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전 대우조선 사장의 이력은 ‘조선’(造船)과는 거리가 멀었다. 1970년대 초반, 그는 한국은행에서 거시경제와 금융 정책을 다루던 정통 엘리트 행원이었다. 6~7년 차 행원이었던 그는 맨날 글이나 쓰는 일이 답답해 퇴사를 결심했고, 우연한 기회에 동양증권 사무실에 들렀다가 운명처럼 대우실업의 젊은 리더 김우중을 만났다. 면접은 단 1분 만에 끝났다. 김 회장은 그의 이력서를 ‘팔락팔락’ 넘겨보더니 대뜸 '너 우리 회사로 와라'는 한마디를 던졌다. 안정된 국책은행을 떠나 신생 기업 대우로 자리를 옮긴 그는 기획조정실을 거쳐 대우조선(현 한화오션)의 산증인이 되었다.
그가 대우조선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8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대우가 옥포조선소를 인수하면서부터다. 당시 옥포는 도크 하나 없는 허허벌판 백사장이었다. 그는 옥포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자금을 조달하고, 수주를 따내고, 노사 분규의 파도를 넘었다. 특히 그는 대우조선이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정상에 서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휘했다. 경쟁사들이 일본의 기술을 답습할 때, 과감한 설계 전산화를 도입해 기술 격차를 벌렸고, 잠수함 등 특수선 분야를 개척해 방위산업의 기틀을 다졌다.
IMF 외환위기 당시 환율 급등으로 장부상 부채가 폭등하는 상황에서도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회사를 지켜낸 '재무통 CEO'이자 '야전사령관', 신영균 전 사장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