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 소엽산방 12

노마드 김삿갓 아픔이 민초의 아픔 어루만지다

선시종가 1080 / 12. 나무마다 모두 흰옷을 입었네

강원도 영월계곡 김삿갓 문학길에 있는 김삿갓 석상. 사진 김선식 기자

( 본문 )

천황붕호인황붕 ( 天皇崩乎人皇崩 )

만수청산개피복 ( 萬樹靑山皆被服 )

명일약사양래조 ( 明日若使陽來弔 )

가가첨전루적적 ( 家家檐前淚滴滴 )

하늘황제 죽으셨나 땅의 임금 죽었는가 ?

푸른 산 나무마다 모두 소복을 입었네 .

만약 내일 햇님더러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엔 눈물 뚝뚝 떨어지리 .

 

김병연 ( 金炳淵 1807~1863) 의 ‘ 설 ( 雪 )’ 이란 작품이다 . 그의 본관은 안동 , 호는 난고 ( 蘭皐 ) 이며 김립 ( 金笠 ) 으로도 불렀지만 ‘ 김삿갓 ’ 이란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 경기도 양주 회암사 인근의 회암동에서 태어났으며 전국을 방랑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고 전남 화순 동복면에서 세상과 인연을 마쳤다 . 아들이 부음을 듣고 찾아가서 자기집 근처인 강원도 영월로 이장했다 . 연고지인 양주 , 화순 , 영월지역에는 시비 ( 詩碑 ) 는 물론 문화제와 백일장 그리고 갖가지 기념사업을 통해 시인을 선양하고 있다 . 특히 무덤이 있는 영월의 하동면은 2009 년 김삿갓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이 모든 것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이응수 ( 李應洙 1909~1964) 선생이 1939 년 『 김립시집 』 ( 출판사 유길서점 ) 을 출판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김삿갓 묘역’에서 본 김삿갓 조형물 옆에 김삿갓 복장을 한 공원 해설사가 함께 했다. 사진 김선식 기자

( 해설 )

볼일이 있어 눈 내리는 종로길을 걸었다 . 잠깐 오다가 그치겠지 하고 나왔는데 그게 아니다 . 눈앞이 흐릿해질 만큼 계속 쏟아지는지라 회색 모자와 목도리 속으로 얼굴을 반쯤 숨겼다 . 걷기에는 다소 불편했지만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가 없다 . 이것이 자연이 주는 힘인 모양이다 . 조심조심 반걸음으로 천천히 볼일을 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와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 SNS( 사회관계망서비스 ) 여기저기 눈 내리는 풍경을 찍은 사진과 함께 짤막한 감상을 적은 글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

누군가 김삿갓이 지은 설시 ( 雪詩 ) 를 올렸다 . 눈을 바라보는 관점이 요즈음 사람들과는 또다른 격을 보여준다 . 국상 ( 國喪 ) 을 당했을 때 문무백관은 물론 모든 백성이 흰옷을 입던 장면을 저절로 연상케 한다 . 사극에서 보던 그 광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 삼황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김삿갓은 『 사기 ( 史記 ) 』 ‘ 보삼황본기 ( 補三皇本紀 )’ 의 천황 ( 天皇 ) 지황 ( 地皇 ) 인황 ( 人皇 ) 설을 그대로 따랐다 . 알아듣는 것 조차 어려운 삼황오제의 복잡한 이름과 역할을 설명한 장황한 이론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다스리는 보편적인 개념으로서 임금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

임금의 죽음을 붕 ( 崩 ) 이라고 한다 . 법왕 ( 法王 ) 과 성군의 죽음에 대하여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은 물론 산천초목까지도 슬퍼하기 마련이다 . 혜능 ( 惠能 638~713) 선사가 열반에 들었을 때 “ 숲과 나무가 하얗게 변했다 ( 林木變白 )” 라고 육조단경은 말하고 있다 . 김삿갓은 눈에 덮힌 산하대지와 나무들을 천황 혹은 인황의 죽음을 슬퍼하여 상복을 입은 것이라고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 거기에 더하여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는 청각적 의미까지 더했다 . 눈 ( 眼 ) 과 귀 ( 耳 ) 를 통해 눈 오는 날의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묘사한 수작이라 하겠다 .

그의 삶은 고달팠다 .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마당에서 부서진 개다리 소반에 차려주는 밥을 얻어 먹으며 평생 노마드로 살았다 . 때로는 글을 아는 사람을 만나 호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쩌다가 있는 드문 일이다 . 그래도 가는 곳마다 작품을 남겼고 풍자와 해학을 통해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 민중들의 정서를 가감없이 잘 대변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 설 ( 雪 )’ 은 양반집안 출신다운 격조를 갖추었기 때문에 사대부 계층까지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

강원도 영월 김병연 묘. 사진 이병학 기자

어쨋거나 할아버지가 홍경래난에 연루된 사건 이후로 100 여년 동안 벼슬길이 막힌 김삿갓 집안은 1908 년 ( 순종 2 년 ) 에야 비로소 복권된다 . 하지만 을사조약 (1905) 으로 인하여 대한제국도 이미 이름뿐인 나라가 되었는지라 벼슬할 일도 없었다 .

일제강점기에는 손자인 김영진은 15 세에 출가하여 청강스님이 되었으며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에 석문사를 창건했다 . 1937 년 월전 장우성 ( 月田 張遇聖 1912~2005) 화백에게 탱화제작을 의뢰했다 . 두 집안은 이미 오래된 인연이 있는데다가 26 세 청년화가에게 70 세 노승이 한 부탁이었기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 그래서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불화를 그리면서 저간의 앞뒤 사정을 1981 년 중앙일보 ‘ 남기고 싶은 이야기 ’ 코너에 기록해 두었다 . 월전미술관은 현재 경기도 여주 설봉공원 안에 자리잡고 있다 .

눈 내린 날 지은 시 한 편을 통해 벼슬할 수 없는 집안출신인 조선후기의 불우한 천재시인 김삿갓을 만났다 . ‘ 김립시집 ’ 을 간행한 이응수 선생은 해방 후 북한에서 활동한 지식인이었다 . 또 장우성 화백은 친일화가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력을 가졌다 . 이렇게 우리 근현대사에서 또다른 시대적 아픔들이 녹아있는 이면의 역사가 함께 함도 알게 되었다 . 눈 내리는 밤에 달님이 찾아와 세 사람을 조문한다면 또 눈물을 뚝뚝 흘리겠지 .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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