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문홍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파리 4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원 강사,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지냈다.
현재 기독교 사회과학연구소장으로 있으며,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학과 도덕과학』(1994), 『한국인의 일상문화』(공저, 1997), 역서로는 『무질서의 사회학적 위치』(R. Boudon, 1990) 등이 있다.
이 책은 현대사회학의 이론적?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한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케임에 대해 20여 년을 연구해 온 필자가 탈현대 사상과 전통 사상에의 회귀라는 두 갈래 길 사이에서 지적 방황을 하는 한국 사회학 공동체에 뒤르케임 전통의 사회학은 어떠한 사회학적 교훈을 줄 수 있는가를 탐색해 보려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학 공동체는 서구 선진국이 이룩한 근대화를 짧은 기간에 단축해 따라가려는 동기와 비교사회학적 관심에서 막스 베버의 사회학(특히 종교사회학, 동양사회론)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중견 사회학자들로 하여금 사회구성체론이라는 이름으로 맑시즘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러한 사회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케임은 구조기능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보수적 사회학자 또는 동양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서구 중심적, 보편적 사회학 이론을 추구한 사회학자로 자연스럽게 배척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21세기의 한국 사회학 공동체는 다시 한번 뒤르케임과 그 전통의 사회학을 체계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뒤르케임의 사회학에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현대성, 탈현대성과 관련된 소중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뒤르케임과 그 전통의 사회학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전통문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에, 21세기 한국 현대문화 발전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데에 소중한 지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10년 간 한국 사회학 공동체는 인문사회학의 탐구열과 제도적 지원이 실종된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실용적인 활용이 가능한 분야만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류의 공통적 지혜의 유산인 고전사회학과 그 학문의 소명의식을 한국 사회의 연구를 위한 기초과학적 전통으로 축적하는 작업을 소홀히 해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필자는 지난 1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뒤르케임 사회학과 그 전통의 사회학을 역사적?사상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다시 조감하는 작업을 했다. 기존의 대부분의 뒤르케임 연구서들은 서구의 사회학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썼다는 한계점도 있지만, 뒤르케임 학파의 동양사회론을 주목하지 못함으로써,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바탕으로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한국 현대문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뒤르케임의 사회학 연구가 어떠한 이론적, 방법론적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뒤르케임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통적 가치관이 뿌리째 흔들리는 세기말적 전환기에 새로운 시대와 새사회에 적합한 도덕적 가치관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시작했다. 이러한 뒤르케임의 이론적 통찰력을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문화적 유산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자는 뒤르케임 사회학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하였다.
첫째, 이제까지 서구 사회학자들의 뒤르케임 사회학에 대한 연구들을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회학의 사회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 연구를 통해 뒤르케임의 사회학이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시대 상황 분석에 적합한 어떠한 이론적 통찰력을 보여주는가를 살펴보았다.
둘째, 이러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고전적 가치관의 회복, 유교전통의 부활, 아시아적 가치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고유한 문제제기에 어떠한 적실성을 갖는가를 그의 도덕과학론과 동양사회론을 중심으로 다시 검토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뒤르케임의 사회학은 고전 사회학의 창시자들 가운데 21세기에 어울리는 가치관을 정립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학 공동체에 가장 적실성 있는 사회학적 성찰을 지니고 있다. 뒤르케임이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에서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을 만들면서 했던 작업은, 유교전통의 한국 사회학자가 고전적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목표로 한국 사회의 전통에 맞는 새 도덕의 몇 가지 특징들과 방향을 탐색하는 작업과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뒤르케임의 사회학은 한국학이나 동양학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뒤르케임의 사회학과 그 제자 마르쎌 그라네의 연구들은 유교문화를 공통기반으로 하고 있는 동양 사회의 연구에 크게 유용하다. 뒤르케임의 사회학은 그 이론적 발상 자체가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동양 유교문화 전통의 사고와 비슷한 점이 많다. 첫째, 개인의 자아발달과 바람직한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개인의 자기 수양과 현대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둘째, 현대 사회의 계급불평등과 가치관의 혼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통합과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을 강조하는 점이 그러하다. 셋째, 특정 사회의 구조를 전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종교를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발상이 그러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 한국 사회학자들이 주목해야 할 가강 중요한 사실은 뒤르케임의 이러한 사회학 방법론과 그 사회학 전통이 제자 마르쎌 그라네Marcel Granet를 중심으로 중국 문화와 사상을 연구하는 새로운 프랑스 사회학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마르쎌 그라네의 사회학은 “중국 사상”의 분석을 통해서 후기 기독교 시대 서구 사회의 미래 시민종교의 모습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한국 사상과 전통문화의 긍정적 측면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사회학도들에게 소중한 사회학적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현상황에서 고전 사회학자 뒤르케임을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까지 사회학사를 통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했던 것과는 달리, 뒤르케임이 계몽철학 전통의 개인의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대 서구 문명의 합리성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고, 그러한 비판적 성찰을 근거로 새로운 현대성 탐구의 사회학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뒤르케임은 기존 사회과학의 합리주의를 비판적으로 개혁하고, 일상적 삶과 대화에 있어서 감정과 정서와 신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현대 사회의 아노미적인 상황에서 사회학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를 학문으로, 실천적 삶으로 보여주다가 간 학자이다.
특히 뒤르케임은 세기말적 전환 시점에 도덕과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인류애에 입각한 공감compassion과 구성원들 간의 신뢰감에 기초한 진솔한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데, 이것은 그의 문제제기가 감정과 믿음을 중시하는 탈현대 시대에도 적실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뒤르케임이 21세기에도 설득력을 갖는 세기말적 사회현상에 관한 진단과 처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크게 10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I장은 뒤르케임의 생애를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뒤르케임의 소명의식의 확립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II장에서는 흔히 방법론적 전체주의나 사회실재론으로 불리는 뒤르케임 사회학 방법론의 입장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다양한 학파의 현대 사회학자들이 현대 사회학의 인식론적 위기의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뒤르케임의 사회학 방법론 전통을 어떻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인식론 논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III장에서는 뒤르케임 사회학 프로젝트의 주요한 주제인 “사회분업론”과 “자살”의 문제를 그 문제의식 뒤에 숨어 있는 사회철학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뒤르케임의 아노미나 도덕적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이 한 세기 전의 낡은 개념이 아니라, 그 사상사적인 맥락을 알 때, 현대 사회에서도 상당한 적실성을 갖는 소중한 개념임을 보여주었다. IV장에서는 막스 베버의 정치사회학에 비해 상당히 빈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뒤르케임의 국가론을 포함한 정치사회학 이론이, 우리가 그 사상사적 맥락을 정확히 알 때, 현대 사회의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창의적이면서도 베버적인 문제의식에 보완적인 중요한 시각임을 보여주었다.
V장에서는 뒤르케임의 사회학 이론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변화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분석하는가를 몇 가지 주요 개념을 중심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그의 사회주의 교리에 대한 분석과 그 당시 직업집단 이론에 대한 분석이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사회복지 제도의 근간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VI장에서는 탈기독교 시대의 새로운 도덕과 시민종교를 찾는 뒤르케임의 관점을 검토해 보았다. 특히 현대 사회의 구조 변화와 관련하여 현대인의 도덕적 사고방식과 집단문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개인주의를 중심 축으로 바뀌어 가는가를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변화의 결과로 후기 기독교 시대에 뒤르케임이 생각했던 시민종교적 대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그의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중심으로 검토해보았다.
VII장은 오늘날 사회학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주제인 “현대성 탐구”라는 맥락에서 뒤르케임의 사회학을 다시 검토해 보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그의 복지 국가의 기초를 마련하려는 노력과 탈기독교 시대의 시민종교를 수립하려는 노력, 그리고 현대 사회에 필요한 협동과 신뢰의 도덕을 도덕적 개인주의를 중심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현대성 추구의 중심적 문제틀이라는 것을 정리해보았다.
VIII장에서는 현대 사회학의 화두인 “탈현대 논쟁”을 뒤르케임의 사회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장은 뒤르케임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론이 탈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데 상당한 적실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IX장에서는 막스 베버의 동양사회론에 필적할 수 있는 뒤르케임과 그 학파의 동양사회론을 찾아보았다.
이 책의 결론 부분인 X장에서는 1세기 전에 프랑스에서 시작한 뒤르케임의 사회학을 21세기 초에, 유교문화 전통의 회복을 통한 민족 정체성 확립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지금 이 시점에 한국의 사회학도가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특히 뒤르케임의 사회학을 그의 문화사회학과 종교사회학적 문제의식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문제틀은 한국처럼 빠른 속도로 산업화되고, 타종교문화와의 상호작용이 역동적인 나라에서, 전통문화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산업사회에 적합한 시민의식과 가치관을 계발하는 데에 중요한 지적 상징적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