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른 청년은 장학생 안내 책자에서 별표가 붙은 조항 하나를 발견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과 사우스 코리아에서 온 유학생에게는 겨울 옷값을 따로 지급한다." 세계 각국의 장학생이 모이는 자리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학생들 옆에 앉게 됐다. 한국이 필리핀보다 못살던 시절, 나라 전체가 '가난뱅이 취급'을 받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유학생이 한국인 최초로 서양 고전학의 본고장에서 그리스·로마 고전과 고대 철학을 정통으로 공부하고 돌아온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다.
1981년 귀국한 그를 저녁 자리로 불러 지원을 약속한 사람이 대우재단 초대 이사장 이용희 교수였고, 그 만남은 한국 고전학계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이후 45년, 그는 대우재단 학술사업의 수혜자이자 심사자,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그리고 지금은 학술운영위원으로 대우재단과 동행해왔다. 대우와 함께했던 한국 학술 40년의 산증인을 대우재단빌딩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이태수 교수는 40여 년 전의 인물과 장면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아카이빙이 안 돼 있어 진위를 가릴 수 없는 게 안타깝다"는 말을 반복했다. 겨울 옷값을 따로 받던 빈국의 유학생이 아무런 콤플렉스 없이 학문하는 나라가 되기까지, 그 압축 성장의 출발점에 대우재단의 학술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한국 고전학계를 키워준 게 사실은 대우재단이에요. 그 재정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못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