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8
2025.08.18


안녕하세요 원장님, 올해(2022년)로 몇 년째 진료를 보고 계신 거죠?
1967년도에 학교 졸업하고 의사 생활했으니까. 지금 55년째 의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전문의 과정 마치고 잠깐 도시에서 페이닥터로 일했는데. 그때 제가 본 의사 중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의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굉장히 평이 안좋더라고요. ‘아, 나도 돈을 많이 벌려면 벌 수도 있겠는데, 저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 좀 더 보람되게 사는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희미하게. 그래서 강원도 양양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씩 돌보기 시작했죠.
그러면 무주대우병원 원장은 어떻게 맡게 되셨나요?
그때 마침 김효규 연세의료원 원장님으로부터 ‘대우그룹에서 김우중 회장님이 사재를 출연해 사회에 기증을 해서 낙도오지 같은 의료취약지역에 양질의 의료 시혜를 베풀려고 병원을 세웠는데 같이 동참해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좀 더 보람되게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하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바로 제안을 수락하셨나요?
당시 1970년대에는 재벌 그룹이 욕을 많이 먹었어요. 문어발식 경영으로 작은 회사들 많이 흡수해서 그랬던 것이죠. 그래서 저도 재벌에 대한 인식이 별로 안 좋았어요. 대우그룹이 이미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는데, 병원을 세워서 의료 사업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가 회의적이었죠. 그런데 원장님이 한번 만나자고 해서 가서 얘기를 들어봤죠.
김효규 원장님은 ‘대우그룹에서 하는 의료 사업이 수익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 아니다. 시골에서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주 그늘진 취약 지역에서 고생하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 양질의 의료혜택을 베풀기 위해 하는 거다. 수익사업이 아니다. 돈 버는데 푸쉬하기 위해서 그런 사업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죠.
듣고 나니 그런 거라면 한번 해볼만 하겠다 싶어서 합류하게 됐어요. 이런 큰 재단하고 같이 일을 하면 ‘좀 더 규모를 크게, 좀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의료 시혜를 베풀 수 있고 의료 봉사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죠.

그런데 무주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인연은 전혀 없었어요. 그 당시에 대우재단에서 세운 병원이 오지 지역으로 무주 구천동, 낙도 지역으로 신안, 진도, 완도 이렇게 세 군데 세웠잖아요. 섬 지역에는 딴 분들이 가시고. 여기는 제가 지원해서 오게 된 거예요.
그렇군요. 당시에 무주는 여건이 어땠나요?
아주 대한민국의 오지 중에 대표적인 오지잖아요? 그때 의료보험이 실시되었는데. 의료보험카드도 없고 의료보험 영세민 카드도 없는. 그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않어요. 도시에서 이주해 들어온 정착민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은 카드도 없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았죠. 극빈자들이 많았어요. 큰 병이 들어서 대학병원에 가려고해도 나갈 차비가 없어서 못 가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보통 약국에 가서 약 좀 몇 번 사먹고. 그래도 안 나으면 돌팔이 의사들한테 가서 진료 좀 받아보고. 침도 좀 맞아보고. 그렇게 해서도 안 나으면 ‘아이고 죽을 때가 됐나보다’ 하고 벌렁 누워있는 거예요.
그리고 산모들은 애기를 낳고 나서 출혈을 많이 한다든지. 응급수술이 필요한 산부인과 질환에 걸리면 택시를 타고 도시로 가다가 도중에 사망해서 돌아오는 환자가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 무주대우병원에서 산모도 많이 받았어요. 아기도 많이 받고. 1년에 한 50~60명 정도? 그렇게 신생아를 받았어요. 제가 직접.
당시에 그런 진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나요?
완벽하게 시스템을 갖추진 못했죠. 마취 의사도 없으니까, 내가 직접 마취를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 의사한테 마취 진행을 좀 맡기고. 난 또 수술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했죠.수술하다가 피가 모자라면 직원들 헌혈도 받고. 그래도 모자라면 직원 가족들까지 불러가지고 또 헌혈을 받아서 피주사를 놓으면서 그렇게 수술을 했죠.
(1인 2역, 3역이 아니라) 1인 다역을 해야 돼요. 직원이 한 25명 정도 되었었는데. 자기 맡은 분야 일만 하는 게 아니고 다른 분야의 일까지 해야 했어요. 소규모 인원으로 종합병원 구실을 해야되니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원장님은 주로 어떤 진료를 담당하셨어요?
외과 계열은 다 했어요. 내가 전공한 일반외과, 또 산부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등 다 받고, 그 방면의 수술도 다 했어요. 외래 환자도 보고 그랬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습니까?
처음에 개원해가지고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인데. 밤에 자는데 연락이 왔어요. 중환자가 왔다고 해서 가보니깐 혈압이 80도 안돼요. 배가 빵빵하게 붓고. 병력을 물어보니까 속 쓰린지가 몇 년이 됐대요. 그래서 위궤양이 천공이 돼서 복막염이 됐을거다 싶어서 사진 찍어보니까 위가 빵꾸 나서 공기가 새어나와 배 안에 가스가 차 있는게 보이더라고요.
수술하려는데 쇼크 상태라 피주사도 놔야되고 수액도 놓고하는데 혈압이 낮아서 마취를 할 수가 있어야지. 마취 의사도 없고. 그래서 ‘여기서는 도저히 힘들다. 큰 대학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해야겠다.’라고 보호자한테 얘기를 했더니. 자기는 대학병원 갈 차비도 없다는 거에요. 자기는 죽으나 사나 여기서 하여튼 원장님 알아서 해달라고 매달리는 거에요. 살려달라고. 수술하다 죽어도 좋으니까 해달래.
그래서 하셨나요?
그래서 밤중에 12시가 넘어서 수술을 시작했어요. 마취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피부 절개하는 데만 국소 마취만 조금 해가지고 배를 째고 수술을 시작했어요. 링거 주사를 막 빠르게 넣으면서. 그래서 혈압 체크하면서 수술을 했는데.
배 안에 보니깐 위가 방꾸가 나가지고 위 안에 내용물이 다 흘러나오고 복막염으로 고름이 잔뜩 찼어요. 창자끼리 막 들러붙고. 죽기 직전이에요. 그래서 그걸 다 씻어내고 그 위에 천공된 걸 응급수술을 해서 다 때우고 메꾸고. 드레인 박고. 수액 주사를 많이 놓으니까 혈압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90~100 이 정도.
보호자한테 얘기를 했어요. 지금 응급 수술은 끝났는데 복막염이 워낙 심해서 이제 살지 죽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그랬더니 하여튼 치료를 해달라고, 자기가 행상해서 돈 벌어 올테니까 하여튼 살려 달라고 해요.
한 밤중에 큰 고생하셨겠네요.
그런데 그 부인이 한달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는 거예요. 환자는 거의 회복됐는데 또 배가 불러오고 아프다고 하고. 그래서 사진 찍어보니까 장폐색증이 온 거예요. 또 수술했지. 2차 수술. 그래서 열어보니까 창자가 붙어서 꼬여가지고 안 내려가니까 배가 또 불러오는데. 그것도 다 풀어주고 장폐색 수술을 다 했어요. 그러고는 또 살아났어요. 죽지 않고.
그래서 거의 한달 가까이 되는 치료비가 그 당시 돈으로 한 150만원 넘게 나왔어요. 굉장히 고액이죠. 한참 연락이 안 되다가 어떻게 부인이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치료비를 얘기했더니 자기는 밥값 낼 돈도 못 벌어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니까 몇 만원 안 돼요. 돈 벌어 온 게. 그래서 수고했다 하고 그 돈 다 돌려주고, 150만원 넘는 치료비를 다 무료로 해줬거든요.
대우재단에서는 그런 걸 뭐 억지로 그걸로 받으라고 하는 푸쉬가 없었고, 어려운 환자를 잘 돌봐주라는 부탁만 했기 때문에 무료로 해줬거든요. 대우재단에서는 우리 무주대우병원이 적자내는 걸 다 100% 보전을 해줬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많이 해줬어요. 아주 어려운 사람들하고. 죽기 직전의 아주 위태로운 중환자들.

대우병원 설립취지가 그랬으니까요.
아침에 퇴원 오더를 내고 점심 먹고 다시 환자 보러 병실에 들어갔더니, 그때까지도 퇴원을 안 한거예요. 침대에 앉아서 간호사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보니까 울고 있는 표정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그렇게 인간적인 대접을 처음 받아봤다는 거예요. 그런 좋은 혜택을 받아본 일도 없고 사람 대접도 못 받았는데. 여기 와서 처음 사람 대접도 받고, 죽을 병도 고치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앉아서 계속 간호사한테 신세타령하면서 울었다는 거예요.
아 그거 보니깐 나도 가슴이 찡 하더라구요. 아 우리가 수술 안해줬으면 그 사람은 죽었죠. 틀림없이. 그때 탁 느낀 게 ‘아, 내가 정말 여기 오길 잘했다. 내가 여기 안 왔더라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죽었을거다.’ 그런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거든요. 부지기수로 많았거든요.
사람 대접이라는 말이 울림이 크네요.
또 한 사람. 밤에 여자 환자가 쇼크 상태로 왔는데. 보니깐 임신 한 3개월 정도 됐는데, 밖으론 출혈이 없는거예요. 병력을 가만히 조사해 보니까 이건 자궁 외 임신 파열된 거 같아. 그래서 밑으로 해서 뱃속에 주사바늘을 찔러 빼보니까 피가 콱 쏟아져 나오는거야. 뱃속에 피가 꽉 찬 거예요. 그럼 그건 틀림없이 자궁외 임신 파열이거든요.
혈압도 재보니까 80도 안되고 60 조금. 맥도 아주 약해서 금방 죽을거 같아. 보호자도 이 사람은 도회지로 나가면 틀림없이 택시 안에서 죽어서 돌아올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여기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국소 마취만 겨우 해가지고 째고. 뱃속에 피로 꽉 찬 걸 다 그릇으로 퍼내고 패드로 닦아내고.
그런데 피가 있어야지. 피가 없어서 직원들 전부 모아서 O형 다 헌혈받고. 그래도 모자라. 그래서 우리 집사람까지 불러서 또 헌혈 받아서 그렇게 다섯 병을 확보했어요. 피주사 놓고, 링거 주사 놓고, 혈압 올리면서 어렵게 수술했거든요. 그 사람도 살렸어요. 아직도 살아 있어요.장날되면 가끔 내려와요. 우리 병원도 찾아오고 그러는데. 우리 집사람만 만나면 ‘아이고, 사모님, 내 몸속에는 사모님 피가 지금도 흐르고 있어.’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어요. 수십 년 전 일인데도.

그 당시에 무주에는 다른 병원이나 의사는 없었나요?
그 당시에 여기 의사라고는 뭐 무주보건소에 보건소장 한 사람. 또 무슨 지역사회 의사라고 그래서 임시 의사면허증을 줘서 의사 구실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어요. 그 외에는 다 돌팔이 의사들이 많았어요. 지역 주민들은 의사가 여기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했어요.
거기다가 또 대도시에서 받을 수 있는 그런 큰 병원 진료 시설까지 해주고. 좋은 의사도 보내주고. 주민들이 굉장히 고마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김우중 회장님한테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주민들이 혜택을 많이 봤으니까.
거기다가 또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도 주지. 뭐 또 개인적으로 또 월급 받으면 떼어서 동네 어려운 데 가서 마을 길 포장도 좀 해주고 그랬거든요. 지역사회 개발사업도 좀 내가 돈을 좀 드리고 그랬어요. 또 교회가 없는 이런 교외. 가다보면 면사무소 맞은편에서 그 마을을 천주교회 하나 있어요. 그것도 교회도 제가 좀 세워주고. 주위에 극빈자들이 많기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갔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한테 나누면서. 나누면서 살 수 밖에 없었어요.

대우재단의 병원사업이 진료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어떤 가치를 지향했죠?
첫째 목표는 사회의 그늘진 곳, 낙도오지 이런 데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주민들한테 양질의 의료 혜택을 베풀어서 죽을 사람들 좀 더 많이 살리는거죠.
뿐만아니라, 어려운 집안의 자식들에게 장학금을 줘서 인재로 양성해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또 지역사회개발에도 참여해서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는거죠.
또 의료 사업에서도 환자 진료뿐만 아니고 병에 걸리지 않게 미리 예방하는 예방보건사업이나 건강증진사업도 동시에 추진하는 게 처음 병원 사업을 할 때부터의 목표였어요.
원장님은 돈을 쫓기보다는 그야말로 마음을 실천하는 한길로 살아오셨는데, 후회는 없으세요?
후회는 없죠. 아직도 나는 내 집도 없어요. 지금도 셋방살이 하고 있는데. 애들 다 키웠지. 세상 살만큼 다 살았지. 죽을 때 뭐 한푼 못 가져가잖아요? 그러니깐 죽을 때도 홀가분할거같아. 정리할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래도 보람있게 행복하게 살았으니까 후회라는 게 없어요.
난 교회 다니기 때문에 성경책을 가끔 보는데 거기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인간만사 헛되고 헛되도다.’이게 여기에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 혼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모든 활동은 재물을 쌓는 거든, 명예를 위한 거든, 권력이든, 돈이든, 힘이든, 그런 모든 일은 다 헛되다는 거예요.
그러면 헛되지 않은 일이 뭐냐?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 말씀대로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하는 게 영원히 남는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 가르침을 주거든요. 성경책에서. 그러니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자기도 보람 있게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길인 거 같아요. 내가 살아 보니까. 실제로 내가 그렇게 체험을 했고. 젊은 사람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좀 해주고 싶어요.


출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원주기독병원 외과 수련의 수료
(일반외과 전문의)
최외과의원 개원(강원도 양양군)
무주대우병원 원장
완도대우병원 원장
연세외과의원 개원(전라북도 무주군)
일시 | 2022년 9월 28일 |
장소 |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무설로 1590 연세외과의원 |
참석자 | 최해관 전 무주대우병원 원장 최윤권 대우재단 사무국장 장윤석 대우재단 커뮤니케이션팀장 |
촬영 및 정리 | 장윤석 팀장 |


안녕하세요 원장님, 올해(2022년)로 몇 년째 진료를 보고 계신 거죠?
1967년도에 학교 졸업하고 의사 생활했으니까. 지금 55년째 의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전문의 과정 마치고 잠깐 도시에서 페이닥터로 일했는데. 그때 제가 본 의사 중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의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굉장히 평이 안좋더라고요. ‘아, 나도 돈을 많이 벌려면 벌 수도 있겠는데, 저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 좀 더 보람되게 사는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희미하게. 그래서 강원도 양양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씩 돌보기 시작했죠.
그러면 무주대우병원 원장은 어떻게 맡게 되셨나요?
그때 마침 김효규 연세의료원 원장님으로부터 ‘대우그룹에서 김우중 회장님이 사재를 출연해 사회에 기증을 해서 낙도오지 같은 의료취약지역에 양질의 의료 시혜를 베풀려고 병원을 세웠는데 같이 동참해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좀 더 보람되게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하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바로 제안을 수락하셨나요?
당시 1970년대에는 재벌 그룹이 욕을 많이 먹었어요. 문어발식 경영으로 작은 회사들 많이 흡수해서 그랬던 것이죠. 그래서 저도 재벌에 대한 인식이 별로 안 좋았어요. 대우그룹이 이미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는데, 병원을 세워서 의료 사업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가 회의적이었죠. 그런데 원장님이 한번 만나자고 해서 가서 얘기를 들어봤죠.
김효규 원장님은 ‘대우그룹에서 하는 의료 사업이 수익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 아니다. 시골에서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주 그늘진 취약 지역에서 고생하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 양질의 의료혜택을 베풀기 위해 하는 거다. 수익사업이 아니다. 돈 버는데 푸쉬하기 위해서 그런 사업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죠.
듣고 나니 그런 거라면 한번 해볼만 하겠다 싶어서 합류하게 됐어요. 이런 큰 재단하고 같이 일을 하면 ‘좀 더 규모를 크게, 좀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의료 시혜를 베풀 수 있고 의료 봉사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죠.

그런데 무주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인연은 전혀 없었어요. 그 당시에 대우재단에서 세운 병원이 오지 지역으로 무주 구천동, 낙도 지역으로 신안, 진도, 완도 이렇게 세 군데 세웠잖아요. 섬 지역에는 딴 분들이 가시고. 여기는 제가 지원해서 오게 된 거예요.
그렇군요. 당시에 무주는 여건이 어땠나요?
아주 대한민국의 오지 중에 대표적인 오지잖아요? 그때 의료보험이 실시되었는데. 의료보험카드도 없고 의료보험 영세민 카드도 없는. 그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않어요. 도시에서 이주해 들어온 정착민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은 카드도 없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았죠. 극빈자들이 많았어요. 큰 병이 들어서 대학병원에 가려고해도 나갈 차비가 없어서 못 가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보통 약국에 가서 약 좀 몇 번 사먹고. 그래도 안 나으면 돌팔이 의사들한테 가서 진료 좀 받아보고. 침도 좀 맞아보고. 그렇게 해서도 안 나으면 ‘아이고 죽을 때가 됐나보다’ 하고 벌렁 누워있는 거예요.
그리고 산모들은 애기를 낳고 나서 출혈을 많이 한다든지. 응급수술이 필요한 산부인과 질환에 걸리면 택시를 타고 도시로 가다가 도중에 사망해서 돌아오는 환자가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 무주대우병원에서 산모도 많이 받았어요. 아기도 많이 받고. 1년에 한 50~60명 정도? 그렇게 신생아를 받았어요. 제가 직접.
당시에 그런 진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나요?
완벽하게 시스템을 갖추진 못했죠. 마취 의사도 없으니까, 내가 직접 마취를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 의사한테 마취 진행을 좀 맡기고. 난 또 수술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했죠.수술하다가 피가 모자라면 직원들 헌혈도 받고. 그래도 모자라면 직원 가족들까지 불러가지고 또 헌혈을 받아서 피주사를 놓으면서 그렇게 수술을 했죠.
(1인 2역, 3역이 아니라) 1인 다역을 해야 돼요. 직원이 한 25명 정도 되었었는데. 자기 맡은 분야 일만 하는 게 아니고 다른 분야의 일까지 해야 했어요. 소규모 인원으로 종합병원 구실을 해야되니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원장님은 주로 어떤 진료를 담당하셨어요?
외과 계열은 다 했어요. 내가 전공한 일반외과, 또 산부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등 다 받고, 그 방면의 수술도 다 했어요. 외래 환자도 보고 그랬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습니까?
처음에 개원해가지고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인데. 밤에 자는데 연락이 왔어요. 중환자가 왔다고 해서 가보니깐 혈압이 80도 안돼요. 배가 빵빵하게 붓고. 병력을 물어보니까 속 쓰린지가 몇 년이 됐대요. 그래서 위궤양이 천공이 돼서 복막염이 됐을거다 싶어서 사진 찍어보니까 위가 빵꾸 나서 공기가 새어나와 배 안에 가스가 차 있는게 보이더라고요.
수술하려는데 쇼크 상태라 피주사도 놔야되고 수액도 놓고하는데 혈압이 낮아서 마취를 할 수가 있어야지. 마취 의사도 없고. 그래서 ‘여기서는 도저히 힘들다. 큰 대학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해야겠다.’라고 보호자한테 얘기를 했더니. 자기는 대학병원 갈 차비도 없다는 거에요. 자기는 죽으나 사나 여기서 하여튼 원장님 알아서 해달라고 매달리는 거에요. 살려달라고. 수술하다 죽어도 좋으니까 해달래.
그래서 하셨나요?
그래서 밤중에 12시가 넘어서 수술을 시작했어요. 마취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피부 절개하는 데만 국소 마취만 조금 해가지고 배를 째고 수술을 시작했어요. 링거 주사를 막 빠르게 넣으면서. 그래서 혈압 체크하면서 수술을 했는데.
배 안에 보니깐 위가 방꾸가 나가지고 위 안에 내용물이 다 흘러나오고 복막염으로 고름이 잔뜩 찼어요. 창자끼리 막 들러붙고. 죽기 직전이에요. 그래서 그걸 다 씻어내고 그 위에 천공된 걸 응급수술을 해서 다 때우고 메꾸고. 드레인 박고. 수액 주사를 많이 놓으니까 혈압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90~100 이 정도.
보호자한테 얘기를 했어요. 지금 응급 수술은 끝났는데 복막염이 워낙 심해서 이제 살지 죽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그랬더니 하여튼 치료를 해달라고, 자기가 행상해서 돈 벌어 올테니까 하여튼 살려 달라고 해요.
한 밤중에 큰 고생하셨겠네요.
그런데 그 부인이 한달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는 거예요. 환자는 거의 회복됐는데 또 배가 불러오고 아프다고 하고. 그래서 사진 찍어보니까 장폐색증이 온 거예요. 또 수술했지. 2차 수술. 그래서 열어보니까 창자가 붙어서 꼬여가지고 안 내려가니까 배가 또 불러오는데. 그것도 다 풀어주고 장폐색 수술을 다 했어요. 그러고는 또 살아났어요. 죽지 않고.
그래서 거의 한달 가까이 되는 치료비가 그 당시 돈으로 한 150만원 넘게 나왔어요. 굉장히 고액이죠. 한참 연락이 안 되다가 어떻게 부인이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치료비를 얘기했더니 자기는 밥값 낼 돈도 못 벌어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니까 몇 만원 안 돼요. 돈 벌어 온 게. 그래서 수고했다 하고 그 돈 다 돌려주고, 150만원 넘는 치료비를 다 무료로 해줬거든요.
대우재단에서는 그런 걸 뭐 억지로 그걸로 받으라고 하는 푸쉬가 없었고, 어려운 환자를 잘 돌봐주라는 부탁만 했기 때문에 무료로 해줬거든요. 대우재단에서는 우리 무주대우병원이 적자내는 걸 다 100% 보전을 해줬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많이 해줬어요. 아주 어려운 사람들하고. 죽기 직전의 아주 위태로운 중환자들.

대우병원 설립취지가 그랬으니까요.
아침에 퇴원 오더를 내고 점심 먹고 다시 환자 보러 병실에 들어갔더니, 그때까지도 퇴원을 안 한거예요. 침대에 앉아서 간호사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보니까 울고 있는 표정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그렇게 인간적인 대접을 처음 받아봤다는 거예요. 그런 좋은 혜택을 받아본 일도 없고 사람 대접도 못 받았는데. 여기 와서 처음 사람 대접도 받고, 죽을 병도 고치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앉아서 계속 간호사한테 신세타령하면서 울었다는 거예요.
아 그거 보니깐 나도 가슴이 찡 하더라구요. 아 우리가 수술 안해줬으면 그 사람은 죽었죠. 틀림없이. 그때 탁 느낀 게 ‘아, 내가 정말 여기 오길 잘했다. 내가 여기 안 왔더라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죽었을거다.’ 그런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거든요. 부지기수로 많았거든요.
사람 대접이라는 말이 울림이 크네요.
또 한 사람. 밤에 여자 환자가 쇼크 상태로 왔는데. 보니깐 임신 한 3개월 정도 됐는데, 밖으론 출혈이 없는거예요. 병력을 가만히 조사해 보니까 이건 자궁 외 임신 파열된 거 같아. 그래서 밑으로 해서 뱃속에 주사바늘을 찔러 빼보니까 피가 콱 쏟아져 나오는거야. 뱃속에 피가 꽉 찬 거예요. 그럼 그건 틀림없이 자궁외 임신 파열이거든요.
혈압도 재보니까 80도 안되고 60 조금. 맥도 아주 약해서 금방 죽을거 같아. 보호자도 이 사람은 도회지로 나가면 틀림없이 택시 안에서 죽어서 돌아올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여기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국소 마취만 겨우 해가지고 째고. 뱃속에 피로 꽉 찬 걸 다 그릇으로 퍼내고 패드로 닦아내고.
그런데 피가 있어야지. 피가 없어서 직원들 전부 모아서 O형 다 헌혈받고. 그래도 모자라. 그래서 우리 집사람까지 불러서 또 헌혈 받아서 그렇게 다섯 병을 확보했어요. 피주사 놓고, 링거 주사 놓고, 혈압 올리면서 어렵게 수술했거든요. 그 사람도 살렸어요. 아직도 살아 있어요.장날되면 가끔 내려와요. 우리 병원도 찾아오고 그러는데. 우리 집사람만 만나면 ‘아이고, 사모님, 내 몸속에는 사모님 피가 지금도 흐르고 있어.’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어요. 수십 년 전 일인데도.

그 당시에 무주에는 다른 병원이나 의사는 없었나요?
그 당시에 여기 의사라고는 뭐 무주보건소에 보건소장 한 사람. 또 무슨 지역사회 의사라고 그래서 임시 의사면허증을 줘서 의사 구실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어요. 그 외에는 다 돌팔이 의사들이 많았어요. 지역 주민들은 의사가 여기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했어요.
거기다가 또 대도시에서 받을 수 있는 그런 큰 병원 진료 시설까지 해주고. 좋은 의사도 보내주고. 주민들이 굉장히 고마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김우중 회장님한테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주민들이 혜택을 많이 봤으니까.
거기다가 또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도 주지. 뭐 또 개인적으로 또 월급 받으면 떼어서 동네 어려운 데 가서 마을 길 포장도 좀 해주고 그랬거든요. 지역사회 개발사업도 좀 내가 돈을 좀 드리고 그랬어요. 또 교회가 없는 이런 교외. 가다보면 면사무소 맞은편에서 그 마을을 천주교회 하나 있어요. 그것도 교회도 제가 좀 세워주고. 주위에 극빈자들이 많기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갔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한테 나누면서. 나누면서 살 수 밖에 없었어요.

대우재단의 병원사업이 진료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어떤 가치를 지향했죠?
첫째 목표는 사회의 그늘진 곳, 낙도오지 이런 데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주민들한테 양질의 의료 혜택을 베풀어서 죽을 사람들 좀 더 많이 살리는거죠.
뿐만아니라, 어려운 집안의 자식들에게 장학금을 줘서 인재로 양성해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또 지역사회개발에도 참여해서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는거죠.
또 의료 사업에서도 환자 진료뿐만 아니고 병에 걸리지 않게 미리 예방하는 예방보건사업이나 건강증진사업도 동시에 추진하는 게 처음 병원 사업을 할 때부터의 목표였어요.
원장님은 돈을 쫓기보다는 그야말로 마음을 실천하는 한길로 살아오셨는데, 후회는 없으세요?
후회는 없죠. 아직도 나는 내 집도 없어요. 지금도 셋방살이 하고 있는데. 애들 다 키웠지. 세상 살만큼 다 살았지. 죽을 때 뭐 한푼 못 가져가잖아요? 그러니깐 죽을 때도 홀가분할거같아. 정리할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래도 보람있게 행복하게 살았으니까 후회라는 게 없어요.
난 교회 다니기 때문에 성경책을 가끔 보는데 거기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인간만사 헛되고 헛되도다.’이게 여기에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 혼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모든 활동은 재물을 쌓는 거든, 명예를 위한 거든, 권력이든, 돈이든, 힘이든, 그런 모든 일은 다 헛되다는 거예요.
그러면 헛되지 않은 일이 뭐냐?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 말씀대로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하는 게 영원히 남는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 가르침을 주거든요. 성경책에서. 그러니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자기도 보람 있게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길인 거 같아요. 내가 살아 보니까. 실제로 내가 그렇게 체험을 했고. 젊은 사람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좀 해주고 싶어요.


출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원주기독병원 외과 수련의 수료
(일반외과 전문의)
최외과의원 개원(강원도 양양군)
무주대우병원 원장
완도대우병원 원장
연세외과의원 개원(전라북도 무주군)
일시 | 2022년 9월 28일 |
장소 |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무설로 1590 연세외과의원 |
참석자 | 최해관 전 무주대우병원 원장 최윤권 대우재단 사무국장 장윤석 대우재단 커뮤니케이션팀장 |
촬영 및 정리 | 장윤석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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