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마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조선후기 정치사, 사상사 전공이다. 흔히 당쟁사로 알려진 조선후기 정치사에서 정치적 갈등이 당색뿐만 아니라 사상(思想)과 정책(政策)의 차이에 의해서도 일어났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였다. 양란(兩亂) 이후 국가의 위기에 직면하여 양반 지배층 내부에서 제도 개혁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흐름이 형성되어 실학(實學)과 탕평론(蕩平論)이 나왔다고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 과정에서 집권국가(集權國家)의 유구한 역사적 전통이 우리 역사의 특징임을 파악하고 국가 경영을 통해서 계급모순을 극복해온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저서로 박사논문을 간행한 조선후기 정치사 연구 1-인조대 정치론의 분화와 변통론 (2006)이 있고, 역서로 목민고·목민대방 (2012)이 있으며, 공동 번역서로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 후의 기억- 현고기(玄皐記) 번역(飜譯)과 주해(註解) (2015), 충역의 시비를 정하다- 정변록(定辨錄) 역주 (2016), 형감 (2019), 대백록(待百錄) (2019) 등이 있다.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있다.
Abstract
조선의 당쟁, 200년이라는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전개되었던 이전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매우 특이한 현상
1575년 동인·서인의 등장부터 1579년 정여립 옥사 이후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그리고 북인이 대북과 중북·소북, 골북과 육북 등으로 분화되는 과정은 물론 인조대 서인 가운데 청서·훈서, 노서·소서, 원당·낙당, 산당·한당 등의 명목이 등장하는 경위, 나아가서 숙종대 남인이 청남과 탁남으로 분열되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어 갈등하는 과정도 남김없이 기록하였으며, 영조대에 노·소론 탕평파가 완론과 준론으로 분열되어 대립하는 양상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렇게 『당의통략』은 선조, 인조·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 등 조선후기 왕대별로 제목을 붙여 통사형이자 서술형의 당론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건창은 당의통략의 맨 마지막에 「원론(原論)」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의 당쟁을 논하였다. 여기서 그는 조선의 당쟁에 대해 거국적으로 모든 사람이 그 와중에 휩쓸려 들어갔으며 200년이라는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이전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분명히 붕당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여 조선이 망국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본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당쟁부정론은 이건창이 살던 시기에 유행한 당쟁망국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날조하여 정체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 등을 제창하였다. 이들이 당쟁망국론을 과장하고, 확대·부연하여 조선인들에게 당파를 짓는 본성이 있어서 그처럼 치열한 당쟁이 전개되었다고 주장한 것이 당파성론이다. 이에 따르면 당쟁은 민족성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민족을 개조하지 않는 한 조선인은 영원히 당쟁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가능한가?
해방 이후 역사학계에서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전개하였다. 그 결과 한국 역사가 단계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것은 한국인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성취한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어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이나 타율성론은 상당 부분 극복된 것이 사실이었다.
조선후기에 당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의 정치가 특정 붕당의 당리당략에 의해 좌우되고 권력자의 사리사욕에 의해 오염되었으며,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 음모와 모략도 다반사로 행해졌다. 그렇지만 이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후기에도 이러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임을 자각한 관인·유자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였다. 이들이 주장한 것이 바로 탕평론이었다. 이들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당쟁망국론은 이들의 존재와 노력을 도외시하는 결정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건창이 당의통략을 통해서 말하려고 했던 것 역시 이것이었는데, 그것을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당의, 즉 당론만으로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당론과 정책과의 관련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것을 간과하거나 생략하였으므로 특정 당파의 당론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이 책이 가진 궁극적 한계가 있었다.
Original Volume
Title : 黨議通略
Author : 李建昌
Publisher : 光文會(광문회)
Published Year : 1910
저자(한글) : 이건창
원서 언어 : 漢文
저자 약력 : 李建昌, 1852~1898. 19세기 후반 대내외적인 변혁의 시대에 관료이자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이고, 조선의 2대 왕 정종의 후손으로서 인조대 이경직(李景稷)은 판서, 이경석(李景奭)은 영의정까지 지낸 집안이었다. 그의 조상들은 숙종대 소론으로 좌정하여 경종·영조대까지 소론 탕평파로 활약하다가 노론의 공격을 받고 1755년 을해옥사 이후 조정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그는 학문적으로 양명학을 가학으로 물려받은 강화학파(江華學派)에 속하였다. 순조대 그의 조부 이시원(李是遠)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판서까지 이르렀지만,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그 형제가 자결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15세에 조부의 순절(殉節)을 기리는 과거에 최연소로 합격하여 조정에 진출한 뒤 청현직을 두루 역임하였지만 현실 정치와 불화하여 세 번이나 유배당하는 곤경을 당했다. 조부 이시원의 작업을 이어서 당의통략 을 저술하여 그 집안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하였다.
2. 인조~효종: 서인과 남인의 갈등과 서인의 분열
《개관》
인조반정 직후 각 당파의 동향
서인과 남인의 갈등
서인의 분열: 훈서·청서, 노서·소서, 원당·낙당, 산당·한당
한당과 산당의 갈등
3. 현종대 예송: 왕과 양반은 같은가, 다른가
《개관》
기해예송: 국조오례의 냐 의례 냐
갑인예송: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권이 교체되다
4. 숙종대: 거듭되는 환국과 탕평론
《개관》
남인 정권과 서인의 갈등 및 청남·탁남의 분열
경신환국과 남인 처벌
김석주의 정탐정치와 서인의 분열
회니시비: 윤선거·윤증 부자와 송시열의 갈등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격화되는 노·소론 갈등 (1)
장희빈의 죽음과 세자를 둘러싼 갈등
격화되는 노·소론 갈등 (2)
가례원류 시비와 병신처분
정유독대와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
5. 경종조: 임금 시해 세력과 보호 세력의 다툼
《개관》
경종 즉위 초 정치지형과 세제 책봉을 둘러싼 논란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였다가 취소하다
신축환국과 소론 정권의 성립
임인옥사로 드러난 노론의 경종 살해 음모
소론의 분열: 급진파와 온건파의 갈등
경종의 질병과 세제 보호
6. 영조조: 지배층의 탐욕과 탕평책의 굴절
《개관》
영조의 즉위와 노론의 집권
정미환국과 분등론
무신난과 탕평책의 굴절
기유처분과 각 당의 탕평책 비판
영조의 노론 비판과 경신처분
이광덕의 탕평론과 신유대훈
을해옥사와 천의소감 , 그리고 세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