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귀현 전 대우 인도지역본사 사장은 1973년, 당시 재계 서열 상위권이던 럭키금성(현 LG) 그룹을 떠나 창업 6년 차의 신생 기업 대우실업에 합류했다. 금성사 전선수출부에서 근무하던 20대 청년을 움직인 것은 “대우가 월급을 많이 주고,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많다”는 소문이었다. 수출 실무에 능통했던 그는 입사 면접장에서 김우중 회장을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이 던지는 실무적인 질문에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고, 그 자리에서 즉시 채용이 결정됐다. 입사 6개월 만에 대리로 파격 승진한 그는 이후 대우 성장의 결정적 장면마다 ‘해결사’로 등판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었지만, 대우의 섬유, 건설, 전자, 자동차 등 핵심 사업의 자재 구매와 해외 영업을 도맡았다. 1970년대 후반 섬유 파동 때는 회장의 지시 없이 독단으로 미국 듀폰 본사로 날아가 원사를 확보해 국내 공급망의 판도를 뒤집었고, 1979년 리비아 건설 현장에서는 현금이 든 더플백을 메고 사막을 횡단하며 자재를 조달했다.
1990년대 ‘세계경영’의 기치 아래 그는 모로코, 폴란드, 인도, 러시아, 남미 우수아이아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생산 기지를 개척했다. 김우중 회장이 직관적으로 “여기다!”라고 깃발을 꽂으면, 남귀현은 그곳에 공장을 짓고 물건을 팔아 ‘돈’을 만들어내는 야전사령관이었다. 대우 해체 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여전히 그때의 열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대우가 무너진 것은 단순한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국부(國富)의 유출이었다”고 회고하는 남귀현 전 사장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