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장에 헐렁한 ROTC 단복을 입고 나타난 스물셋 청년은 당돌했다. "병역 필한 자를 뽑는데 미필자가 여길 왜 왔냐"는 면접관의 핀잔에 청년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받아쳤다. “군대 가 있는 동안 월급 안 줄 테니 회사는 이득이고, 저는 제대 후 갈 직장 정해놓으니 좋고. 서로 좋은 거 아닙니까?” 당시 37세였던 청년 사업가 김우중 사장은 그 자리에서 "너 합격"을 외쳤다. "내일부터 당장 부산공장으로 출근해." 졸업도 안 한 대학생은 그렇게 대우맨이 되었다.
추호석(75). 그는 대우 신화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마다 ‘해결사’로 호출되었던 인물이다. 1980년대 런던 금융시장에서 맨몸으로 석유 비즈니스를 개척했고, 전쟁 중인 이란의 테헤란, 쿠데타가 일어난 파키스탄, 그리고 살얼음판 같은 북한의 주석궁을 넘나들며 ‘대우식 세계경영’의 지도를 넓혔다. 대우가 해체된 지 25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그는 여전히 1982년 런던의 안개를, 리비아 사막의 모래바람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휘발유와 디젤의 성분을 빼곡히 적어 내려간 그의 낡은 노트처럼, 그의 기억은 화석처럼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