 그 역동적인 현장을 지켰다.
잘 나가던 관료였던 그가 1979년, 돌연 ‘대우맨’이 된 것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갑작스러운 병마로 공직을 떠나야 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김우중’이라는 신화적 인물이었다. ‘1~2년만 경험하고 나오겠지’ 했던 그의 대우 생활은 무려 20년이나 이어졌다. 그는 대우실업 화학본부장, 대우조선 기획담당 전무, 대우그룹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김우중 회장의 천재적인 ‘직관’을 ‘시스템’으로 보완하고, 특유의 폭넓은 정·관계 및 언론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우의 대외 리스크를 관리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그의 일본어 실력과 인적 네트워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60년대 주일 특파원 시절 맺은 인맥을 바탕으로 일본 정재계 거물들과 교류하며, 대우의 일본 건설업 면허 취득(국내 1호), 스즈키 자동차와의 국민차(티코) 기술 제휴 등 굵직한 사업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출발해 가장 깊숙한 내부자가 되어 대우의 영광과 상처를 모두 지켜본 그에게, 대우는 여전히 ‘아쉬움’이자 ‘자부심’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