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7
2026.03.17


올해(2023년)로 의료계 종사하신지는 몇 년 되셨나요?
한 37년 됩니다. 거의 딱 만으로 37년 됐네요.
당시(1989년) 신안대우병원은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어렸을 때 섬에서 자랐어요. 여수에서. 그래서 의사 되고 나서, 섬이나 오지 가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태어난 곳에서 의료 활동을 하고 싶어서 가정의학과를 갔는데, 마침 거기에서 모셨던 이원덕 원장님이 신안대우병원에 근무하시더라고요. 원장님께서 제게 ‘와서 같이 한번 해보자’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갔죠. 제겐 아주 큰 복이었어요. 하고 싶은 걸 하게 됐으니까.
병원이 외딴섬에 있었는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다들 좋다고 했어요. 집에서도 선후배들도 모두 잘했다고 했어요. 나는 거기(신안 비금도) 가 있고. 2~3주에 한 번씩 주말에 전주를 왔다 갔다 했어요.

당시 신안대우병원의 의료 환경은 어땠나요?
오히려 전주(예수병원)보다 시설이 더 좋았어요. 섬이라 의료시설이 낙후됐을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검사실 완벽하지. 엑스레이에 초음파도 있지. 내시경 있지. 수술실, 분만실, 치과, 입원실이 다 있는 거예요. 오히려 전주에서 배운다고 견학도 왔어요. 섬으로. 이원덕 원장님이 그렇게 다 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춰놨더라고요. 물론 대우재단에서 해줬겠지만. 아주 좋았어요.
의료 환경이 취약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군요?
섬 주민들이 아주 큰 혜택을 받았죠. 그때만 해도 80년대니까 웬만한 병원에는 컴퓨터나 초음파 진단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대우병원은 병원마다 다 구비를 해놨어요. 환자들한테는 큰 혜택이죠. 대우에서 이렇게 투자를 해주니까 가능했다고 봐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실까요?
많죠. 거기에 ‘독사’들이 많아서, 뱀에 물린 사람이 많았어요. 그때 차트를 빼보니까 십여년간 600명이 넘었어요.
하루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독사에 물려서 왔는데, 치료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상처가 심한데 집에 가셔야 한다는 거예요. 대개 한 4~5일 지나야 보내거든요. 가야하는 이유가 집에 소도 있고, 돼지도 있고, 개도 있다는 거예요. 본인이 병원에 있으면 얘네들을 봐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모시고 갔는데. 온 짐승들이 마당에 모여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그게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또 한 가지는 ‘복어’ 있죠? 섬 사람들이 매년 두세 사람씩 죽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술 먹으면서 복어를 먹는 거에요. 1년에 두세 명씩 죽는데, 제가 간 해부터는 한 명도 안 죽었어요. 앰부백(Ambu Bag)으로 산소 공급해서 다 살렸어요. 그전에는 방법을 몰라서 다 죽었던 거예요.
섬에서 병원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응급환자 이송 문제죠. 광주에서 헬기도 몇 번 왔어요. 목포에서 병원선이 와서 싣고 가기도 했고요. 임신 분만 환자들 애기 잘 안 나올 때가 굉장히 응급한 상황이잖아요. 그때 몇 번 함께 헬기 타고 광주까지 간 적도 있어요. 그거 외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의료진도 많이 있고. 시설이 많이 좋아서.

원장으로서 특별히 느꼈던 보람이나 성취감이 있었을까요?
내가 젊었을 때잖아요. 전문의 따고 가서 200% 300% 역량을 발휘했어요. (수련기간) 3년간 예수병원 응급실 근무하면서, 다양하고 많은 환자를 받았기 때문에 딱 맞는 거예요. 섬에서는 소아과나 내과를 가리지 않고, 온갖 환자들이 다 찾아오니까요. 신생아도 한 100명 이상 받았어요. 저에게는 수련 과정의 연속이었죠. 동시에 내가 배운 걸 다 베풀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어요. 덕분에 대우병원 나오고는 어디 가든지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넘쳤죠.
환자 가족분들한테도 격려를 많이 받으셨겠어요.
다 좋아했어요. 거기서는 대우가 신이었어요. 자기들 살려주니까요. 근방에 섬이 많잖아요. 그런데 비금도와 도초도는 신안대우병원이 있어서 정말 혜택 많이 받았죠. 주변 섬 주민들이 굉장히 부러워했어요. 신안대우병원 바라보면 아주 천국 같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정부 혜택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낙도 오지에 개인이나 재단에서 병원을 해도 그때만큼은 효과가 없어요. 그때는 섬이 완전 지옥이나 다름없었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나가도 그냥 운명으로 알고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대우가 육지가 아닌 섬으로 간 덕분에, 그 당시 대우병원이 있던 섬 주민들은 진짜 좋았죠.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오랫동안 의료 활동을 하셨는데.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다른 건 아니고, 보람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배운 것을 해볼 수 있는 곳이잖아요. 개인병원에선 못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돈 벌라고 하는 게 아니고, 사람 살리려고 돈 쓰는 사업이잖아요. 돈 생각 않고, 그냥 환자 치료만 하면 되니까. 우리는 굉장히 그게 좋았어요.
대우병원은 항시 적자였어요.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환자만 보면 되니까. 보통 기업 오면은 그런 거 저런 거 따지는데. 여기는 24시간 며칠간 잠을 안 자도 재밌었어요. 그땐 젊었을 때니까 한창 잠 안 자고도 밤새 해도 그다음날 거뜬하고 좋았어요.
지금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밖에 기다리는 환자분들도 많던데, 이곳 전주에서는 어떤 환자들을 만나고 계신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정으로 많이 대해줘요.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봐도 의사들이 어렵거든. 환자가 의사 앞에 딱 들어서면 대부분 컴퓨터 하나 있잖아요. 그 앞에 딱 서면 얼어버려요. 나도 의사지만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 그래서 오면 그냥 제일 편하게 해줘요. 컴퓨터에 신경 쓸 것을 그냥 환자하고 대화하고 차팅하고. 옛날 대우병원에서 했던 식 그대로. 그게 익숙하고 또 서로가 좋더라구요.

암도 초기에 발견하셨다고 들었어요.
여기는 도시니까 장비가 뛰어난 곳이 많잖아요. MRI, CT 등등. 그래서 그건 다 그쪽으로 보내고 또 결과를 참고해요.
제가 초음파를 할 수 있어요. 대우병원에도 초음파가 있었고요. 그래서 초음파학회에 들어가서 회원이 됐어요. 초음파로 볼 수 있는 게 많아요. 아주 요물단지에요. 갑상선, 경동맥, 간, 쓸개, 비장, 전립선, 무릎 관절 등등 우리 가정의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장비라 제가 십분 활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암 환자들을 여기서 많이 잡아냈어요. 다녀간 사람들이 소문내고 또 소개 소개해서 찾아오고 있어요.
전주 시내 중에서도 이곳(서서학동)을 고르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여기가 섬 같아요. 지금은 저 아래, 저 위에 가정의학과가 있는데, 처음엔 여기 들어가면 다시 나와야 되는 (불편한) 곳이었어요. 딱 육지 속의 섬같더라구요. 그래서 자리 잡았는데 아주 잘 왔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선생님 건강은 괜찮으시고요?
처음에 너무 무리를 했어요. 내 건강 생각 않고 늦게까지 했죠. 그러다가 13년 전에 간암 치료를 받았어요. 그때부터는 오후 1시까지만 진료해요. 오히려 그게 좋은 게, 내가 마음의 여유도 있고 몸이 편해지니까 환자들한테 신경도 쓸 수 있고 좋아요.
가끔은 일부러 시골이나 환자 집에 가봐요. 옛날 신안대우병원에서는 당뇨 고혈압팀이 있어서, 각 마을마다 간호사들이 찾아가서 체크하고 우리도 따라가고 그랬거든요. 집집마다 가보면 오히려 실상을 더 알 수 있어서 가끔 직접 가는 편이에요. 소풍 가듯이 가서 들여다봐요. 그래서 지금은 여유도 있고, 찾아간 분들은 다 좋아해요.
찾아뵙는 분들은 거동이 좀 불편하신 분들일까요?
지금은 제일 큰 문제는 혼자 사는 분들이 태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영양실조가 더 많아요. 요양병원에 가기 직전까지는 허리나 무릎 관절 때문에 가게나 슈퍼를 못 가니까, 먹는 것들이 굉장히 부실해요. 옛날에는 가족들이 많으니까 옆에서 도와줬잖아요. 지금은 혼자 사는 분들이 오히려 더 문제예요. 못 먹고, 케어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병원도 많고, 의료장비는 많은데. 혼자 사는 노인분들은 아주 힘들어요.
그리고 케어해 줄 사람들도 부족해요. 자녀분들이 그걸 하기 어렵죠. 자기 살기 바쁘고, 옆에서 부모님을 하루 이틀 수발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앞으로는 요양해줄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 큰 문제예요. 병원 직원들도 다 고령화 되고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걸 이루어오셨는데, 앞으로도 더 이루고 싶은게 있으실까요?
내가 살아있는 한 그냥 이렇게 아픈 사람들하고 같이. 나도 아파봤으니까 조금이라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어요. 우리 직원들도 다 20년씩 나랑 같이 지금 안 떠나고 같이 있어요. 그러니까 가족같이. 또 오는 분들도 가족같이 이렇게 살려고 해요. 그냥.

출생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전주예수병원 수련의
신안대우병원 과장(비금도)
신안대우병원 원장(비금도)
완도대우병원 원장(노화도)
전주 곽병찬가정의학과의원 개원
일시 | 2023년 11월 15일 |
장소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흑석로 27 곽병찬가정의학과의원 |
참석 | 곽병찬 전 신안대우병원 원장 이혜련 대우재단 미션사업팀장 신준영 플랜백 PD |
정리 | 장윤석 대우재단 커뮤니케이션팀장 |


올해(2023년)로 의료계 종사하신지는 몇 년 되셨나요?
한 37년 됩니다. 거의 딱 만으로 37년 됐네요.
당시(1989년) 신안대우병원은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어렸을 때 섬에서 자랐어요. 여수에서. 그래서 의사 되고 나서, 섬이나 오지 가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태어난 곳에서 의료 활동을 하고 싶어서 가정의학과를 갔는데, 마침 거기에서 모셨던 이원덕 원장님이 신안대우병원에 근무하시더라고요. 원장님께서 제게 ‘와서 같이 한번 해보자’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갔죠. 제겐 아주 큰 복이었어요. 하고 싶은 걸 하게 됐으니까.
병원이 외딴섬에 있었는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다들 좋다고 했어요. 집에서도 선후배들도 모두 잘했다고 했어요. 나는 거기(신안 비금도) 가 있고. 2~3주에 한 번씩 주말에 전주를 왔다 갔다 했어요.

당시 신안대우병원의 의료 환경은 어땠나요?
오히려 전주(예수병원)보다 시설이 더 좋았어요. 섬이라 의료시설이 낙후됐을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검사실 완벽하지. 엑스레이에 초음파도 있지. 내시경 있지. 수술실, 분만실, 치과, 입원실이 다 있는 거예요. 오히려 전주에서 배운다고 견학도 왔어요. 섬으로. 이원덕 원장님이 그렇게 다 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춰놨더라고요. 물론 대우재단에서 해줬겠지만. 아주 좋았어요.
의료 환경이 취약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군요?
섬 주민들이 아주 큰 혜택을 받았죠. 그때만 해도 80년대니까 웬만한 병원에는 컴퓨터나 초음파 진단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대우병원은 병원마다 다 구비를 해놨어요. 환자들한테는 큰 혜택이죠. 대우에서 이렇게 투자를 해주니까 가능했다고 봐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실까요?
많죠. 거기에 ‘독사’들이 많아서, 뱀에 물린 사람이 많았어요. 그때 차트를 빼보니까 십여년간 600명이 넘었어요.
하루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독사에 물려서 왔는데, 치료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상처가 심한데 집에 가셔야 한다는 거예요. 대개 한 4~5일 지나야 보내거든요. 가야하는 이유가 집에 소도 있고, 돼지도 있고, 개도 있다는 거예요. 본인이 병원에 있으면 얘네들을 봐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모시고 갔는데. 온 짐승들이 마당에 모여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그게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또 한 가지는 ‘복어’ 있죠? 섬 사람들이 매년 두세 사람씩 죽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술 먹으면서 복어를 먹는 거에요. 1년에 두세 명씩 죽는데, 제가 간 해부터는 한 명도 안 죽었어요. 앰부백(Ambu Bag)으로 산소 공급해서 다 살렸어요. 그전에는 방법을 몰라서 다 죽었던 거예요.
섬에서 병원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응급환자 이송 문제죠. 광주에서 헬기도 몇 번 왔어요. 목포에서 병원선이 와서 싣고 가기도 했고요. 임신 분만 환자들 애기 잘 안 나올 때가 굉장히 응급한 상황이잖아요. 그때 몇 번 함께 헬기 타고 광주까지 간 적도 있어요. 그거 외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의료진도 많이 있고. 시설이 많이 좋아서.

원장으로서 특별히 느꼈던 보람이나 성취감이 있었을까요?
내가 젊었을 때잖아요. 전문의 따고 가서 200% 300% 역량을 발휘했어요. (수련기간) 3년간 예수병원 응급실 근무하면서, 다양하고 많은 환자를 받았기 때문에 딱 맞는 거예요. 섬에서는 소아과나 내과를 가리지 않고, 온갖 환자들이 다 찾아오니까요. 신생아도 한 100명 이상 받았어요. 저에게는 수련 과정의 연속이었죠. 동시에 내가 배운 걸 다 베풀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어요. 덕분에 대우병원 나오고는 어디 가든지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넘쳤죠.
환자 가족분들한테도 격려를 많이 받으셨겠어요.
다 좋아했어요. 거기서는 대우가 신이었어요. 자기들 살려주니까요. 근방에 섬이 많잖아요. 그런데 비금도와 도초도는 신안대우병원이 있어서 정말 혜택 많이 받았죠. 주변 섬 주민들이 굉장히 부러워했어요. 신안대우병원 바라보면 아주 천국 같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정부 혜택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낙도 오지에 개인이나 재단에서 병원을 해도 그때만큼은 효과가 없어요. 그때는 섬이 완전 지옥이나 다름없었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나가도 그냥 운명으로 알고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대우가 육지가 아닌 섬으로 간 덕분에, 그 당시 대우병원이 있던 섬 주민들은 진짜 좋았죠.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오랫동안 의료 활동을 하셨는데.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다른 건 아니고, 보람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배운 것을 해볼 수 있는 곳이잖아요. 개인병원에선 못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돈 벌라고 하는 게 아니고, 사람 살리려고 돈 쓰는 사업이잖아요. 돈 생각 않고, 그냥 환자 치료만 하면 되니까. 우리는 굉장히 그게 좋았어요.
대우병원은 항시 적자였어요.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환자만 보면 되니까. 보통 기업 오면은 그런 거 저런 거 따지는데. 여기는 24시간 며칠간 잠을 안 자도 재밌었어요. 그땐 젊었을 때니까 한창 잠 안 자고도 밤새 해도 그다음날 거뜬하고 좋았어요.
지금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밖에 기다리는 환자분들도 많던데, 이곳 전주에서는 어떤 환자들을 만나고 계신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정으로 많이 대해줘요.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봐도 의사들이 어렵거든. 환자가 의사 앞에 딱 들어서면 대부분 컴퓨터 하나 있잖아요. 그 앞에 딱 서면 얼어버려요. 나도 의사지만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 그래서 오면 그냥 제일 편하게 해줘요. 컴퓨터에 신경 쓸 것을 그냥 환자하고 대화하고 차팅하고. 옛날 대우병원에서 했던 식 그대로. 그게 익숙하고 또 서로가 좋더라구요.

암도 초기에 발견하셨다고 들었어요.
여기는 도시니까 장비가 뛰어난 곳이 많잖아요. MRI, CT 등등. 그래서 그건 다 그쪽으로 보내고 또 결과를 참고해요.
제가 초음파를 할 수 있어요. 대우병원에도 초음파가 있었고요. 그래서 초음파학회에 들어가서 회원이 됐어요. 초음파로 볼 수 있는 게 많아요. 아주 요물단지에요. 갑상선, 경동맥, 간, 쓸개, 비장, 전립선, 무릎 관절 등등 우리 가정의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장비라 제가 십분 활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암 환자들을 여기서 많이 잡아냈어요. 다녀간 사람들이 소문내고 또 소개 소개해서 찾아오고 있어요.
전주 시내 중에서도 이곳(서서학동)을 고르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여기가 섬 같아요. 지금은 저 아래, 저 위에 가정의학과가 있는데, 처음엔 여기 들어가면 다시 나와야 되는 (불편한) 곳이었어요. 딱 육지 속의 섬같더라구요. 그래서 자리 잡았는데 아주 잘 왔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선생님 건강은 괜찮으시고요?
처음에 너무 무리를 했어요. 내 건강 생각 않고 늦게까지 했죠. 그러다가 13년 전에 간암 치료를 받았어요. 그때부터는 오후 1시까지만 진료해요. 오히려 그게 좋은 게, 내가 마음의 여유도 있고 몸이 편해지니까 환자들한테 신경도 쓸 수 있고 좋아요.
가끔은 일부러 시골이나 환자 집에 가봐요. 옛날 신안대우병원에서는 당뇨 고혈압팀이 있어서, 각 마을마다 간호사들이 찾아가서 체크하고 우리도 따라가고 그랬거든요. 집집마다 가보면 오히려 실상을 더 알 수 있어서 가끔 직접 가는 편이에요. 소풍 가듯이 가서 들여다봐요. 그래서 지금은 여유도 있고, 찾아간 분들은 다 좋아해요.
찾아뵙는 분들은 거동이 좀 불편하신 분들일까요?
지금은 제일 큰 문제는 혼자 사는 분들이 태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영양실조가 더 많아요. 요양병원에 가기 직전까지는 허리나 무릎 관절 때문에 가게나 슈퍼를 못 가니까, 먹는 것들이 굉장히 부실해요. 옛날에는 가족들이 많으니까 옆에서 도와줬잖아요. 지금은 혼자 사는 분들이 오히려 더 문제예요. 못 먹고, 케어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병원도 많고, 의료장비는 많은데. 혼자 사는 노인분들은 아주 힘들어요.
그리고 케어해 줄 사람들도 부족해요. 자녀분들이 그걸 하기 어렵죠. 자기 살기 바쁘고, 옆에서 부모님을 하루 이틀 수발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앞으로는 요양해줄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 큰 문제예요. 병원 직원들도 다 고령화 되고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걸 이루어오셨는데, 앞으로도 더 이루고 싶은게 있으실까요?
내가 살아있는 한 그냥 이렇게 아픈 사람들하고 같이. 나도 아파봤으니까 조금이라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어요. 우리 직원들도 다 20년씩 나랑 같이 지금 안 떠나고 같이 있어요. 그러니까 가족같이. 또 오는 분들도 가족같이 이렇게 살려고 해요. 그냥.

출생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전주예수병원 수련의
신안대우병원 과장(비금도)
신안대우병원 원장(비금도)
완도대우병원 원장(노화도)
전주 곽병찬가정의학과의원 개원
일시 | 2023년 11월 15일 |
장소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흑석로 27 곽병찬가정의학과의원 |
참석 | 곽병찬 전 신안대우병원 원장 이혜련 대우재단 미션사업팀장 신준영 플랜백 PD(촬영) |
정리 | 장윤석 대우재단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장 |
News Letter
News Letter

Contact
본 웹사이트는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해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Copyright 2025 © All rights Reserved. Engineered by Daewoo Foundation
Top

Contact
본 웹사이트는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해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Copyright 2025 © All rights Reserved. Engineered by Daewoo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