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국민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다. 덕성여대 교수를 거쳐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1990~2006)했다. 콜롬비아대 객원 교수, 교토대 초청 학자, 와세다대 교환교수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어학회, 국제 역학서학회, 국제고려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고문으로 있다. 고려대 명예 교수.
주요 저서로는 『한글의 발명』(2015),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2014),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2012), 『삼국시대 한반도의 언어 연구』(2011), 『노박집람 역주』(2011), 『몽고자운 연구』(2009), 『역주 원본 노걸대』(2004), 『역학서 연구』(2002) 등 다수가 있다. 2009년과 2004년 저서는 중국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 중국어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Abstract
한글은 왜 첫 글자가 기역 /ㄱ/일까?
왜 모음자는 /ㅇ/를 붙여서 쓸까?
왜 훈민정음을 반절(反切)이라고 할까?
최만리의 반대상소에는 왜 ‘언문 27자’일까?
한글 창제의 기본적인 문제에 이 책은 답한다.
이 책은 『월인석보(月印釋譜)』를 옥간(玉簡)에 새겨서 책으로 만든 옥책에 대한 연구이다. 한·중·일 동양 삼국에서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불교 문화재인 불경의 옥책은 그 연원이 멀리 신라 시대까지 올라간다. 다만 그동안 관련 학자들의 무지에 의하여 이러한 귀중한 우리 문화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소장자의 헛간에서 신문지에 싸서 방치되었다. 이 책에서는 먼저 우리 문화재인 불경의 옥책에 대하여 고찰하고, 정통(正統) 12년(1447년)의 간기를 가진 월인석보 옥책에 대하여 감정을 겸하여 구체적으로 고찰하였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월인석보』가 천순(天順) 3년(1459년), 세조 5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통 12년, 세종 29년의 월인석보 옥책은 이보다 12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런데 세조가 쓴 ‘월인석보서(序)’에 원래 『월인석보』는 부왕인 세종이 지은 구권(舊卷)이 있고, 자신이 편찬하는 것은 신편(新編)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이 서문은 일제(日帝) 의 어용학자 에다 도시오(江田俊雄)에 의하여 세조가 부왕인 세종에게 양보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학계에 통용되어 오늘날까지 모든 교과서에 『월인석보』는 세조 5년에 간행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한 월인석보 옥책으로 세조의 서문대로 세종 때에 이미 『월인석보』가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월인석보』에는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란 훈민정음의 언해본이 첨부되었다. 그러나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된 『훈민정음』이란 서명의 단행본도 이것과 같은 언해본이다. 이 책에서는 후자가 세종 때에 간행된 『월인석보』의 권두에 첨부되었던 언해본을 따로 떼내어 단행본으로 한 것이고, 전자는 세조 때의 『월인석보』 신편에 첨부한 훈민정음의 언해본임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세종어제’를 앞에 붙인 것이다. 이렇게 보아야 세조의 어제서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한글의 창제에 대한 그동안의 의문점 등을 파헤쳐서 그 답을 찾았다. 가령 한글의 첫 자가 /ㄱ/인 것은 새 문자 제정의 모델로 삼았던 범자(梵字)와 파스파 문자가 모두 첫 글자를 [ka]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중국 성운학(聲韻學)에서는 한자를 반절(反切)로 표시한다. 『언문자모』에서 언문, 즉 훈민정음을 반절이라고 한 것은 이 문자 제정의 동기가 한자음 표기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모음자에 /ㅇ/를 붙이는 것은 모음을 욕모(欲母)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정치한 고찰을 통해 밝혀 주고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한글의 창제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 왔는데, 이 책은 그런 모든 쟁점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한글 제정의 동기와 목적, 발명에 참여한 인물과 제정 시기부터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와 영향을 받은 문자까지.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없는 독창적 글자를 만드셨다.”는 신화를 넘어, 과학적이고 이론적 바탕 위에서 한글의 역사적 의미와 언어학적 가치, 탁월함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