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서울역 앞에는 거대한 회색빛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한때 서울의 관문이자 관광 산업의 희망으로 불렸던 교통센터는 공사 중단과 화재를 겪으며 버려진 채 스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모두가 외면하던 그곳에, 젊은 기업가 김우중과 그의 오랜 친구 홍성부가 나타났다. 마치 운명처럼, 홍성부는 김우중의 "건설회사를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다짜고짜 제안에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쌍용양회에서 잔뼈 굵은 건설본부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그였지만, 김우중과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작은 회사를 인수하며 시작된 대우건설. 12명의 직원이 전부였던 초라한 출발이었지만, 홍성부의 눈은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버려진 교통센터를 오피스 빌딩으로 탈바꿈시키는 혁신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정부의 호텔 계획을 뒤엎는 과감한 결정이었지만, 그의 탁월한 수익성 분석과 "돈은 김 회장님이, 기술과 사람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신뢰로 김우중을 설득했다.
그들은 건물의 단순한 완성을 넘어, 지하 2,400평 공간에 국내 최초로 25m 수영장을 갖춘 최고급 헬스센터를 들이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이는 직원들의 자부심을 높였고, '대우'라는 이름에 단순히 돈 버는 기업 이상의 가치를 불어넣었다. 대우센터의 성공적인 준공은 대우건설의 실력을 세상에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시 대우다”, “정말 잘 지었다”는 찬사는 단순한 칭찬을 넘어, 대우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신뢰를 쌓는 초석이 되었다.
홍성부는 이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제 드넓은 해외 시장으로 향했다. 당시 수많은 한국 건설업체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래바람 속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그는 수단과 리비아라는 아프리카 미수교국에 주목했다. 그는 단순한 건설 하청을 넘어, 자본을 수출하고 건설을 수반하는 선진국형 모델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