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현실이 됐다. 1995년 본사 기획실장으로 복귀한 그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혹독한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들었다. 방만하게 운영되던 주식과 부동산 자산을 정리하고, 장부 밖에서 곪아가던 해외 부실 펀드를 수면 위로 끌어내 정리했다. 이는 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동서증권, 고려증권 등 경쟁사들이 유동성 위기로 줄줄이 무너져 내릴 때, 대우증권은 그의 선제적 대응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하고 오히려 더욱 단단해졌다.
하지만 영광은 길지 않았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증권은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됐고, 그는 하루아침에 조직을 떠나야 했다. 심지어 떠난 지 2년 후, 재임 시절과 무관한 사고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중징계’라는 치욕적인 처분을 받았다. 억울함과 배신감은 그에게 처음으로 ‘권력 의지’라는 것을 심어주었다. “내가 돌아가서 반드시 회사를 되살려 놓겠다.”
2004년, 그의 다짐은 현실이 됐다. 업계 5위로 추락한 친정 대우증권의 CEO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 그에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는 ‘3월 한 달만이라도 1등을 되찾자’는 명확하고 강렬한 목표를 제시했다. 모든 평가 기준을 ‘시장 점유율’ 하나로 통일하고, 전국 지점에 목표를 50%씩 상향 배분하며 무한 경쟁의 불을 붙였다. 꽃다발과 피자가 1등 지점으로 날아갔고, 사장은 격려를 위해 전국을 누볐다. 잠자고 있던 대우증권의 DNA가 깨어났다. 모두가 불가능이라던 목표는 취임 2개월 20일 만에 달성됐다. ‘손복조 신화’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손복조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