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11

출산전 분만촉진 풀을 먹는 코끼리의 지혜

불편당 일기 11: 식물을 이용하는 동물의 의료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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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따라 방랑하듯 사는 사람이 있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날 밤으로 야반도주하듯 꽃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있다. 내 친구 양봉가 시인 이종만. 개화의 적기를 맞춰 꽃을 따라 살아가는 그는 올해도 아카시아꽃 필 무렵 진주에서 내가 사는 원주까지 벌통을 싣고 올라왔다. 평소 꿀벌의 생태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 친구를 만나면 아이처럼 늘 질문을 해댔다.

그가 원주로 올라온 며칠 뒤 나는 깊은 골짜기에 양봉장을 차린 그를 찾아갔다. 반가운 나머지 두 팔을 벌려 얼싸안았는데 그의 몸에선 꽃향기가 물씬 풍겼다. 벌들이 웅웅거리는 양봉장을 잠시 둘러본 뒤 우리는 곧 마을로 내려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벌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인 밀랍(蜜蠟)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물었다. 신바람이 난 듯 그가 입을 뗐다.

“밀랍은 꿀벌이 나무에서 고무질의 진액을 채취해 만든다네. 그런 다음 벌들은 이 밀랍을 벌통의 내부에 바르는데 온갖 세균으로부터의 감염을 막아주지.” 

“그럼 그 진액의 채취원은 어떤 나무들인가?” 

“사시나무, 포플러, 자작나무, 느릅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전나무 등인데, 이런 나무들은 밀랍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물질을 분비해주지.”

그러니까 벌은 약 50%의 나무 진액과 10% 정도의 꽃가루, 납, 그리고 자기 내부의 효소를 섞어서 밀랍을 만든다는 것. 양봉의 목적은 꿀을 따는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채밀원인 아카시아나무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식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친절한 설명 끝에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사실 밀랍이 없으면 양봉은 불가능해. 밀랍은 항박테리아성과 항바이러스, 항균, 항염증, 심지어 항곤충 성질을 갖고 있거든. 그러니까 양봉은 숱한 식물들의 도움으로 비로소 가능한 거지.”

그날 친구는 친구는 헤어지는 게 섭섭한지 남녘에서 뜬 꿀 한 병을 덥석 안겨 주었다. 꿀을 품에 안고 돌아오며 스스로 확인한 사실은 식물들이 자신의 건강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의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런 화학물질이 식물군락뿐만 아니라 동물과 포함한 생태계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것. 파브르가 쓴 <식물기>에 보면 “식물과 동물은 형제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식물을 제대로 알려면 동물의 생태도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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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내가 늦잠에서 깨어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는데, 나보다 먼저 일어나 활동을 시작한 아내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며칠 전 날아온 제비가 오늘 둥지를 틀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가리키는 대문간의 처마를 올려다보니, 제비들이 둥지를 짓기 위해 물어다 붙인 흙과 지푸라기들이 보였다. 아마도 지푸라기로 보이는 그것들은 여러 식물의 마른 잎들일 것. 제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새들은 해충이나 동물들의 침입을 예방하고 어린 새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하고 강력한 여러 종류의 약초를 물어다 둥지를 튼다고 한다. 매나 수리, 부엉이 같은 맹금류는 부패한 고기와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항미생물 효과가 강한 식물로 둥지를 만든다는 것. 이 외에도 많은 새들이 털 속으로 진드기가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식물을 이용한다고 한다.

식물을 이용할 줄 아는 새들의 지혜가 참으로 신비롭고 놀랍지 않은가. 새들만 아니라 동물들은 질병으로 인한 위험에서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원초적 본능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런 본능을 의료지혜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 예컨대 곰은 위장에 탈이 나면 물가에 자라는 창포(菖蒲)를 뜯어먹는다고 한다. 창포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여인들이 머릿결을 곱게 하기 위해 그것을 뜯어다 머리를 감았다고 하는데, 곰은 창포가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튼튼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십여 년 전부터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 개와 고양이들을 길렀는데, 개들은 과식을 하거나 배탈이 나면 마당에 난 바랭이 풀 같은 것을 뜯어먹고 토하곤 했다. 그렇게 풀을 뜯어먹고 나면 멀쩡해졌다. 고양이들 역시 무언가 먹이를 잘못 먹어서 설사를 하면 스스로 괭이밥이나 수영 같은 풀을 뜯어먹고 먹은 것을 즉시 토해내버렸다. 그렇게 토하고 나면 설사가 멎었다. 사람도 배탈이 나면 이토지사(以吐止瀉), 즉 토하게 하여 설사를 멎게 하는 치료법을 쓴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런 치료법을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에게 배운 게 아닐까.

고진하 목사시인과 부인 권포근 야생초요리가가 강원도 원주 불편당에서 함께 사는 삽살개를 만지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스티븐 H. 뷰너의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라는 책을 보면 코끼리의 식습관과 습성을 오랫동안 연구한 동물학자 홀리 더불린의 얘기가 나오는데 무척 흥미롭다. 그는 동부 아프리카에서 임신한 코끼리를 1년 동안 따라다녔는데, 코끼리는 임신 말기가 되면 특정 나무를 찾아내 그 잎과 줄기를 모조리 먹어 치운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곧 산통이 시작되고, 코끼리는 건강한 새끼를 낳더라는 것. 코끼리가 먹은 그 나무는 케냐의 여성들이 분만 촉진제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니, 동물과 사람이 같은 식물을 이용하는 의료지혜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어떤 약초학자에 의하면, 열대지방의 밀림에 사는 원숭이들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한테 물려 으슬으슬 추운 기운을 느끼면 금계랍(金鷄蠟)나무를 찾아 껍질을 갉아 먹고 말라리아를 치료한다고 한다. 금계랍나무 껍질은 맛이 몹시 쓰기 때문에 원숭이들도 평소에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말라리아 치료약인 키니네(Quinine)를 금계랍나무에서 얻는 방법을, 의학자들은 원숭이한테서 배운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동물들이 병이 나면 식물들을 이용해 치유하는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쥐들은 뱀한테 물리면 흙탕물을 마셔서 독을 풀고 상처를 치료하며, 거미는 벌한테 쏘이면 지렁이의 똥을 상처에 바르거나 토란즙을 상처에 바른다고 한다. 개구리는 상처를 입었을 때나 몹시 피곤할 때에는 질경이 잎 밑에 엎드려 있으면 상처가 빨리 낫고 기력이 회복된다고 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질경이 잎 밑에 납작 엎드려 있는 개구리를 상상만 해도 절로 탄성이 나온다.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무병장수 식품으로 알려져 있는 질경이는 해독과 지혈 등의 효능을 지니고 있으니 본능적인 의료지혜를 가진 개구리가 쉬면서 치유할 수 있는 회복의 그늘이 될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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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의료지혜에 주목한 시야키 덴스모어라는 학자는 「테톤 수우족의 음악」이란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곰은 여러모로 성급하고 포악하다. 하지만 곰은 다른 동물들이 눈길도 안 주는 약초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이것들을 캐내서 자신을 위해 쓸 줄을 안다……식물을 약으로 쓰는 것에 관한 한 곰은 동물들 중에 으뜸이다. 그러므로 꿈에서 곰을 보면, 약초로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가가 되리라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다.” 시야키의 얘기를 읽고 난 후, 나도 꿈에 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동물들의 신비로운 의료지혜를 늘 주목하고 사는 나는 집안에 기르는 가축들이 병이 들거나 식구들이 아파도 되도록 병원을 찾아가지 않고 내 주변의 식물에서 약을 구하곤 했다. 지난해 겨울 우리집 개에게 곰국을 끓여먹고 나온 소뼈를 던져 주었는데 그걸 먹고 난 개가 보름이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병원 약을 사다 먹여도 나을 기미가 없고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았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파인애플. 언젠가 아내가 소고기를 재울 때 파인애플을 넣으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즉시 파인애플를 사다가 개에게 먹였다. 놀랍게도 보름 동안 먹지 못해 죽어가던 개가 파인애플을 먹고 살아나 까불까불 꼬리를 흔들었다.

우리 가족은 식중독에 걸리면 즉시 녹두를 사다가 죽을 끓여 먹고 치료하기도 하고, 쥐약 먹은 쥐를 먹고 탈이 난 고양이를 살린다는 괭이밥을 요리해 먹고 몸 에 쌓인 독을 해독하곤 한다. 또한 해독제 가운데 으뜸인 갈대 뿌리를 상비약처럼 늘 준비해 두었다가 식구들의 몸에 탈이 나면 달여서 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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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처럼 약초 관련 책과 경험을 통해 식물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지만, 동물들은 자기 병을 치료할 줄 아는 의료지혜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의학이 발전한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은 병에 걸리면 스스로 치료하는 방법을 모른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아는데 인간은 모르는 것. 물론 야생과 밀접한 접촉을 하던 고대인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고 병을 치료하는 데 식물을 이용했다. 60,000년 된 네안데르탈인의 무덤 안에서도 약초가 발견되었으며, 지난 6,000년간의 문자 기록들에도 80,000가지 이상의 식물을 일상적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러나 야성을 잃어버린 채 의학에만 의존하는 현대인들은 오직 병원과 조제약에만 의존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런 방식의 삶이 싫어 숲과 개울과 식물과 야생의 동물들이 살아 있는 시골로 들어왔다. 문명의 속도와 편리를 일부러 멀리하고 대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시골에도 자연의 훼손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얼마 전 마을의 아름다운 둘레길을 걷다가 인접한 야산 밑의 인동초 군락이 굴삭기의 무작스런 주걱손에 찍혀 사라지는 걸 보았다. 아내는 자기가 그토록 아끼는 인동초 군락이 사라진 것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인동초, 그 매혹적인 향기와 뛰어난 약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식물이 아니던가. 그런 광경을 보면 혈연의 죽음을 보듯 한없이 마음이 아프다. 어떤 보고에 의하면, 지구의 식물종이 하루 한 가지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식물들이 사라져버리면, 지구 위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약을 구한단 말인가.

고진하 목사시인 글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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