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도 고시 대신 국책은행을 택했던 한 청년이 있었다. 안정된 은행원의 길을 걷던 그는 1975년, 당시 신흥 기업이던 대우그룹에 합류하며 인생의 항로를 바꾼다. 적극적인 업무 스타일로 입사 두 달 만에 김우중 회장의 눈에 띈 그는, 김 회장의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맡기는' 스타일 덕에 신입사원 시절부터 해외 미개척지를 홀로 누벼야 했다. 바로 강병호 전 대우자동차 사장의 이야기다.
그의 대우 인생은 '세계경영'의 축소판과 같았다. 1976년, 모두가 중동으로 향할 때 그는 남미 에콰도르로 날아갔다. 현지 시장과 대우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맞지 않아 고전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중화학 공업인 '조선'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에콰도르 해군으로부터 따낸 선박 수주 계약은 대우가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 기업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리비아 건설 현장에 투입될 기자재 조달과 금융 업무를 맡았고, 런던에서는 대우 세계경영의 '금융 신경망' 역할을 한 BFC 설립을 주도했다. 1991년 귀국 후에는 그룹 기조실에서 GM과의 결별 협상을 1년 만에 성공시키며 대우자동차 독자 경영의 길을 열었다.
외환위기 속에서 대우자동차 사장을 맡아 그룹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그는 "회장님을 더 잘 보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도, "월급쟁이가 아닌 주인으로서 회사를 만들어 간다는 심정으로 일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단언했다. '대우는 나의 전부였다'는 그의 말에는 '대우 신화'를 온몸으로 일궈낸 '노병'의 자부심이 짙게 묻어났다. 아래는 강병호 전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