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소엽산방 11

설날 아침에 복이 열리고 온갖 것이 모두 새롭구나

선시종가 1080 / 11.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다

사진 한겨레 휴심정 제공

( 본문 )

독열진편과야반 ( 獨閱塵編過夜半 )

일등분조양년인 ( 一燈分照兩年人 )

혼자서 먼지 낀 책을 읽으며 자정을 넘기려는데

동일한 등불이 지난 해와 올해 사람을 나눠 비추네.

저자인 가정 이곡 ( 稼亭 李穀 1298~1351) 선생은 고려와 중국 원 ( 元 ) 나라의 과거시험에 모두 합격하였고 두 나라에서 관료로 근무한 경력의 소유자다. 1336 년 원나라 임금에게 상소문 올려 고려에 부과된 처녀공출제도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를 폐지토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충남 서천 기산면에 무덤과 서원이 있으며 목은 이색 (牧隱 李穡 1328~1396) 이 그의 아들이다. 가정 (稼亭) 이란 호 (號) 는 잠시 유배갔던 원주 북내면 가정리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는 ‘ 제야독좌 (除夜獨坐 섣달 그믐밤에 홀로 앉아)’ 의 일부이다. 잠을 자지않고 등불을 켠 채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아하는 모습이 눈 앞에서 그대로 그려진다. 새롭게 시작하는 설날과 지나가는 섣달그믐을 연결하기 위해선 깨어 있어야 했다. 이를 수세 (守歲) 라고 한다. 방과 부엌 대청 헛간 등 온집안을 환하게 불을 밝혀두는 풍습이다. 이 날 만약 잠을 잔다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누구든지 밤샘을 해야 했다. 선비답게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무상 ( 無常 세월의 변화 ) 과 무아 ( 無我 자신의 변화 ) 의 흐름을 가만히 관조 ( 觀照 ) 하면서 지은 글이다.

홀로 그냥 앉아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 순간에 모두가 새해라고 부르는 무상의 도리를 실감한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동일한 인물인데 작년사람과 올해 사람으로 달리 불리는 무아의 경험도 하게 된다. 등불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등불인데 한순간 작년등불과 올해 등불로 바뀌면서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동시에 비춰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양변을 동시에 살피는 중도 (中道) 의 이치를 그대로 체현 (體現) 한 것이다 .

사진 한겨레 휴심정 제공

( 해설 )

구거신래하소희 ( 舊去新來何所喜 ) 묵은 해 가고 새해 온들 기뻐할게 무언가?

빈변첨득일경상 ( 鬢邊添得一莖霜 ) 귀밑머리 한 오라기 흰 터럭만 늘어나는데.

이곡 선생보다 약간 앞서 살았던 원감충지 (圓鑑冲止 1226~1292) 선사는 조계산 수선사 (현재 순천 송광사) 제 6 세 국사이며 장원급제 이력을 가진 명문가 출신이다. 출가 전에는 나라의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고 출가 후에는 원나라 세조의 부탁을 받고서 연경 (燕京 북경) 을 방문했다 . 문장에 능한지라 『동문선 (東文選)』 에도 선사의 작품이 실려 있다. 설날을 맞이하여 열 선백 (悅 禪伯) 에게 보낸 글 가운데 일부이다.

한 해가 바뀌는 날이라고 해봐야 그것도 알고보면 그 날이 그 날일 뿐이니 그저 무덤덤하게 맞이할 뿐이다. 다만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내 귀밑털이 하얗게 바뀐 숫자가 늘어나는 일이다 . 그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하겠다.  어쨋거나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나의 모습을 변하게 한다는 무아 ( 無我 ) 의 이치에 방점을 찍었다.

유희원조몰의지 ( 唯喜元朝沒意智 ) 새해 아침 이런저런 생각없는 걸 기뻐하나니

세인기식개풍류 ( 世人豈識箇風流 ) 세상사람들은 어찌 이런 풍류를 알리오.

일본 임제종 중흥조인 백은혜학 ( 白隱慧鶴 하꾸인 에까쿠 1685~1768) 의 스승인 정수혜단 ( 正受慧端 쇼오주 에단 1642~1721) 선사도 설날을 그냥 지나가지 않고 한 마디 보탰다.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도 하지 않았으며 머리카락이 희어지는 것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한탄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저런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무심 (無心) 할 수 있는 경지를 확인하고는 스스로 기뻐한다고나 할까.

이런 무분별의 수행경지를 즐기면서 혼자 새해아침을 음미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중이 모여사는 곳은 또 다르다. 생각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는 평범한 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송나라 오조법연 (五祖法演 1024~1104) 선사는 새해아침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설날 아침에 복이 열리고 온갖 것이 모두 새롭구나.(元正啓祚 萬物咸新)”

하지만 수행자는 설날이란 섣달그믐과 결코 나눌 수 없다는 이치도 같이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새로운 것인가? 묵은 것인가?(是新耶 是舊耶)”

하지만 섣달그믐은 섣달그믐이고 설날은 설날인지라 이를 다시 구별하면서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복유존체기거만복 (伏惟尊體起居萬福) 하나이다.

엎드려 바라건데 대중들의 존귀한 몸에 언제나 만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어쨋거나 양력설이건 음력설이건 모두 달력의 숫자는 빨간 날이다. 그러므로 설날에는 새해니 묵은 해니 하는 현학적인 논변은 잠시 접어두고 설날 그 자체로 축하와 덕담을 나누라는 당부로 알아들으면 될 일이다.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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