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은 ‘세계경영’과 ‘기술대우’라는 두 기둥을 바탕으로 세계로 뻗어나갔다. 두 기둥은 어느 하나만으로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상호의존적 관계였다. 그 중에서도 ‘기술대우’의 꿈은 1992년 고등기술연구원의 설립과 함께 비로소 구체화됐다. 고등기술연구원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산학협동조합이라는 모델로 만들어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학계에도 큰 관심을 모았다. 이전의 기업 연구소는 그룹 내 한 계열사 안에 소속돼, 그 역할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고등기술연구원은 달랐다.
산학협동이란 독자적 모델로 만들어지면서 기존 연구소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될 정도로 고등기술연구원은 기술대우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 연구소의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임효빈 고등기술연구원 전 사장이다. 공대(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산업은행에 입사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산업은행을 다닌 지 8년 만에 돌연 은행을 그만두고 대우그룹 공채 1기에 지원해 대우와 인연을 맺었다.
공대를 졸업했던 그의 경력은 대우에서 꽃을 피웠다. 한국기계 철도 부문을 인수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대우가 중공업 부문에 강자로 떠오른 발판을 마련했다. 대우 아카이브 구술 인터뷰 과정에서 처음 털어놓은 에피소드지만,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까지 동원돼 추진됐던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탐사에 비밀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당시 정부가 신생기업 대우의 추진력과 기술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을만하다. 임 전 사장은 이후 여러 계열사를 돌다가 김우중 회장의 배려로 MIT에 1년여간 연수를 다녀왔고, 이때의 경험이 발판이 되어서 대우그룹 자체 연구소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고등기술연구원이란 이름으로 발족했고, 기술대우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