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 

‘대우의 얼굴이 된 카이스트 1호 교수’

2026.01.06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 

‘대우의 얼굴이 된 카이스트 1호 교수’

2026.01.06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은 1960년대 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메사추세츠 공대(MIT) 박사 출신이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 들어가 3학년 때 해병대에 입대했다. 1960년대의 해병대에서 서울대생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웠을 시절이다. 그가 집안이 부유했다고 숨기지 않는 것은 그 환경을 누리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MIT에 입학해 계속해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보그워너사의 선임 기사로 일하며 그 시절 맨해튼 월드트레이드센터 내부 설비나 원자력잠수함 내부 설비 등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

미국에서 잘 나가던 엔지니어였던 그는 MIT 시절 만났던 서남표 박사와 함께 국내로 돌아와 카이스트 설립에 공헌했고, 카이스트 1호 교수가 됐다. 가정이지만 배순훈 회장이 카이스트에 계속 머물렀다면 국내에서 존경받는 석학으로 꽃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 회장은 카이스트를 뒤로 하고 신생기업 대우에 합류했다. 그의 능력은 상아탑이 아닌 기업에서 더 활짝 꽃을 피웠다. 울산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며 대우중공업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후 대우조선 인수, 대우전자 사장으로 일했다.

  • 박혁진

    당시로는 드물게 MIT에서 공부하시고, 카이스트 설립 후 1호 교수가 되셨어요. 굳이 대우에 합류하지 않아도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대우에 합류하신 이유가 뭔가요?

  • 배순훈

    주변에서 김우중이란 사람을 한 번 만나보라 그래요. 아무 생각 없이 만났는데, ‘이 사람이 기계에는 관심이 많은데 잘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김 회장이 처음엔 “너 또래들은 다 대리인데 너는 차장을 시켜줄게 와라”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그날 헤어지고 주변에 물어보니까 하는 말이 “김우중 그 양반은 좋은 양반인데, 등록 이사를 시켜달라고 해라” 그렇게 말해요.

    나중에 김우중 회장이 한 번은 막내 돌이라고 집에 밥이나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집에 이미 화투판이 벌어졌더라고. 날 보더니 일어나면서 “너 여기 와서 한번 해봐라” 그래요. 앉아보니 판돈이 엄청 큰데, 이게 면접이겠구나 싶더라고. 그래서 그날 김 회장 돈 가지고 다 땄어. 그러고는 딴 돈 그대로 놓고 일어났지. 김태구가 그걸 보고 “돈 왜 안 가져가?” 그러기에 “이게 김 회장 돈이니 땄지, 내 돈이면 땄겠어?”라고 말했죠.

    암튼 그게 면접이었어. 나중에 월급을 50만원 줄테니 오라고 하셔. 그때 카이스트 월급이 10만원이었으니 큰 돈이었죠. 근데 내가 “대한전선 비롯해 몇 곳 일을 하는데, 50만원 가지고 되겠습니까? 100만원 주십쇼” 했더니, 김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너를 이사로 임명할 거야. 지금은 기술본부장으로 들어오니까, 월급 더 많이 줄 수는 없고 100만원 줄게” 해서 왔어요.




  • 박혁진

    대우에 오셔서 처음 맡으신 역할이 무엇이었나요?

  • 배순훈

    (대우중공업) 인천 공장 사장실에서 밖을 보면 잔디밭이 있어요. 그 너머는 디젤 엔진 공장이 있고, 조선소가 하나 있어. 일본 사람들이 군함을 만들던 데예요. 그런데 거기서 사람들이 풀을 뽑고 앉아 있는 거야. 사람을 뽑아놓고 일은 시켜야 되는데, 일감이 없으니 그걸 시키고 있던 거죠.

    김 회장이 그 사람들 가리키면서 “저 사람들 일감 좀 줄 수 없어?” 물어요. 그게 내 첫 잡(job)이었어. 그래서 내가 이 사람들은 기계 만드는 사람이니까 기계가 많이 들어가는 큰 공장을 짓자고 했더니 “어떤 기계가 들어가는 공장을 만들어야 되는거야?” 물으셔. 그래서 화학공장하고 발전소를 짓자고 했어요.

  • 박혁진

    김 회장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 배순훈

    김 회장이 그런 말씀을 알아듣는 거는 참 기가 막히다고 봐요. 섬유하던 사람이 세상에 보지도 못한 발전소를 짓겠다고 하는데,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남덕우 국무총리한테 전화를 해요. 남 총리가 ‘맨날 전기가 부족해서 불이 꺼지는 시대인데, 국가에 돈이 없으니까 김 회장이 돈을 빌려오면 지으라’고 그래요.




  • 박혁진

    돈은 어떻게 빌려왔나요?

  • 배순훈

    돈이 없어서 짓는 거니까 턴키(Turnkey)로 짓는다고 제안했어요. 그 얘길 어디서 들었는지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우리나라에서는 턴키로 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남덕우 총리한테 얘기를 한 거야. 그러니 남 총리가 그냥 얼굴이 새파래져서 나를 부르셨어요. “너 다 거짓말 했다며? 우리나라는 턴키가 안 된다며?” 따져요.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고 세계에서 제일 큰 건설 회사 백텔(Bechtel)에다가 용역을 줘서, 한국 회사한테 프로포절(제안서) 내라고 해서 리뷰를 하고 백텔이 고르게 하자고 제안했어요. 따서 일본 사람들한테 미쓰비시 뭐 이런 데 다 가서 너한테 턴키로 줄 테니까 너 킬로와트 당 얼마에 할래 물으니. “120불.” 미쓰비시가 제일 쌌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명박이 계속 나보고 사기친다 이거에요. 그래서 “벡텔이 뽑았잖아? 그럼 됐지 뭐? 너 나중에 다른 거 해. 우리는 그 때 안 할 테니까.” 그렇게 해서 울산화력은 대우, 보령화력은 현대건설 이렇게 된 거예요.

  • 박혁진

    정권에서 깜짝 놀랐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발전소를 지었으니까요.

  • 배순훈

    남 부총리는 그냥 하라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게 그 김우중 회장의 그 캐릭터하고 능력이에요. 김우중 회장을 믿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수출 잘했으니까. 그러니까 ‘해외 사람들하고 잘 통하니까, 이거 금융은 해외에서 금융을 해 와야 되는데, 금융을 해오겠지’ 그렇게 믿은 거고, 금융회사들이 건설 심사를 할 테니까, 국제금융에서 인정하면 나는 인정해 주겠다는 거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남덕우 부총리는 리스크가 없었던 거예요.




  • 박혁진

    그 이후에 정부 주도의 중화학 조정 등이 끝나고, 리비아에서 메디컬 센터도 짓고 하셨는데 갑자기 스탠포드로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 배순훈

    회장님이 대한전선 인수를 할 때, 설원량과 얘기하면서 나를 빼고 그걸 인수를 한 다음에 “너 사장 하지 말고 부사장해” 그러셔. 그래서 안 한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뭘 하려고 그래?” 물으시길래 나는 이제 미국 가서 다시 공부해서 해외 건설을 하든지 뭐든 할 테니까 내 걱정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스탠포드에 응모를 했어요.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그게 1983년 40살 됐을 때에요. 그리고 1년 만에 MIT를 가서 ‘인더스트리 다이나믹스’라는 과목을 가르쳤죠.

  • 박혁진

    잘 나가던 기업인이 40살에 유학을 다시 가신 건데, 그때가 회장님 인생에 어떤 의미였나요?

  • 배순훈

    나는 비지팅 스칼라(방문연구원)니까 1년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1년은 MIT에서 보냈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다시 오면 카이스트로 가서 그걸 가지고 강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완전히 대우는 떠나는 걸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스탠포드에 가자마자 김우중 회장이 와서 나보고 반도체 해놔라, 뭐 해놔라 그 지시 사항이 많아. 그래서 ‘나 관뒀는데 왜 와서 자꾸 그러냐?’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반도체를 돌리고 있는데, 걔네들 뭘 하고 있는지 설명을 이렇게 쫙 했더니. “야, 그러지 말고 반도체 회사를 하나 사자. 그리고 그걸 중심으로 하자.” 그래서 내 강의에 들어오는 사장이 하나 있는데, 조그만 반도체 회사를 한대요. 그래서 “그거 한 번 보실래요?” 물으니 또 바로 보자 그래요. 하여간 사셨어.

    그즈음 마침 MIT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교수나 한 번 하자 그러고 있는데, 김우중 회장이 또 전화를 하세요. “GM하고 50대 50 합작인데, GM은 미국 사람이 사장을 해야 된다는데. 그거 미국 사람이 사장해서 되겠어? 그러니까 네가 와서 좀 사장해. 내가 GM하고 타협 봤으니까 네가 오면 한국 사람 시킨대.” 그래서 “제가 그 조그만 부품 회사에 왜 가냐?” 거절하니까 “부품 회사만 하겠어? 이제 자동차 맡아서 해” 해서 한국에 들어왔죠. 그때도 참 거절하기 힘들게 하시더라구요. 그게 1985년이에요.




  • 박혁진

    GM이 대우와 손잡은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 배순훈

    GM이 퀄리티 있는 부품을 만드려고 프랑스하고 멕시코하고 한국하고 비교해서 한국을 선정을 했는데, 퀄리티만 문제가 아니라 ‘값싸면서도 퀄리티 있게’ 만드는 것 때문에 미국 안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미국에서 가르쳤던 과목이 그예거거든. 엔지니어링 디자인. 그러면서 생산한 게 ‘스타트 모터’에요. 대우자동차부품(1989년 대우기전공업으로 사명 변경)이 그 기술로 해서 상당히 인정을 받으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봐야 되는 거죠. GM도 그런 기술력을 인정했어요.

  • 박혁진

    자동차 부품을 하시면서 기술도 인정받고, 티코 탄생에도 일조하시고 하셨는데 왜 전자로 가시게 됐나요?

  • 배순훈

    김우중 회장님이 자동차 사장님을 했거든요. 나한테 “너 (부품)값을 좀 깎아라” 그러세요. 거기다가 내가 미국인 부사장이 7명이 있는데 그 친구들한테 얘기하세요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GM인데 뭐하러 깎아요? GM에서 이 가격에 사가는데 왜 대우자동차에 이걸 왜 싸게 팔아? 그걸 김 회장님이 섭섭하게 생각하신 거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와중에 노사분규가 터졌어요. 그때 노사분규 터지고, 김 회장님이 노조를 피하려고 갓 제대한 군인들을 일본에 가서 교육시키고 애썼는데. (교육생들이) 거기 가선 또 조총련하고 접촉해. 좀 (인격적으로) 믿고 해보자는 내 이론이 하나도 안 맞는 거예요. 그러니 김우중 회장이 대우자동차는 더 좋은 차를 만들고, 너는 전자로 가라 해서 전자로 간 거예요.

  • 박혁진

    대우전자에서 탱크주의 광고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나요?

  • 배순훈

    품질을 잘 만들고 이제 코래드를 불러다가 광고를 짜는데, 처음에는 대우가족 광고를 했죠. 그런데 그 사람들 얘기가 사장이 (광고 모델) 한번 해보자고 하고, 김우중 회장님도 나보고 하라고 하시고. 내가 제목을 뭘로 잡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김우중 회장님이 “야 탱크처럼 좀 튼튼하게 만들 수 없어?” 그래서 탱크로 갔어요. (웃음)

    나는 뭐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일을 했고. 김영삼 대통령 임기 중에 계속 내가 과학기술자문이야. 하여간 내가 그런 분들을 다 여러분 모셔봤지만, 김우중 회장 같은 분은 정말 찾을 수가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굉장히 행운아야.


    * 구술인터뷰는 총 3시간 50분간 진행됐습니다. 회장님의 동의하에 일부 내용만 발췌해 소개합니다.



배순훈 BAE Soon-Hun

  • 1943

    출생,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MIT 기계공학 박사

  • 1966

    미국 BorgWarner사 선임기사

  • 1972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 1976

    대우중공업 입사

  • 1985

    대우기전공업 사장

  • 1990

    대우조선 사장

  • 1991

    대우전자 사장

  • 1995

    대우전자 회장

  • 1997

    대우그룹 프랑스지역본부 사장

  • 1998

    대한민국 제4대 정보통신부 장관


구술 인터뷰 진행일지

일시
2025년 3월 28일
장소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우재단빌딩 5층 아카이빙 룸 
참석자
배순훈 회장
박혁진 주간조선 편집장
최윤권 대우재단 사무국장
이금화 대우인회 사무국장
장윤석 대우재단 커뮤니케이션팀장
(촬영 정리)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은 1960년대 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메사추세츠 공대(MIT) 박사 출신이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 들어가 3학년 때 해병대에 입대했다. 1960년대의 해병대에서 서울대생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웠을 시절이다. 그가 집안이 부유했다고 숨기지 않는 것은 그 환경을 누리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MIT에 입학해 계속해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보그워너사의 선임 기사로 일하며 그 시절 맨해튼 월드트레이드센터 내부 설비나 원자력잠수함 내부 설비 등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

미국에서 잘 나가던 엔지니어였던 그는 MIT 시절 만났던 서남표 박사와 함께 국내로 돌아와 카이스트 설립에 공헌했고, 카이스트 1호 교수가 됐다. 가정이지만 배순훈 회장이 카이스트에 계속 머물렀다면 국내에서 존경받는 석학으로 꽃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 회장은 카이스트를 뒤로 하고 신생기업 대우에 합류했다. 그의 능력은 상아탑이 아닌 기업에서 더 활짝 꽃을 피웠다. 울산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며 대우중공업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후 대우조선 인수, 대우전자 사장으로 일했다.

  • 박혁진

    당시로는 드물게 MIT에서 공부하시고, 카이스트 설립 후 1호 교수가 되셨어요. 굳이 대우에 합류하지 않아도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대우에 합류하신 이유가 뭔가요?

  • 배순훈

    주변에서 김우중이란 사람을 한 번 만나보라 그래요. 아무 생각 없이 만났는데, ‘이 사람이 기계에는 관심이 많은데 잘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김 회장이 처음엔 “너 또래들은 다 대리인데 너는 차장을 시켜줄게 와라”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그날 헤어지고 주변에 물어보니까 하는 말이 “김우중 그 양반은 좋은 양반인데, 등록 이사를 시켜달라고 해라” 그렇게 말해요.

    나중에 김우중 회장이 한 번은 막내 돌이라고 집에 밥이나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집에 이미 화투판이 벌어졌더라고. 날 보더니 일어나면서 “너 여기 와서 한번 해봐라” 그래요. 앉아보니 판돈이 엄청 큰데, 이게 면접이겠구나 싶더라고. 그래서 그날 김 회장 돈 가지고 다 땄어. 그러고는 딴 돈 그대로 놓고 일어났지. 김태구가 그걸 보고 “돈 왜 안 가져가?” 그러기에 “이게 김 회장 돈이니 땄지, 내 돈이면 땄겠어?”라고 말했죠.

    암튼 그게 면접이었어. 나중에 월급을 50만원 줄테니 오라고 하셔. 그때 카이스트 월급이 10만원이었으니 큰 돈이었죠. 근데 내가 “대한전선 비롯해 몇 곳 일을 하는데, 50만원 가지고 되겠습니까? 100만원 주십쇼” 했더니, 김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너를 이사로 임명할 거야. 지금은 기술본부장으로 들어오니까, 월급 더 많이 줄 수는 없고 100만원 줄게” 해서 왔어요.




  • 박혁진

    대우에 오셔서 처음 맡으신 역할이 무엇이었나요?

  • 배순훈

    (대우중공업) 인천 공장 사장실에서 밖을 보면 잔디밭이 있어요. 그 너머는 디젤 엔진 공장이 있고, 조선소가 하나 있어. 일본 사람들이 군함을 만들던 데예요. 그런데 거기서 사람들이 풀을 뽑고 앉아 있는 거야. 사람을 뽑아놓고 일은 시켜야 되는데, 일감이 없으니 그걸 시키고 있던 거죠.

    김 회장이 그 사람들 가리키면서 “저 사람들 일감 좀 줄 수 없어?” 물어요. 그게 내 첫 잡(job)이었어. 그래서 내가 이 사람들은 기계 만드는 사람이니까 기계가 많이 들어가는 큰 공장을 짓자고 했더니 “어떤 기계가 들어가는 공장을 만들어야 되는거야?” 물으셔. 그래서 화학공장하고 발전소를 짓자고 했어요.

  • 박혁진

    김 회장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 배순훈

    김 회장이 그런 말씀을 알아듣는 거는 참 기가 막히다고 봐요. 섬유하던 사람이 세상에 보지도 못한 발전소를 짓겠다고 하는데,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남덕우 국무총리한테 전화를 해요. 남 총리가 ‘맨날 전기가 부족해서 불이 꺼지는 시대인데, 국가에 돈이 없으니까 김 회장이 돈을 빌려오면 지으라’고 그래요.




  • 박혁진

    돈은 어떻게 빌려왔나요?

  • 배순훈

    돈이 없어서 짓는 거니까 턴키(Turnkey)로 짓는다고 제안했어요. 그 얘길 어디서 들었는지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우리나라에서는 턴키로 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남덕우 총리한테 얘기를 한 거야. 그러니 남 총리가 그냥 얼굴이 새파래져서 나를 부르셨어요. “너 다 거짓말 했다며? 우리나라는 턴키가 안 된다며?” 따져요.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고 세계에서 제일 큰 건설 회사 백텔(Bechtel)에다가 용역을 줘서, 한국 회사한테 프로포절(제안서) 내라고 해서 리뷰를 하고 백텔이 고르게 하자고 제안했어요. 따서 일본 사람들한테 미쓰비시 뭐 이런 데 다 가서 너한테 턴키로 줄 테니까 너 킬로와트 당 얼마에 할래 물으니. “120불.” 미쓰비시가 제일 쌌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명박이 계속 나보고 사기친다 이거에요. 그래서 “벡텔이 뽑았잖아? 그럼 됐지 뭐? 너 나중에 다른 거 해. 우리는 그 때 안 할 테니까.” 그렇게 해서 울산화력은 대우, 보령화력은 현대건설 이렇게 된 거예요.

  • 박혁진

    정권에서 깜짝 놀랐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발전소를 지었으니까요.

  • 배순훈

    남 부총리는 그냥 하라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게 그 김우중 회장의 그 캐릭터하고 능력이에요. 김우중 회장을 믿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수출 잘했으니까. 그러니까 ‘해외 사람들하고 잘 통하니까, 이거 금융은 해외에서 금융을 해 와야 되는데, 금융을 해오겠지’ 그렇게 믿은 거고, 금융회사들이 건설 심사를 할 테니까, 국제금융에서 인정하면 나는 인정해 주겠다는 거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남덕우 부총리는 리스크가 없었던 거예요.




  • 박혁진

    그 이후에 정부 주도의 중화학 조정 등이 끝나고, 리비아에서 메디컬 센터도 짓고 하셨는데 갑자기 스탠포드로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 배순훈

    회장님이 대한전선 인수를 할 때, 설원량과 얘기하면서 나를 빼고 그걸 인수를 한 다음에 “너 사장 하지 말고 부사장해” 그러셔. 그래서 안 한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뭘 하려고 그래?” 물으시길래 나는 이제 미국 가서 다시 공부해서 해외 건설을 하든지 뭐든 할 테니까 내 걱정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스탠포드에 응모를 했어요.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그게 1983년 40살 됐을 때에요. 그리고 1년 만에 MIT를 가서 ‘인더스트리 다이나믹스(Industry Dynamics)’라는 과목을 가르쳤죠.

  • 박혁진

    잘 나가던 기업인이 40살에 유학을 다시 가신 건데, 그때가 회장님 인생에 어떤 의미였나요?

  • 배순훈

    나는 비지팅 스칼라(방문연구원)니까 1년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1년은 MIT에서 보냈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다시 오면 카이스트로 가서 그걸 가지고 강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완전히 대우는 떠나는 걸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스탠포드에 가자마자 김우중 회장이 와서 나보고 반도체 해놔라, 뭐 해놔라 그 지시 사항이 많아. 그래서 ‘나 관뒀는데 왜 와서 자꾸 그러냐?’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반도체를 돌리고 있는데, 걔네들 뭘 하고 있는지 설명을 이렇게 쫙 했더니. “야, 그러지 말고 반도체 회사를 하나 사자. 그리고 그걸 중심으로 하자.” 그래서 내 강의에 들어오는 사장이 하나 있는데, 조그만 반도체 회사를 한대요. 그래서 “그거 한 번 보실래요?” 물으니 또 바로 보자 그래요. 하여간 사셨어.

    그즈음 마침 MIT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교수나 한 번 하자 그러고 있는데, 김우중 회장이 또 전화를 하세요. “GM하고 50대 50 합작인데, GM은 미국 사람이 사장을 해야 된다는데. 그거 미국 사람이 사장해서 되겠어? 그러니까 네가 와서 좀 사장해. 내가 GM하고 타협 봤으니까 네가 오면 한국 사람 시킨대.” 그래서 “제가 그 조그만 부품 회사에 왜 가냐?” 거절하니까 “부품 회사만 하겠어? 이제 자동차 맡아서 해” 해서 한국에 들어왔죠. 그때도 참 거절하기 힘들게 하시더라구요. 그게 1985년이에요.




  • 박혁진

    GM이 대우와 손잡은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 배순훈

    GM이 퀄리티 있는 부품을 만드려고 프랑스하고 멕시코하고 한국하고 비교해서 한국을 선정을 했는데, 퀄리티만 문제가 아니라 ‘값싸면서도 퀄리티 있게’ 만드는 것 때문에 미국 안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미국에서 가르쳤던 과목이 그거거든. 엔지니어링 디자인. 그러면서 생산한 게 ‘스타트 모터’에요. 대우자동차부품(1989년 대우기전공업으로 사명 변경)이 그 기술로 해서 상당히 인정을 받으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봐야 되는 거죠. GM도 그런 기술력을 인정했어요.

  • 박혁진

    자동차 부품을 하시면서 기술도 인정받고, 티코 탄생에도 일조하시고 하셨는데 왜 전자로 가시게 됐나요?

  • 배순훈

    김우중 회장님이 자동차 사장님을 했거든요. 나한테 “너 (부품)값을 좀 깎아라” 그러세요. 거기다가 내가 미국인 부사장이 7명이 있는데 그 친구들한테 얘기하세요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GM인데 뭐하러 깎아요? GM에서 이 가격에 사가는데 왜 대우자동차에 이걸 왜 싸게 팔아? 그걸 김 회장님이 섭섭하게 생각하신 거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와중에 노사분규가 터졌어요. 그때 노사분규 터지고, 김 회장님이 노조를 피하려고 갓 제대한 군인들을 일본에 가서 교육시키고 애썼는데. (교육생들이) 거기 가선 또 조총련하고 접촉해. 좀 (인격적으로) 믿고 해보자는 내 이론이 하나도 안 맞는 거예요. 그러니 김우중 회장이 대우자동차는 더 좋은 차를 만들고, 너는 전자로 가라 해서 전자로 간 거예요.

  • 박혁진

    대우전자에서 탱크주의 광고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나요?

  • 배순훈

    품질을 잘 만들고 이제 코래드를 불러다가 광고를 짜는데, 처음에는 대우가족 광고를 했죠. 그런데 그 사람들 얘기가 사장이 (광고 모델) 한번 해보자고 하고, 김우중 회장님도 나보고 하라고 하시고. 내가 제목을 뭘로 잡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김우중 회장님이 “야 탱크처럼 좀 튼튼하게 만들 수 없어?” 그래서 탱크로 갔어요. (웃음)

    나는 뭐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일을 했고. 김영삼 대통령 임기 중에 계속 내가 과학기술자문이야. 하여간 내가 그런 분들을 다 여러분 모셔봤지만, 김우중 회장 같은 분은 정말 찾을 수가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굉장히 행운아야.



    * 구술인터뷰는 총 3시간 50분간 진행됐습니다. 회장님의 동의하에 일부 내용만 발췌해 소개합니다.



배순훈 BAE Soon-Hun

  • 1943

    출생,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MIT 기계공학 박사

  • 1966

    미국 BorgWarner사 선임기사

  • 1972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 1976

    대우중공업 입사

  • 1985

    대우기전공업 사장

  • 1990

    대우조선 사장

  • 1991

    대우전자 사장

  • 1995

    대우전자 회장

  • 1997

    대우그룹 프랑스지역본부 사장

  • 1998

    대한민국 제4대 정보통신부 장관


구술 인터뷰 진행일지

일시
2025년 3월 28일 
장소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우재단빌딩 5층 아카이빙 룸 
참석자
배순훈 회장
박혁진 주간조선 편집장
최윤권 대우재단 사무국장
이금화 대우인회 사무국장
장윤석 대우재단 커뮤니케이션팀장(촬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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