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구 대우자동차 회장 

‘자기를 부정하니 결과도 바뀌었다’

2025.08.18

김태구 대우자동차 회장 

‘자기를 부정하니 결과도 바뀌었다’

2025.08.18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은 대우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수한 기업들을 주로 맡아, 빠르게 회사들을 대우에 흡수시키는 역할을 한 '해결사'다. 산업은행에서 1973년 대우로 건너온 그는 입사 일주일 만에 기업공개라는 과업을 맡아, 성공적으로 주주들에게 대우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일화를 말하면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말한다. 이후 일본 토멘 종합상사를 모델로 대우가 종합상사로 발돋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기업공개 과정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그가 일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어떻게 대우맨으로 한 달 만에 녹아들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후 고려피혁, 대우중공업,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등을 두루 맡았다. 본인은 내세우지 않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김우중 회장의 마음을 잘 헤아린 경영인이었다. 현장 경영을 강조해 노조를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김우중 회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세심하게, 때로는 김 회장보더 더 먼저 회사를 돌봤다.
김우중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을 직접 만나 원칙적 대응을 강조하며 건전한 노사관계의 기틀을 놓기도 했다. 김태구 회장은 어느 회사를 가든 '마인드 셋'을 강조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일과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결과물이 나온다고 봤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정신이 바뀌면 세계 어느 나라와 경쟁해도 지지않는 최고의 대우맨이 될 것이란 자부심을 곳곳에 심었다. 김태구 전 회장은 김우중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가장 많은 반대를 했던 사람이 바로 나”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솔직함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김 회장은 지금도 대우에 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대우맨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대우에게 내가 배웠다고 말한다. 김태구 회장과의 구술 면담은  2025년 2월 17일 오후 3시에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우재단빌딩 5층 아카이빙 룸에서 약 4시간 가량 진행됐다.

  • 박혁진

    김태구 회장님, 대우그룹에 처음 입사하셨을 때의 경험부터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김태구

    네, 대우에 입사한 것은 1973년이었습니다. 산업은행에서 일하던 제게 김우중 회장님의 형님인 김덕중 교수가 제안을 하고 합류하게됐습니다. 기업공개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모르던 상황에서, 6월 말까지 기업공개를 완료하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서류 준비부터 주주 명부 작성까지 모든 것을 열흘 안에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호텔에 머물며 밤낮으로 일했고, 때론 발이 썩을 정도로 피로가 누적될 때까지 쉼 없이 달렸죠. 주주들에게 발송해야 하는 5천 통의 우편물부터 기업공개 관련 각종 문서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성하고 정리했습니다. 마지막날 은행에서 회사로 오던 차 안에서 그렇게 서러워서 펑펑 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기업공개를 권유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공개를 하고 나면 3년을 후회한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사실 우리 회사는 그런 대상이 아닌 거예요. 기업 공개를 강요하고 말할 만한 대상이 아닌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회사니까. 그런데 (김우중) 회장이 짜잔하고 해내서 그냥 불길 같이... 그런 기업 공개 자체가 대우에 대한 광고를 엄청 한 거죠.



김태구 회장을 비롯한 당시 기업공개에 참여한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결과적으로, 대우의 기업공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당시 한국 기업공개 사상 최고의 프리미엄인 300%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 전 회장은 이를 통해 대우가 성장할 수 있는 재무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상 직원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우그룹 각 계열사에서 조직 개혁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의 동기 부여와 기업 문화를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 박혁진

    기업공개를 거치면서 빠르게 대우에 흡수되셨네요. 주요 계열사들을 조직 정상화를 많이 하셨는데 비결이 있었나요? 

  • 김태구

    고려피혁 갔을 때는 출근율,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에 갔을 때는 강성 노조. 그런데 어디가서든 기본적으로 강조했던 게 마인드셋, 정신을 바꾸는 겁니다. 기술이야 뭐 내가 알아요? 사고방식을 바꿔야지. 임원회의를 하면 과장이고 부장이고 하나씩 데리고 들어와서, 논쟁도 하고. 그러면서 옛날 방식으로 사고하는 걸 바꾸라고 강조를 많이 했습니다. 조선이나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습니다. 노동자들도 회사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산성도 오르죠. 



김 회장은 노사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독특한 접근법을 사용했다. 단순히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기보다는, 직원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회사에 대한 애착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그는 직원 가족들을 공장으로 초청해 작업 환경을 소개했고, 이를 통해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러다보니 노조가 오히려 회사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됐다. 김우중 회장이 주도한 대우자동차의 글로벌 진출도 김태구 전 회장의 서포트 아래에서 본격화됐다.

  • 박혁진

    말씀을 들어보면 어디 가서도 교육을 강조했는데, 심지어 이를 위해서 해외에 파견까지 보내셨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나요?

  • 김태구

    내가 처음부터 한 얘기 중에 마인드 세트라고 그래요. 마인드 세트를 뒤집는 거다. 이런 마인드를 이런 마인드로 뒤집는 거다. 너희들이 하고 있는 거를 다 부정하는 자기 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20년 근무하고 5년 근무 전문가들이 니들 나름대로의 그 노하우가 다 있는데, 그걸 어떻게 싹 버리냐 그건 거짓말이죠. 그런 걸 버리라는 게 아니고. 니들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얘기지. 우리가 해외 진출을 추진할 때도 가장 중요했던 건 인재 양성이었습니다. 직원들을 일본 스즈키에 보내 현장 경험을 쌓게 했고, 그들이 돌아와 국내 생산 시스템에 변화를 주도록 했죠. 이를 통해 대우자동차는 250만 대 생산체제를 목표로 성장했으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박혁진

    김우중 회장님이 현장 경영을 강조하시다 보니 난처한 일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 때마다 회장님께서 나서서 잘 마무리하신 것 같아요.

  • 김태구

    한 번은 자동차에 들어가서 얼마 며칠 안 됐는데, 노동조합이 자기네들 춘투하는 투쟁 출범 행사를 하는데 회장님께서 가셨어요. 여기에 이제 우리 임원들 몇 앉고, 이쪽에 저들 간부 몇 앉고, 여기 전부 이제 노동조합원들이 앉아 있어. 전부 노동조합 간부들인데, 전임 사장이 데모 한 직원들을 몇 명 해고했어요. 그 회사에 갔더니 이슈가 자른 놈들 복직시켜 달라는 게 이슈예요. 그날 회장님께 와서 덜컥 ‘해고자 복직 좀 시켜 주십시오.’ 이러는 거에요.
    그때 회장님이 뭐라 말씀하시려고 그러는데 ‘내가 회장님 죄송합니다’하고 먼저 일어났어요. “안 돼. 너희들한테 해고될 만한 사연이 있으니까 해고된 거 아니야. 어떻게 해? 회장님이라도? 그거를 다 당장 그걸. 내가 회장님께 연구에서 보고 할 테니까 안 돼. 그런 줄 알아.”
    그랬더니 회장님 눈치 탁 채시고 “그 얘기는 좋은데 김 사장이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너희들 잘 얘기해서 처리해라” 이렇게 하고 그 얘기는 끝내셨어. 이제 그놈들이 회장한테 다시 얘기 못 하잖아요. 나한테도 못 왔죠.



김태구 전 회장이 걸어온 길은 대우그룹이 가진 도전 정신을 잘 보여준다. 불가능해 보이는 기업공개를 성공시키고, 노사 문제와 해외 진출이라는 복잡한 과제들을 해결하며 대우의 성장에 기여한 그의 이야기는 한국 기업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남는다.
“대우에서 배운 건 한 가지입니다. 불가능은 없다는 거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어요.”
김태구 전 회장의 이 한마디는, 그가 대우에서 쌓아온 30년의 시간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일 것이다. 

구술 인터뷰 진행일지

일시
2025년 2월 17일 월요일 오후 3시 
장소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우재단빌딩 5층 아카이빙 룸 
참석자
김태구 회장
박혁진 주간조선 차장
최윤권 대우재단 사무국장
장윤석 대우재단 커뮤니케이션팀장 
영상촬영
장윤석 팀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은 대우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수한 기업들을 주로 맡아, 빠르게 회사들을 대우에 흡수시키는 역할을 한 '해결사'다. 산업은행에서 1973년 대우로 건너온 그는 입사 일주일 만에 기업공개라는 과업을 맡아, 성공적으로 주주들에게 대우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일화를 말하면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말한다. 이후 일본 토멘 종합상사를 모델로 대우가 종합상사로 발돋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기업공개 과정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그가 일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어떻게 대우맨으로 한 달 만에 녹아들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후 고려피혁, 대우중공업,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등을 두루 맡았다. 본인은 내세우지 않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김우중 회장의 마음을 잘 헤아린 경영인이었다. 현장 경영을 강조해 노조를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김우중 회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세심하게, 때로는 김 회장보더 더 먼저 회사를 돌봤다.
김우중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을 직접 만나 원칙적 대응을 강조하며 건전한 노사관계의 기틀을 놓기도 했다. 김태구 회장은 어느 회사를 가든 '마인드 셋'을 강조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일과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결과물이 나온다고 봤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정신이 바뀌면 세계 어느 나라와 경쟁해도 지지않는 최고의 대우맨이 될 것이란 자부심을 곳곳에 심었다. 김태구 전 회장은 김우중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가장 많은 반대를 했던 사람이 바로 나”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솔직함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김 회장은 지금도 대우에 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대우맨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대우에게 내가 배웠다고 말한다. 김태구 회장과의 구술 면담은  2025년 2월 17일 오후 3시에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우재단빌딩 5층 아카이빙 룸에서 약 4시간 가량 진행됐다.

  • 박혁진

    김태구 회장님, 대우그룹에 처음 입사하셨을 때의 경험부터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김태구

    네, 대우에 입사한 것은 1973년이었습니다. 산업은행에서 일하던 제게 김우중 회장님의 형님인 김덕중 교수가 제안을 하고 합류하게됐습니다. 기업공개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모르던 상황에서, 6월 말까지 기업공개를 완료하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서류 준비부터 주주 명부 작성까지 모든 것을 열흘 안에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호텔에 머물며 밤낮으로 일했고, 때론 발이 썩을 정도로 피로가 누적될 때까지 쉼 없이 달렸죠. 주주들에게 발송해야 하는 5천 통의 우편물부터 기업공개 관련 각종 문서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성하고 정리했습니다. 마지막날 은행에서 회사로 오던 차 안에서 그렇게 서러워서 펑펑 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기업공개를 권유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공개를 하고 나면 3년을 후회한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사실 우리 회사는 그런 대상이 아닌 거예요. 기업 공개를 강요하고 말할 만한 대상이 아닌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회사니까. 그런데 (김우중) 회장이 짜잔하고 해내서 그냥 불길 같이... 그런 기업 공개 자체가 대우에 대한 광고를 엄청 한 거죠.



김태구 회장을 비롯한 당시 기업공개에 참여한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결과적으로, 대우의 기업공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당시 한국 기업공개 사상 최고의 프리미엄인 300%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 전 회장은 이를 통해 대우가 성장할 수 있는 재무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상 직원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우그룹 각 계열사에서 조직 개혁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의 동기 부여와 기업 문화를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 박혁진

    기업공개를 거치면서 빠르게 대우에 흡수되셨네요. 주요 계열사들을 조직 정상화를 많이 하셨는데 비결이 있었나요? 

  • 김태구

    고려피혁 갔을 때는 출근율,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에 갔을 때는 강성 노조. 그런데 어디가서든 기본적으로 강조했던 게 마인드셋, 정신을 바꾸는 겁니다. 기술이야 뭐 내가 알아요? 사고방식을 바꿔야지. 임원회의를 하면 과장이고 부장이고 하나씩 데리고 들어와서, 논쟁도 하고. 그러면서 옛날 방식으로 사고하는 걸 바꾸라고 강조를 많이 했습니다. 조선이나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습니다. 노동자들도 회사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산성도 오르죠. 



김 회장은 노사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독특한 접근법을 사용했다. 단순히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기보다는, 직원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회사에 대한 애착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그는 직원 가족들을 공장으로 초청해 작업 환경을 소개했고, 이를 통해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러다보니 노조가 오히려 회사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됐다. 김우중 회장이 주도한 대우자동차의 글로벌 진출도 김태구 전 회장의 서포트 아래에서 본격화됐다.

  • 박혁진

    말씀을 들어보면 어디 가서도 교육을 강조했는데, 심지어 이를 위해서 해외에 파견까지 보내셨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나요?

  • 김태구

    내가 처음부터 한 얘기 중에 마인드 세트라고 그래요. 마인드 세트를 뒤집는 거다. 이런 마인드를 이런 마인드로 뒤집는 거다. 너희들이 하고 있는 거를 다 부정하는 자기 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20년 근무하고 5년 근무 전문가들이 니들 나름대로의 그 노하우가 다 있는데, 그걸 어떻게 싹 버리냐 그건 거짓말이죠. 그런 걸 버리라는 게 아니고. 니들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얘기지. 우리가 해외 진출을 추진할 때도 가장 중요했던 건 인재 양성이었습니다. 직원들을 일본 스즈키에 보내 현장 경험을 쌓게 했고, 그들이 돌아와 국내 생산 시스템에 변화를 주도록 했죠. 이를 통해 대우자동차는 250만 대 생산체제를 목표로 성장했으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박혁진

    김우중 회장님이 현장 경영을 강조하시다 보니 난처한 일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 때마다 회장님께서 나서서 잘 마무리하신 것 같아요.

  • 김태구

    한 번은 자동차에 들어가서 얼마 며칠 안 됐는데, 노동조합이 자기네들 춘투하는 투쟁 출범 행사를 하는데 회장님께서 가셨어요. 여기에 이제 우리 임원들 몇 앉고, 이쪽에 저들 간부 몇 앉고, 여기 전부 이제 노동조합원들이 앉아 있어. 전부 노동조합 간부들인데, 전임 사장이 데모 한 직원들을 몇 명 해고했어요. 그 회사에 갔더니 이슈가 자른 놈들 복직시켜 달라는 게 이슈예요. 그날 회장님께 와서 덜컥 ‘해고자 복직 좀 시켜 주십시오.’ 이러는 거에요.
    그때 회장님이 뭐라 말씀하시려고 그러는데 ‘내가 회장님 죄송합니다’하고 먼저 일어났어요. “안 돼. 너희들한테 해고될 만한 사연이 있으니까 해고된 거 아니야. 어떻게 해? 회장님이라도? 그거를 다 당장 그걸. 내가 회장님께 연구에서 보고 할 테니까 안 돼. 그런 줄 알아.”
    그랬더니 회장님 눈치 탁 채시고 “그 얘기는 좋은데 김 사장이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너희들 잘 얘기해서 처리해라” 이렇게 하고 그 얘기는 끝내셨어. 이제 그놈들이 회장한테 다시 얘기 못 하잖아요. 나한테도 못 왔죠.



김태구 전 회장이 걸어온 길은 대우그룹이 가진 도전 정신을 잘 보여준다. 불가능해 보이는 기업공개를 성공시키고, 노사 문제와 해외 진출이라는 복잡한 과제들을 해결하며 대우의 성장에 기여한 그의 이야기는 한국 기업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남는다.
“대우에서 배운 건 한 가지입니다. 불가능은 없다는 거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어요.”
김태구 전 회장의 이 한마디는, 그가 대우에서 쌓아온 30년의 시간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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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구 회장
박혁진 주간조선 차장
최윤권 대우재단 사무국장
장윤석 대우재단 커뮤니케이션팀장 
영상촬영
장윤석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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