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은 대우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수한 기업들을 주로 맡아, 빠르게 회사들을 대우에 흡수시키는 역할을 한 '해결사'다. 산업은행에서 1973년 대우로 건너온 그는 입사 일주일 만에 기업공개라는 과업을 맡아, 성공적으로 주주들에게 대우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일화를 말하면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말한다. 이후 일본 토멘 종합상사를 모델로 대우가 종합상사로 발돋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기업공개 과정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그가 일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어떻게 대우맨으로 한 달 만에 녹아들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후 고려피혁, 대우중공업,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등을 두루 맡았다. 본인은 내세우지 않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김우중 회장의 마음을 잘 헤아린 경영인이었다. 현장 경영을 강조해 노조를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김우중 회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세심하게, 때로는 김 회장보더 더 먼저 회사를 돌봤다.
김우중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을 직접 만나 원칙적 대응을 강조하며 건전한 노사관계의 기틀을 놓기도 했다. 김태구 회장은 어느 회사를 가든 '마인드 셋'을 강조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일과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결과물이 나온다고 봤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정신이 바뀌면 세계 어느 나라와 경쟁해도 지지않는 최고의 대우맨이 될 것이란 자부심을 곳곳에 심었다.
김태구 전 회장은 김우중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가장 많은 반대를 했던 사람이 바로 나”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솔직함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김 회장은 지금도 대우에 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대우맨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대우에게 내가 배웠다고 말한다. 김태구 회장과의 구술 면담은 2025년 2월 17일 오후 3시에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우재단빌딩 5층 아카이빙 룸에서 약 4시간 가량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