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파도키아 미술
/ 대우재단총서 / 카파도키아 미술
Author(s)
조수정
Biography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하였고, 프랑스로 건너가 리옹 대학, 스트라스부르 제2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파리 제1대학에서는 졸리베 레비(C. Jolivet-Levy) 교수의 지도로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교회 벽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비잔티움 고고미술사연구소와 프랑스 학술원 산하의 비잔티움 도서관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와 박물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세 서유럽과 비잔티움의 종교와 예술, 그리고 상징과 도상학에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적 사고와 표현」(공저), 「천사와 비천」(공저), 「영원을 향한 예술」, 「비잔티움 미술의 이해」가 있고, 비잔티움 도상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Abstract
비잔티움 교회미술의 보고, 카파도키아 미술
비잔티움 제국에서 마케도니아 왕조기-이슬람 지배기의 변천 살펴
카파도키아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부터 교회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4세기경에는 카이사레아의 성 바실리우스와 니사의 성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저명한 교부(敎父)들이 활동했던 곳으로서 그리스도교 성지로 이름이 높았던 지방이다. 이렇게 많은 은수자들이 모여들어 수도원 밀집 지역을 이루었기에 카파도키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변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보다 더 활발하게 교회미술이 전개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교회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바위산을 깎아 만든 암혈 건물이라는 건축적 특성과 대도시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외딴곳에 세워진 지리적 특성 때문에 후대의 파괴를 모면할 수 있었고, 상당히 많은 수의 교회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또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암혈 교회라는 특징 덕분에 프레스코화들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을 수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내부를 그림으로 장식한 교회는 300개가 넘으며, 장식이 없는 단순한 교회를 합하면 교회의 수는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비잔티움 제국 시기 카파도키아의 역사는 미술 양식의 변화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비잔티움 제국 초기부터 성화상 논쟁까지의 시기로, 특히 7세기 초반부터 9세기 중반까지는 ‘변모의 시기’ 혹은 ‘암흑기’로 불린다. 이 시기는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뿐 아니라 성상파괴주의의 여파로 건축과 회화 등 예술 분야에서 일대 침체기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성화상 논쟁 시기를 대변하는 독특한 작품들이 남아 있어 당대 성상파괴주의가 교회와 예술에 끼친 영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마케도니아 왕조 시기로 당대 사람들은 이를 ‘제2의 헬레니즘’으로 생각했을 정로도 번영을 누리던 때였다. 종교예술 활동은 절정에 달했는데, 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새로 지어지거나 보수되었고, 다수의 예술품이 제작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의 암혈 교회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세 번째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된 시기로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까지 이어지는 튀르크 정복과 카파도키아의 문화 재생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13세기 동안의 기간이다. 비잔티움의 세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1082년 카이사레아가 점령당하는 수난을 겪은 카파도키아는 이후 룸 이슬람 왕조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의 예술은 카파도키아 지방 전통, 튀르크 문화, 니케아 왕조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비잔티움 제국의 생활상과 종교상이 반영된 카파도키아 미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문화 접변은 유례없는 문화유산 남겨
카파도키아의 프레스코화는 문헌 사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단순히 교회 내부 장식의 기능을 넘어서 건물의 용도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 후원자의 역할이나 당시의 정치적·경제적 상황, 카파도키아 지역민의 종교심과 생활상을 알려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카파도키아에서 초기 비잔티움 시기부터 유행했던 도상인 십자가는 당대의 성 십자가 경배 신심과 풍습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건축되었던 성당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성화상 논쟁 시기에는 교회 내부 장식을 위해 양식화된 덩굴 문양 등으로 채워진 바탕 위에 커다란 십자가를 그려 넣는 경우가 많으며, 고전적 모티프인 풍요의 뿔, 포도나무, 석류, 아칸서스, 월계수, 공작 깃털을 장식적으로 변형한 문양을 즐겨 사용했다. 결국 십자가의 형상을 빌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다. 당시에 건축된 성당들은 모두 작은 규모이며 내부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그림으로만 장식되어 있어 정치적 혼란이 몰고 온 경제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로 불리는 9~10세기에 카파도키아 미술은 전례 없는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때 매우 많은 교회가 건립되었고 그 내부도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 시기는 비잔티움 문화예술의 절정기로 알려졌지만 이를 보여주는 자료는 매우 빈약했다. 그런데 카파도키아에는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이러한 자료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십자가 도상은 10세기 이후 점차 감소했고, 교회 내부를 십자가로 장식하던 비표상적 문양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바뀌어 수많은 작품이 새롭게 제작되었다. 특히 마케도니아 왕조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에 힘입어 제국의 변경이었던 카파도키아는 종교적 위상뿐 아니라 군사적·정치적 중요성도 높아지게 되면서 카파도키아 미술은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와 성인들은 물론, 당대의 황제와 군인의 초상까지 그리게 되어, 주제 면에서 매우 풍요로워졌다.
카파도키아에서는 11세기 중반까지 매우 많은 성당이 세워졌는데, 수도원 성당이나 개인용 성당이 주를 이루었고, 후원자는 대부분 비잔티움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평신도들이었다. 후원자의 초상이 카파도키아 지역의 성당 곳곳에 남아 있는데, 때로는 그들의 이름이나 관직 등 부가 사항도 적혀 있어 당대 카파도키아 지역의 생활상과 그리스도교 신심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당 내부장식은 후원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회화처럼 정교한 신학 체계를 반영하는 도상 체계를 도입하기도 하고, 십자가나 후원자의 초상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도상체계를 따르기도 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12세기에 이슬람 세력권으로 편입된 카파도키아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적 그리스도교 도상이 큰 변화를 겪었다. 이슬람권 정치체제로의 편입이라는 사회의 전 분야에 걸친 근본적인 변모에 따라 이 시기의 예술은 카파도키아 지방 전통, 튀르크 문화, 비잔티움을 계승한 니케아 제국의 영향이 복합된 일종의 문화 접변 현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하여 새롭게 탄생한 카파도키아의 미술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셀주크 튀르크에 점령된 12세기에는 그리스도의 도상을 지우고 비표상적 문양으로 대체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고, 비잔티움 전사인 성 게오르기우스와 성 테오도루스의 그림에서는 갑옷 위에 걸쳐 입은 망토에 술프린지 장식이 덧붙여져 있고, 말갖춤이 아랍 문자로 꾸며져 있어 당시 점증하던 튀르크 문화의 영향이 드러난다. 또한 이슬람 세력권에 편입된 이후에는 이슬람과의 접촉이 빈번해지는 상황을 반영하듯, 이슬람 문자를 모방한 장식적 모티프가 성당 내부 장식에 사용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마케도니아 왕조기-이슬람 지배기의 변천 살펴
카파도키아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부터 교회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4세기경에는 카이사레아의 성 바실리우스와 니사의 성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저명한 교부(敎父)들이 활동했던 곳으로서 그리스도교 성지로 이름이 높았던 지방이다. 이렇게 많은 은수자들이 모여들어 수도원 밀집 지역을 이루었기에 카파도키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변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보다 더 활발하게 교회미술이 전개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교회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바위산을 깎아 만든 암혈 건물이라는 건축적 특성과 대도시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외딴곳에 세워진 지리적 특성 때문에 후대의 파괴를 모면할 수 있었고, 상당히 많은 수의 교회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또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암혈 교회라는 특징 덕분에 프레스코화들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을 수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내부를 그림으로 장식한 교회는 300개가 넘으며, 장식이 없는 단순한 교회를 합하면 교회의 수는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비잔티움 제국 시기 카파도키아의 역사는 미술 양식의 변화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비잔티움 제국 초기부터 성화상 논쟁까지의 시기로, 특히 7세기 초반부터 9세기 중반까지는 ‘변모의 시기’ 혹은 ‘암흑기’로 불린다. 이 시기는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뿐 아니라 성상파괴주의의 여파로 건축과 회화 등 예술 분야에서 일대 침체기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성화상 논쟁 시기를 대변하는 독특한 작품들이 남아 있어 당대 성상파괴주의가 교회와 예술에 끼친 영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마케도니아 왕조 시기로 당대 사람들은 이를 ‘제2의 헬레니즘’으로 생각했을 정로도 번영을 누리던 때였다. 종교예술 활동은 절정에 달했는데, 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새로 지어지거나 보수되었고, 다수의 예술품이 제작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의 암혈 교회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세 번째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된 시기로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까지 이어지는 튀르크 정복과 카파도키아의 문화 재생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13세기 동안의 기간이다. 비잔티움의 세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1082년 카이사레아가 점령당하는 수난을 겪은 카파도키아는 이후 룸 이슬람 왕조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의 예술은 카파도키아 지방 전통, 튀르크 문화, 니케아 왕조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비잔티움 제국의 생활상과 종교상이 반영된 카파도키아 미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문화 접변은 유례없는 문화유산 남겨
카파도키아의 프레스코화는 문헌 사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단순히 교회 내부 장식의 기능을 넘어서 건물의 용도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 후원자의 역할이나 당시의 정치적·경제적 상황, 카파도키아 지역민의 종교심과 생활상을 알려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카파도키아에서 초기 비잔티움 시기부터 유행했던 도상인 십자가는 당대의 성 십자가 경배 신심과 풍습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건축되었던 성당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성화상 논쟁 시기에는 교회 내부 장식을 위해 양식화된 덩굴 문양 등으로 채워진 바탕 위에 커다란 십자가를 그려 넣는 경우가 많으며, 고전적 모티프인 풍요의 뿔, 포도나무, 석류, 아칸서스, 월계수, 공작 깃털을 장식적으로 변형한 문양을 즐겨 사용했다. 결국 십자가의 형상을 빌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다. 당시에 건축된 성당들은 모두 작은 규모이며 내부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그림으로만 장식되어 있어 정치적 혼란이 몰고 온 경제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로 불리는 9~10세기에 카파도키아 미술은 전례 없는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때 매우 많은 교회가 건립되었고 그 내부도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 시기는 비잔티움 문화예술의 절정기로 알려졌지만 이를 보여주는 자료는 매우 빈약했다. 그런데 카파도키아에는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이러한 자료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십자가 도상은 10세기 이후 점차 감소했고, 교회 내부를 십자가로 장식하던 비표상적 문양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바뀌어 수많은 작품이 새롭게 제작되었다. 특히 마케도니아 왕조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에 힘입어 제국의 변경이었던 카파도키아는 종교적 위상뿐 아니라 군사적·정치적 중요성도 높아지게 되면서 카파도키아 미술은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와 성인들은 물론, 당대의 황제와 군인의 초상까지 그리게 되어, 주제 면에서 매우 풍요로워졌다.
카파도키아에서는 11세기 중반까지 매우 많은 성당이 세워졌는데, 수도원 성당이나 개인용 성당이 주를 이루었고, 후원자는 대부분 비잔티움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평신도들이었다. 후원자의 초상이 카파도키아 지역의 성당 곳곳에 남아 있는데, 때로는 그들의 이름이나 관직 등 부가 사항도 적혀 있어 당대 카파도키아 지역의 생활상과 그리스도교 신심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당 내부장식은 후원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회화처럼 정교한 신학 체계를 반영하는 도상 체계를 도입하기도 하고, 십자가나 후원자의 초상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도상체계를 따르기도 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12세기에 이슬람 세력권으로 편입된 카파도키아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적 그리스도교 도상이 큰 변화를 겪었다. 이슬람권 정치체제로의 편입이라는 사회의 전 분야에 걸친 근본적인 변모에 따라 이 시기의 예술은 카파도키아 지방 전통, 튀르크 문화, 비잔티움을 계승한 니케아 제국의 영향이 복합된 일종의 문화 접변 현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하여 새롭게 탄생한 카파도키아의 미술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셀주크 튀르크에 점령된 12세기에는 그리스도의 도상을 지우고 비표상적 문양으로 대체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고, 비잔티움 전사인 성 게오르기우스와 성 테오도루스의 그림에서는 갑옷 위에 걸쳐 입은 망토에 술프린지 장식이 덧붙여져 있고, 말갖춤이 아랍 문자로 꾸며져 있어 당시 점증하던 튀르크 문화의 영향이 드러난다. 또한 이슬람 세력권에 편입된 이후에는 이슬람과의 접촉이 빈번해지는 상황을 반영하듯, 이슬람 문자를 모방한 장식적 모티프가 성당 내부 장식에 사용되었다.
Table of Contents
머리말
제1장 카파도키아
1. 카파도키아의 지리적 상황
2. 카파도키아 약사(略史)
제2장 초기 카파도키아 미술
1. 십자가 도상의 발달
2. 성 에우스타키우스의 환시
제3장 성화상 논쟁 이후의 카파도키아 미술
1.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2. 〈마예스타스 도미니〉
3. 〈데이시스〉
4. 〈아나스타시스〉
제4장 위기의 카파도키아
1. 11세기 후반의 상황
2. 이을란르 킬리세: 괴레메 28번 성당
3. 카파도키아의 성인 도상
제5장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문화 접변: 13세기의 카파도키아 미술
1. 그리스도교 전통의 수호
2. 타틀라른의 새로운 도상: 달덩어리 얼굴
3. 교회 벽화에 그려진 악마: 카르슈 킬리세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성당 목록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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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카파도키아
1. 카파도키아의 지리적 상황
2. 카파도키아 약사(略史)
제2장 초기 카파도키아 미술
1. 십자가 도상의 발달
2. 성 에우스타키우스의 환시
제3장 성화상 논쟁 이후의 카파도키아 미술
1.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2. 〈마예스타스 도미니〉
3. 〈데이시스〉
4. 〈아나스타시스〉
제4장 위기의 카파도키아
1. 11세기 후반의 상황
2. 이을란르 킬리세: 괴레메 28번 성당
3. 카파도키아의 성인 도상
제5장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문화 접변: 13세기의 카파도키아 미술
1. 그리스도교 전통의 수호
2. 타틀라른의 새로운 도상: 달덩어리 얼굴
3. 교회 벽화에 그려진 악마: 카르슈 킬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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