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소엽산방 5

금은 불에 들어가는걸 두려워하지않는다

선시종가 1080 / 5.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련. 사진 픽사베이

( 본문 )

금불박금 ( 金不慱金 ) 이요

수불세수 ( 水不洗水 ) 라

금으로 금을 바꿀 필요가 없고

물은 물로서 씻을 필요가 없다

『 천노금강경주 ( 川老金剛經註 ) 』 라고 이름 붙였다 . 천노 ( 川老 야보도천 ) 가 동재도겸 ( 東齋道謙 ) 선사 문하에 있을 때 승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몰려와서 금강경에 대해 질문하니 송 ( 頌 ) 으로써 대답한 일백여구 ( 句 ) 를 모은 것이다 . 이 선시는 금강경 제 6 정신희유분 ( 正信希有分 바른믿음은 흔치않다는 의미 ) 가운데 “ 법 아니라는 것도 취할 것이 못되지만 또 법이라는 것도 취할게 못된다 (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 는 것을 묻자 이렇게 게송으로 대답한 것이다 . 법 ( 法 ) 도 비법 ( 非法 ) 도 상대적인 것이므로 법이라는 것도 비법이라는 것도 모두 벗어났을 때 비로소 그게 ‘ 찐 법 ’ 이라는 의미이다 . 유사이래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그 진리에 집착하다가 결국 그 진리에 밟혀죽는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

야보 ( 冶父 ) 선사는 군 ( 軍 ) 에서 궁수 ( 弓手 활쏘는 소임 ) 로 근무했다 . 어느 날 도겸선사를 찾아가 참선에 몰두하다가 본의 아니게 소임지 이탈이라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 . 잡혀 와서 곤장을 맞는 순간 크게 느낀 바 있어 사직하고 출가했다 . 속명은 적삼 ( 狄三 ) 이다 . 적 ( 狄 ) 은 북방 유목민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 즉 ‘ 유목민 같은 놈 ’ 이라는 의미일수도 있겠다 . 본관이 곤산 ( 崑山 곤륜산맥 ) 이니 유목민의 후예일 것이다 . 도겸스님은 도천 ( 道川 ) 이란 법명을 내리면서 “ 천 ( 川 ) 은 곧 삼 ( 三 ) 이다 . 열심히 수행하면 도 ( 道 ) 가 시냇물처럼 늘어나 도천 ( 道川 ) 이 되겠지만 만약 게으름을 피우면 그대로 드러누운 오랑캐 같은적삼 ( 狄三 ) 이 될 것이다 .” 라고 당부했다 . 열심히 수행하여 뒷날 야보산 ( 안휘성 ) 실제 ( 實際 ) 선원 조실로 추대되었다 . 송나라 임제종 승려로 생몰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 하지만 남긴 게송은 선시의 금자탑이다 . 또 선시 ( 禪詩 ) 작가 가운데 최고봉이라 하겠다 .

 

(해설)

경북 문경 봉암사를 다녀왔다. 일행과 함께 은암고우(隱庵古愚1937~2021)대선사 문상을 마쳤다. 경북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하여 청암사(김천) 남장사(상주) 강원(講院)에서 수학했다. 성철스님이 1947년 시작한 ‘봉암사 결사’가 한국전쟁으로 중단된 것을 다시 이어서 1968년 ‘제2의 봉암사 결사’를 통해 오늘의 봉암사를 만드는 초석을 놓은 어른이다. 그 시절 희양산의 국립공원 지정을 반대했고 봉쇄수도원으로 위상을 공고히 하면서 오늘날 참선수행의 근본도량인 종립선원으로 운영되는 ‘수좌들의 본향’이 되었다. 1987년 학인시절에 ‘제1회 전국선화자(禪和子)대회’가 합천 해인사에서 열렸다. 뒷날 알고보니 이 법회도 고우스님의 작품이라고 했다. 500여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해인사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보경당(普敬堂) 맨뒷문을 기웃거렸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롭다. 2005년 <조계종수행의 길 간화선>간행을 위한 편집회의가 몇 번을 거듭하면서 비로소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이라는 실무책임자 자격으로 스님을 가까이서 자주 뵙는 기회를 가졌다.

호도협 트레킹

( 해설 )

중국 운남 ( 雲南 윈난 ) 성 호도협 ( 虎逃峽 호랑이가 뛰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협곡 ) 사이를 흐르는 강이름은 금사강 ( 金沙江 ) 이다 . 호도협이란 이름이 남성적이라면 금사강은 여성적이라 하겠다 . 양 ( 陽 ) 과 음 ( 陰 ) 의 조화가 어우러진 중도 ( 中道 ) 의 이상적 공간은 옛적에는 차마고도의 마방들이 그리고 현재는 트래킹을 좋아하는 무리들의 길이 되었다 . 리장고성 ( 麗江古城 ) 시가지에 펄럭이는 민속공연장의 광고깃발은 ‘ 여수금사 ( 麗水金沙 )’ 였다 . 여수 ( 麗水 맑은 물 ) 가 음이라면 금사 ( 金沙 금모래 ) 는 양이 된다 . 상류의 금사는 음 ( 陰 ) 이 되었다가 하류의 금사는 다시 양 ( 陽 ) 이 되었다 . 이렇게 음과 양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 그렇다고 해서 상류의 금사와 하류의 금사가 다른 것도 아니다 . 주변의 조건이 어떻게 바뀌느냐 따라서 자기색깔도 함께 바뀌는 것이다 .

화엄종의 완성자인 당나라 현수법장 (643~712) 은 측천무후 (624~705) 에게 금사자 비유를 통하여 이런 관계성에 대하여 ‘ 금사자는 절도범에게는 사자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오직 금으로만 보인다 . 조각가 등 예술가에는 금은 보이지 않고 오직 사자의 예술적 완성도만 보인다 .’ 라는 비유로 쉽게 잘 설명했다 . 발굴지에서 사리 ( 舍利 ) 는 보이지 않고 사라함만 보이는 고고학자와는 달리 사리함은 보이지 않고 오직 사리만 궁금한 종교인과 비슷한 경우라고 하겠다 . 금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 금거북도 되고 금돼지도 되고 행운의 열쇠도 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형상을 통해서 금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 그리고 금은 광산에서만 고체상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 물에서 사금으로 채취할 때는 고체라기보다는 액체에 가깝다 하겠다 . 못쓰는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수집하여 금을 추출하기도 한다 . 따라서 금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금이 나오는 곳은 모두 금광이라고 하겠다 .

금사강

석두희천 (700~790) 선사는 진금포 ( 眞金鋪 ) 를 지향했다 . 하지만 금괴만을 취급하는 명품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 순일무잡한 고고한 선풍은 본래 대중적일 수 없는 일이다 . 근본주의로 선종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 마조도일 (709~788) 선사는 잡화포 ( 雜貨鋪 ) 를 표방했다 . 순금 뿐만 아니라 금박 금가루 심지어 도금용 가짜금까지 팔았다 . 그래서 늘 사람이 끊어지지 않았다 . 많은 방편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 뒷날 마조의 제자들이 중국선종계의 주류가 된다 .

도반이 아끼는 다기가 깨져 다시 수리를 했다면서 차를 다려 내놓는다 . 깨진 곳을 감쪽같이 떼운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 틈새를 금으로 메운 것이다 . 금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보란 듯이 자기를 드러내면서 금과 도자기가 잘 어우러지는 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 긴즈끼 ( 金繼 ぎ ) 라고 했다 . 그릇의 부서진 부분을 금을 이용하여 접착시키고 원래그릇보다 훨씬 더 멋진 그릇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다 . 이 역시 금이 “ 나는 금이다 .” 라고 하는 고유성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진금불파화련 ( 眞金不怕火煉 ) 이라고 했던가 . 진짜금은 불 속 단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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