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 소엽산방 17

밥 한술에 얼마나 많은 은혜가 스며 있는가

사진 한겨레 휴심정

#본문

전등독파빈선화(傳燈讀罷鬢先華) 공업유쟁기낙차(功業猶爭幾洛叉)
오수기래진만안(午睡起來塵滿案) 반첨한일낙정화(半檐閑日落庭華)
전등록 읽다 보니 구레나룻 먼저 희고
애써 공부와 다툰 세월이 얼마인가?
낮잠에서 깨어보니 책상 위엔 먼지만 가득한데
처마 끝에 반쯤 든 한가한 햇살 아래 뜨락의 꽃이 지네.

저자인 노소(老素) 선사는 은둔으로 일관한 삶이었기에 행적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짐작건대 노(老)자는 존칭어이며 그나마 이름이라고 해봐야 ‘소(素)’ 한 글자만 전한다. 원(元)나라 천력(天曆1329~1330) 연간에 어떤 선객이 얻어 온 친필 게송(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하는 노래) 3수가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흔적이라 하겠다. 그 선시는 후대에 전해지지 못할까 봐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로 수작이다. 다행히 세 편 모두<산암잡록(山菴雜錄)>에 실려있다. 그 가운데 한 편만 인용했다.

한족 국가인 송나라가 망하고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아래에서 많은 사회적 변화가 뒤따랐다. 같은 불교지만 송나라 불교와 원나라 불교(티벳불교의 한 종파로 흔히 라마교라고 부른다)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바람에 많은 선사가 일본으로 망명할 정도였다. 중원에 남아서 선종 가풍을 지킬 수 있는 방편으로 은둔을 선택한 선사들이 많았다. 산암잡록은 원대(元代) 선종 집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식으로 나열한 사서(史書)형식의 책이다.

편집인 무온서중(無慍恕中1309~1386) 선사는 태주(台州 강소성) 임해(臨海) 사람으로 진(陳)씨 집안 출신이다. 경산사(徑山寺 절강성 항주)로 출가하였으며 임제종 양기파 축원묘도(竺元妙道) 스님의 법을 이었다. 원나라가 쇠하고 명나라가 일어나는 시기에 활동했다. 선종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는 원나라 시대를 정리해 달라는 장경중(張敬中)의 부탁을 받고 산암잡록을 썼다고 한다. 그 역시 세상에 나가기를 싫어하여 행각과 안거로 일생을 보냈다. 1374년 일본의 초청에 응하라는 나라의 부탁을 사양하고 천동사(天童寺 절강성 영파)로 돌아가서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1378년 무렵 탈고했다.

#해설

한 방물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어떤 작가는 ‘봄부터 한여름 가을까지 그 여러 날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 온 쌀’이라고 표현했다. 생각해보면 한 그릇의 밥이 내 앞에 올 때까지 정말 많은 이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자연의 혜택까지 더해진다. 서두에서 인용한 시 한 수도 마찬가지다. 먼저 지은이가 있다. 그다음 전달한 사람이 있다. 공개되면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더해진다.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후 기록했다. 기록된 책이 여러 가지 이유로 없어지지 않도록 잘 건사해야 한다. 그래야 후대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 만큼 옛시 한 편에도 만인의 노고가 숨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수 한 수마다 밥 한술을 오래오래 입안에서 씹듯이 음미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사진 한겨레 휴심정

우연한 기회에 노소 선사를 만나 시 세 편을 얻은 이름없는 선객은 그 내용이 자기의 안목으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승인 귀원(歸源) 선사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그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지 않았던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게송을 보니 마치 큰 범종을 한번 치면 모든 소리가 사라져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 그가 설법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 세 편이 평생 법문한 업적에 비견될 정도로 수작이라는 착어(着語·덧붙이는 말)를 달았다. 더불어 실전(失傳·전해오던 사실을 알 수 없게 되는 일)할까 봐 염려하는 말까지 보탰다. 뒷날 무온 선사가 야무지게 기록했다. 한글로 번역된 <산암잡록>을 읽다가 이 선시를 만났다. 하긴 벽돌 두께만 한 책 한 권을 읽었다 해도 건질만 한 말은 한 두 구절 정도다. 선시 세 편에 당신의 평생 살림살이가 모두 녹아 있다는 말이 어찌 과장된 표현이겠는가?

그럭저럭 큰 허물 없이 살아온 일생을 되돌아보며 자기연민 없는 은둔자의 무덤덤한 심경을 잘 드러낸 선시라 하겠다. 참선하면서 짬짬이 전등록(傳燈錄·선사들의 전기 모음집)을 읽다 보니 세월이 흘러 벌써 귀밑털이 하얗게 바뀌었다. 원문 속의 낙차(洛叉)는 시간 단위다. 일십만년이 1낙차다. 그래서 낮잠은 그냥 낮잠이 아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을 거듭하기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반복하며 지나간 세월이리라. 신선들이 바둑 한판을 두는 사이에 이미 나무꾼의 도낏자루가 썩었더라는 <술이기>(述異記)의 기록처럼 책상 위에 쌓인 먼지가 오늘의 춘몽(春夢)을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니 마당에는 얼마 전에 핀 꽃이 말없이 지고 있었다. 하릴없는 한도인(閑道人)의 경지를 잘 보여준다.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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