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 소엽산방 15

과도한 자기 사랑이 내로남불과 고통의 원인이다

선시종가1080 / 15. 

사진 한겨레 휴심정 제공

(본문)

 

만수고저난만홍(滿樹高低爛漫紅)
표표양수시춘풍(飄飄兩袖是春風)
현성일단서래의(現成一段西來意)
일편서비일편동(一片西飛一片東)

 

높고 낮은 가지에 붉은 꽃 흐드러지고
양쪽 소매가 흩날리니 봄바람이구나
일단의 서래의(西來意)를 드러내노니
한 잎은 동쪽으로 또 한 잎은 서쪽으로

불광요원(佛光了元·1226~1286) 선사의 ‘벚꽃에 부쳐’(題櫻花)라는 선시다. 이 시가 실려있는 ‘불광선사어록’(대정장 80)은 1726년 일본에서 간행되었으며 일진(一眞) 일우(一愚) 등이 10권으로 묶었다. 송나라 대주(臺州 台州) 진여사(眞如寺), 그리고 일본 건장사(建長寺), 원각흥성사(圓覺興聖寺) 등 중국·일본 두 나라에서 설한 법문을 모두 실었다. 당시로써는 글로벌 승려의 글로벌 어록집인 셈이다.

중국 절강성 명주(明州) 출신이며 출가 후 1262년, 그의 나이 36살 때 우물가에서 물을 마시다가 깨침을 얻었다. 임제종 양기파 무준사범(無準師範·1178~1249) 선사의 법을 이었다. 남송 당시 무준 문하에 있던 많은 일본 승려들과 함께 참선한 인연으로 그들과 교류했다. 무준의 제자 유일(惟一)의 추천을 받아 1279년 56살 때 천동산(天童山)을 출발하여 일본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몽고란을 겪었고 또 일본에서 몽골 침략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후 입적할 때까지 8년 동안 일본 임제종의 기초를 닦았다. 세계문화유산이며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교토 천룡사(天龍寺)를 개산한 몽창소석(夢窓疎石)이 그의 제자이다.

 

(해설)

이 시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어떤 것이 달마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즉 ‘서래의’(西來意)라 하겠다. 제대로 물으면 본질적인 질문이 되지만 모르고 대충 물으면 상투적인 질문이 된다. 선가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이기도 하다. 하지만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학인들이 단순한 이 질문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다음은 몽둥이 3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때는 36계 줄행랑이 최고다.

요원(了元) 선사는 붉은 벚꽃이 가지마다 피어있는 상태 그대로가 ‘서래의’(西來意)라고 했다. 그리고 동서로 흩날리며 떨어지는 광경도 ‘서래의’라고 했다. 왜냐하면 꽃가지의 고저(高低)를 차별하지 않았고 꽃잎이 동서로 제멋대로 날릴 때도 그 방향을 탓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쪽 옷소매 사이로 각각 불어오는 좌풍과 우풍이라는 봄바람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흔쾌히 받아들였다. 늘 양변을 함께 보기 때문에 벚꽃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 나름의 ‘벚꽃 감상 중도법(中道法)’이었다.

곧 일기예보 말미에 지역별 벚꽃 만개 시기를 알려줄 날이 머지않았다. 더불어 ‘벚꽃 엔딩’이라는 대중가요의 노출 빈도가 잦아지는 시절이 될 것이다. ‘하나미(花見·꽃놀이)’ 갈 때 아무 생각 없는 ‘꽃멍’도 좋겠지만 ‘서래의’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곧 ‘꽃 명상’, 아니 ‘꽃 참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진 한겨레 휴심정 제공

벚꽃은 있는 힘을 다해 필 터이니 보는 사람도 있는 힘을 다해 바라볼 수 있을 때 서래의가 된다. 지는 벚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은 벚꽃 역시 지는 벚꽃임을 알아차릴 때 서래의가 된다. 저녁 벚꽃을 보면서 오늘은 이미 옛날이 되었음을 인식할 때 서래의가 된다. ‘왜 벚꽃은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그토록 무정하게 떠나는가?’ 하고 물을 수 있을 때 서래의가 된다. 벚꽃 가지를 부러뜨려봐도 그 속에 벚꽃이 한 점도 없음을 알게 될 때 서래의가 된다.

벚꽃 사랑에 관한 한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은 벚꽃도 피는 시기와 그 모양새에 따라 나누어 설명하는 언어를 가진 나라다. 피는 시기를 기다리는 꽃은 마쓰하나(待つ花), 처음 피어난 꽃은 하쓰하나(初花), 구름을 삼키고 꽃잎을 토해내듯 가득 핀 모습은 하나노쿠모(花の雲), 눈보라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은 하나후부끼(花吹雪), 물에 떨어져 뗏목처럼 줄지어 떠내려가는 꽃잎은 하나이카다(花筏), 혹여 모든 꽃이 다 지고 난 뒤 혼자 늦게 피는 벚꽃은 오소자쿠라(遲櫻)라고 이름 붙였다. 벚꽃이라고 뭉뚱그려 대충 볼 것이 아니라 한 풍광 한 풍광마다 자세히 뜯어볼 수 있는 안목이 함께 필요한 시절이다.

벚꽃에 관한 글을 찾다가 이 시를 만나게 되었다. 매화를 노래한 시는 중국·한국·일본 동아시아 3국에 흔하지만 벚꽃 시는 과문한 탓인지 일본 외에는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요원 선사의 벚꽃 시는 흔치 않은 작품이라 하겠다. 남송이 망하고 원나라가 건국되면서 망명 아닌 망명을 했고, 중국 승려이지만 일본에 귀화했기에 선종사(禪宗史)에서는 일본 승려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불광(佛光), 무학(無學), 자원(子元), 원만상조(圓滿常照) 등 많은 호를 동시에 갖고 있다.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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