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소엽산방 4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를 수가 있나요

선시종가1080   4.뱁새가 황새걸음을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사진 : 픽사베이

(본문)

임단임장휴전철(任短任長休剪綴)

수고수하자평치(隨高隨下自平治)

짧고 길건 맡겨두어 재단질을 하지 말 것이요

높건 낮건 인연따라 스스로 평평해지게 하라.

승조(僧肇384~414)법사는「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에서 부연설명을 통해 “모든 법이 다르지 않다고 하여 어찌 오리의 다리를 잇고 학의 다리를 자르고 산을 뭉개고 구덩이를 메운 뒤에야 차이가 없다고 하겠는가?”라고 일갈했다. 그는 장(張)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는 노자장자 사상에 심취했다. 출가 후에 구마라집 (鳩摩羅什 실크로드의 작은 오아시스 국가인 쿠차 출신으로 인도말과 중국말에 능통하여 많은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다)문하에서 ‘공(空)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야심경의 주인공인 수보리는 인도에서 ‘해공제일(解空第一)’로 불렸다. 당시 중국에서 해공제일은 승조인 셈이다.

(해설)

경북 문경 봉암사를 다녀왔다. 일행과 함께 은암고우(隱庵古愚1937~2021)대선사 문상을 마쳤다. 경북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하여 청암사(김천) 남장사(상주) 강원(講院)에서 수학했다. 성철스님이 1947년 시작한 ‘봉암사 결사’가 한국전쟁으로 중단된 것을 다시 이어서 1968년 ‘제2의 봉암사 결사’를 통해 오늘의 봉암사를 만드는 초석을 놓은 어른이다. 그 시절 희양산의 국립공원 지정을 반대했고 봉쇄수도원으로 위상을 공고히 하면서 오늘날 참선수행의 근본도량인 종립선원으로 운영되는 ‘수좌들의 본향’이 되었다. 1987년 학인시절에 ‘제1회 전국선화자(禪和子)대회’가 합천 해인사에서 열렸다. 뒷날 알고보니 이 법회도 고우스님의 작품이라고 했다. 500여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해인사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보경당(普敬堂) 맨뒷문을 기웃거렸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롭다. 2005년 <조계종수행의 길 간화선>간행을 위한 편집회의가 몇 번을 거듭하면서 비로소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이라는 실무책임자 자격으로 스님을 가까이서 자주 뵙는 기회를 가졌다.

9월2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고우 스님의 영결식이 끝난뒤 법구를 다비장으로 이운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본문에서 말하는 길고 짧음의 대상인 오리다리와 학다리를 비교논쟁하는 것은<장자>권8 변무(騈拇)에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승조법사는 나름 스스로 소화한 언어로 다시 정리했던 것이다.

부경수단속지즉우(鳧脛雖短續之則憂)

학경수장단지즉비(鶴脛雖長斷之則悲)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이어주면 걱정거리가 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주면 근심거리가 된다.

운문문언(雲門文偃864~949)의 제자 파릉호감(巴陵顥鑑)도 비슷한 틀로 각자 본성이 다르다는 것을 두 줄의 선시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학이 아니라 늘 볼 수 있는 닭으로 바꾸었다. 오리는 그대로다.

계한상수(鷄寒上樹)하고 압한하수(鴨寒下水)라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내려간다.

예전에 어떤 암자를 찾아가는데 입구부터 “비교하지 말라”는 형형색색 만든 깃발을 마당까지 쭉 걸어 두았던 기억이 다시금 새롭다. 남들이 물로 내려간다고 해서 같이 물로 따라갈 일이 아니다. 모두 나무 위로 올라간다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 할 일이 아니다. 각자 자기본성에 맞는 최선의 행동이 해답이다. 뱁새가 황새걸음을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우 선사는 “다른 사람과 무한경쟁(無限競爭)하지 말고 스스로 무한향상(無限向上)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스스로 능력의 범위 안에서 무한향상하면 될 일이다. 사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의 고유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인 것이다.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당신이 들려주는 생활법문이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 차이가 절대로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름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화엄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위산(771~853)이 논을 개간하는 일을 시켰는데 제자 앙산(803~887)이 물었다.

“여기는 이렇게 낮고 저기는 저렇게 높습니다,”

이에 위산이 대답 했습니다

“물은 능히 모든 물건을 평평하게 하니 물로써 고르라”

이에 앙산이 말했다.

“물에도 기준이 없습니다. 높은 곳은 높게 고르고 낮은 곳은 낮게 고르겠습니다.”

이에 위산이 “옳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높은 곳은 높게 고르고 낮은 곳은 낮게 고르는 것이 논갈이의 해답이다.

9월2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고우 스님의 영결식이 끝난뒤 법구를 다비장으로 이운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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