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재단 대우학술총서 제620권 중국과 조선, 그리고 중화 written by 김영식 and published by 아카넷 in 2018
대우학술총서 620

중국과 조선, 그리고 중화

조선 후기 중국 인식의 전개와 중화 사상의 굴절

2018/12/06
아카넷 출판
신국판 A5 152x225mm
516 페이지
27,000원
ISBN 978-89-5733-613-7 94910
2019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Author(s)

김영식

About the Author(s)

김영식
1969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화학물리학 박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2001년부터는 동양사학과로 옮겨 2013년 정년퇴임 시까지 재직하고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1984년부터 퇴임 시까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겸임교수로 있었으며,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주희의 자연철학』, 『정약용의 문제들』, 『유가전통과 과학』 등이 있다.

Abstract

한국사에서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사에서 중국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통 시기 한국의 철학, 종교, 예술, 과학 등 여러 문화요소들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접하게 되는 문제 한 가지가 ‘한국사에서의 중국의 문제’이다. 전통 시기 한국의 사상(思想), 기물(器物), 실행, 경향 등 많은 것들이 중국의 것이거나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며, 때로는 이것들이 지리적으로 한국에 위치했다는 것 이외에는 중국의 것들과 완전히 같은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것들의 한국에서의 전개, 진화, 발전 과정에서도 중국의 압도적인 영향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사인(士人)들이 중국에 대해 지녔던 다양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해 살펴보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사실 중국을, 중국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조선 후기 사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문화에 대한, 가치에 대한, 그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의 기본이 되는 문제였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거의 모든 사인이 중국과 중국 문화가 자신과 조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견해를 지니고 있었고, 그들의 글과 대화 속에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의식적으로 논의하고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도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제1부는 중국에 대한 조선 후기 사인들의 인식과 태도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경향들, 그리고 그 같은 경향들이 나타나고 변화하는 과정을 다루는 장들로 이루어진다. 먼저 1장에서 조선 후기 사인들의 중국에 대한 의식을 지배한 ‘중화 사상’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이어지는 2-4장에서 중화 사상이 조선 후기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몇 가지 경향들─대명의리, 청에 대한 부정적 태도, 주자 정통론의 심화 등─에 대해 다룬다. 5장은 조선의 문화가 중화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소중화’ 의식, 나아가 중국이 오랑캐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제 조선이 유일한 중화라는 ‘조선중화’ 의식에 대해 다룬 후, 6장에서 이 같은 ‘소중화’, ‘조선중화’ 사상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용하변이(用夏變夷)’ 사상과 이를 뒷받침한 기자(箕子)에 대한 믿음과 해석 등을 다루고, 이로부터 이어진 단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고구려, 발해 및 고대 조선의 북방영토에 대한 관심을 살펴본다. 7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조선 후기 사인들의 조선인으로서의 자의식, 조선의 문화 및 학문에 대한 관심 및 자부심을 다룬다. 8장은 청의 높은 문화 수준을 인식하게 되면서 일부 조선 사인들 사이에 그것을 배우려는 ‘북학’ 사상이 출현하여 전개되는 과정을, 그리고 끝으로 9장에서는 그 같은 상황에서 청 중심의 현실을 수용하는 경향이 퍼져가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에 따라 1부는 결국 조선 후기 사인들의 중국 인식을 중심으로 한 조선 후기 사상사 전체의 재조명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선 후기 사인들의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지극히 복잡하고 다양했으며 서로 모순이 되거나 마찰이 존재했음을 볼 수 있다.
제2부는 1부의 여러 장들에서 살펴본 이 같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중화 사상의 성격에 대해 재조명하는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10장은 ‘중화’를 규정하는 지역, 종족, 문화의 세 가지 기준들 중에서 문화가 이 같은 여러 경향과 사조들이 형성, 전개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중화 관념이 상대화하는 경향이 출현함을 보인다. 11장은 소중화, 조선중화 의식이나 조선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자주적, 독자적 경향, 북학 사조 등 조선 후기 사인들의 중국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 다양한 경향과 사조들이 일견 중화 사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중화 사상에 긴장과 모순을 빚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들이 모두 중화 사상의 틀 안에서 일어난 것임을 보이고, 중화 사상이 이적(夷狄) 왕조 청이 중원을 지배하고 서양 문물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화이론(華夷論)의 다양한 측면들과 그것들 사이의 모순과 긴장이 빚어내는 화이 구분의 균열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폭넓은 틀이었음을 보인다.
제3부에서는 조선 후기 사인들의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다양한 측면을 다른 각도들에서 다시 조망해볼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 주제들을 다룬다. 먼저 12장에서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중심’인 중국과 ‘주변부’ 조선이라는 관점에서 봄으로써 앞에서의 논의의 전제이자 배경으로 깔려 있던 중화 사상이라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관점에서 벗어나서 이를 더 일반화시켜보려고 시도하는데, 특히 주변부 조선의 사인들이 중심부 중국 학계와 사인들에 대해 지닌 태도를 살펴본다. 13장은 조선이 서양 과학을 도입함에 있어 중국에 의존하는 모습, 그리고 서학중국기원론에 대한 조선 사인들의 태도를 다룬다. 14장은 중국에서 발생했거나 유행한 특정한 사조나 문화요소가 조선에서 나타나는 시간상의 지연, 그리고 그 같은 시간지연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중국 원형(原形)의 변형, 왜곡 등에 대해서 주자학, 서양 과학과 우주론, 천주교 등이 조선에 도입되는 과정 등을 예로 들어 살펴본다. 마지막 15장에서는 중화 질서의 틀 안에서 나타나는 조선의 자주적, 독자적 움직임의 한 예로 조선의 역 계산과 역서 간행 작업을 살펴보고, 그것이 흔히 거론되듯이 독자적 역(曆), 즉 ‘자국력(自國曆)’을 지향하는 움직임이었는지를 재검토한다.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해 조선 후기의 사인들이 지녔던 인식과 태도의 다양함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에게서 볼 수 있었던 점은 그들이 대체로 중국 중심의 중화 체제를 인정하고 자신들이 중화의 전통을 계승한 중화의 후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선 후기 사인들의 중국 인식이 중화 사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이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때로 중국 중심의 중화 사상이 독자적 자주 국가로서는 벗어나야만 할 ‘사대’와 ‘종속’의 사상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이는 중화 사상의 틀 속에서 발현될 수 있는 지적 활기와 다양성, 역동성을 무시하는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좋은 점과 독특한 점만을 주로 보고 부정적인 면은 외면하려고 하는 것은 제대로의 역사 이해에 방해가 된다. 흔히 한국사의 독특한 특성들로 드는 당쟁(黨爭), 노비(奴婢)제 등의 예들도 그것들이 한국사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고 하여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같은 요소들이 한국사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났던 것임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대해서도 연구함으로써 그것들이 한국 사회와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들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님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조선 후기 사인들의 중국과 중화 문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살펴본 이 책이 그 같은 균형 잡힌 시각의 연구가 자리 잡는 데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Table of Contents

머리말

제1부 중국 인식의 전개

1장 중화 사상
1.1 중화 사상과 중화 체제
1.2 중화 사상의 정착
1.3 중화 사상의 다양한 표현

2장 대명의리
2.1 ‘재조지은’
2.2 북벌론의 좌절
2.3 대명의리 정서의 지속과 확산
2.4 명 숭배, 계승 의식
2.4.1 남명
2.4.2 명의 유민
2.4.3 대통력서
2.4.4 대보단
2.4.5 관념적 중화로서의 명
3장 청에 대한 부정적 태도
3.1 청에 대한 종주국 인정 거부
3.2 청의 예의와 풍속에 대한 부정적 평가
3.3 청의 학문 비판
3.4 청의 멸망 가능성

4장 주자 정통론의 심화
4.1 주자에 대한 존숭과 주자 정통론의 심화
4.2 주자 절대화
4.3 주자 존숭의 다양한 모습들

5장 ‘소중화’, ‘조선중화’
5.1 ‘소중화’
5.2 ‘조선중화’
5.3 ‘소중화’와 ‘조선중화’
5.4 명과 중화의 계승

6장 기자, 단군과 고구려, 발해: 고대사의 재인식
6.1 기자
6.2 단군
6.3 고구려, 발해

7장 조선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자부심
7.1 조선인으로서의 자의식
7.2 조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 ‘조선풍’
7.3 조선의 문화와 학문에 대한 자부심

8장 ‘북학’
8.1 청 문화의 높은 수준에 대한 인식
8.2 조선의 낙후
8.3 ‘북학’

9장 청 중심의 질서 수용
9.1 대명의리 정서와 반청 사조의 퇴조
9.2 청 지배 질서의 수용
9.3 청과의 일체감

제2부 중화 사상의 재조명

10장 문화로서의 중화와 ‘중화’ 관념의 상대화
10.1 문화로서의 ‘중화’
10.2 ‘중화’ 관념의 상대화
10.3 서양 지리 지식의 영향

11장 중화 사상의 폭과 유연함
11.1 ‘소중화’, ‘조선중화’ 의식
11.2 조선의 ‘독자성’ 인식과 조선 문화에 대한 자부심
11.3 북학
11.4 중화 관념의 상대화
11.5 화이관의 균열과 중화 사상의 유연함

제3부 구체적 사례들

12장 ‘주변부’ 조선 사인들과 ‘중심’ 중국 사인들
12.1 ‘중심’ 중국과 ‘주변부’ 조선
12.2 조선의 학문과 문화에 대한 중국 사인들의 무관심
12.3 조선 사인들의 중국 사인들과의 교류
12.4 중국의 평가에 대한 조선 사인들의 관심

13장 중국을 통한 서양 과학 도입과 ‘서학중원론’
13.1 중국을 통한 간접적 도입
13.2 ‘서학중원론’
13.2.1 ‘서학중원론’
13.2.2 조선의 서학중원론 수용
13.2.3 서학중원론에 대한 조선 사인들의 다양한 태도
13.2.4 서학중원론의 거부

14장 중국으로부터의 전래: 시간지연, 변형 및 왜곡
14.1 주자학
14.2 서양 과학과 우주론
14.3 천주교
14.4 ‘시간지연’의 다른 예들
14.5 시간지연: 낙후? 차별? 독창?

15장 조선의 역서와 중국의 역법: ‘자국력’?
15.1 조선의 ‘역서’와 중국력
15.2 조선의 역 계산
15.2.1 조선의 역서와 청력의 차이
15.2.2 조선 자체적 역 계산 능력의 필요
15.2.3 정조 시기 역 계산 능력에 대한 자신감
15.3 조선 자체의 역서: ‘자국력’?
15.3.1 세종대 역법 재평가
15.3.2 팔도 경위도 수록
15.3.3 일반 사인들의 ‘자국력’ 주장
15.4 중국 역서 수준의 역서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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