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마치며: 한국도자제작기술사

이 책의 저술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 책의 저술 배경은 저자의 삶의 궤적에 나타난 변곡과 연관이 있다. 적성과 상관없이 진학했던 서울공대 시절, 선친을 따라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재현하던 이천 도자기 공장에서 보낸 실증의 세월, 그리고 고려대학교 미술사 교수가 되어 제자들과 함께 한 20여년 넘는 동서고금의 도자 제작지 답사 등을 통해 얻게 된 지식과 경험들이다.

2000년 이후로 조선백자와 중국도자의 편년과 양식, 후원과 제도, 미감의 변천, 왕실과의 관계 등을 주제로 여러 저술 활동을 이어 오는 가운데, 마음 한구석에는 도자 제작기술과 장인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우재단의 학술연구지원을 받아 막상 저술을 시작해보니 대학 전공인 기계공학과 큰 상관은 없지만 도자기의 물리, 화학적 이해에서 다른 미술사 전공자들보다 조금은 유리했고, 이천 도자기 공장에서 경험한 전통 도자 제작 등은 전 시기에 걸쳐 한국도자의 제작기술을 서술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

2003년 일본 백자의 고향 아리타 답사

집필하며 알게 된 가장 큰 발견은 무엇이었나요?

선사시대부터 조선말기까지 한국도자기의 제작기술 변천 과정 집필에서 가장 큰 발견은 한국도자 제작사에 면면히 흐르는 장인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정신이었다.

고려시대 비색청자 제작을 위한 다양한 유약 실험과 지형에 맞는 가마 구조 변경, 최적의 소성 방식 채택 등은 하드웨어에서 중국에 비할 바 아닌 고려가 중국도 부러워하는 비색청자를 제작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조선시대 지방장인들이 분청사기와 조선백자에서 보여준 독특한 개성적인 장식과 중앙 관요보다 앞선 가마 축조 기술 등에서 열악한 환경을 넘어선 위대한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선진 도자 기술을 도입, 수용하였지만 어느 시기든 단순 모방에서 벗어나 중국과 다른 한국적 변용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였다는 점은 경의를 표하기 충분하다.

다만 원료의 한계에 따른 대량생산의 어려움, 장인들의 열악한 대우와 신분적 한계, 대외 무역이나 상업 활동의 제약, 상회 자기(overglaze ware)제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등은 아쉬운 부분이다.

연구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했나요?

저술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책 내용상 필수적인 도자기 태토*와 유약, 소성 등의 물리, 화학적 설명이었다. 이전까지 도자 관련 저술에서는 도자기 문양과 형태의 미학적, 양식적 서술이나 중국과 일본 도자와의 비교, 도자 무역, 왕실관련 내용 등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전개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금번 저서의 경우 태토와 유약의 화학성분, 도자기 색상 재현에 요구되는 백색도와 산화, 환원 반응, 철을 비롯한 각종 안료의 화학적 이해, 가마 구조와 소성 방식 등은 일반 독자뿐 아니라 미술사 전공자들에게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다.

고심 끝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석사 과정 제자에게 각종 조각과 상감과 같은 장식 기법, 유약과 안료의 화학 반응, 가마 구조와 가마 안의 불꽃의 흐름 등을 설명하고 이를 스케치하여 삽도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고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작업장이나 지붕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발굴된 바닥 부분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가마 삽도를 완성하는데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태토(胎土): 질그릇이나 도자기의 밑감이 되는 흙

조선시대 백자 작업장 ⓒ안성희

논저를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이 책은 일반적인 도자기 관련 저서와 달리 도자기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실증적으로, 역사적으로 밝히는데 주력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도 강진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원료 수집과 배합에서 가마 소성까지 실제 도자 장인이 되어 직접 도자제작에 뛰어들기를 권한다.

본인이 만들고 싶은 그릇에 따라 원료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 것인지, 원료 배합은 몇 대 몇으로 할 건지. 물레 위에 앉아 성형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건지, 고려 상감청자를 직접 조각한다면 상감토를 어디서 구하고 실제 조각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려시대 비색청자의 색상은 어떻게 낼 것인지, 분청사기 가마는 어떻게 축조하고 불은 어떻게 땔 것인지, 조선시대 청화백자의 안료는 코발트와 다른 원료를 어떻게 배합하여 붓질할 것인지 등등 제작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든 과정들에 의문을 가지고 본다면 이 책은 나름 최적의 대답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후 연구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선 이 책과 관련된 국내외 강연을 이어가며, 궁극적으로 영역을 통해 이 책을 세계에 선보이고 싶다. 한국도자기 관련 영역 서적이 워낙 적고 제작기술 관련 서적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후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출간후 이 책을 본 해외 지인들은 한국 도자에 외국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여러 사안들이 포함되었다고 영역 출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음은 이전부터 관심을 두었던 <한일 도자교류사> 저술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 조선과 일본 양국 도자사의 변천이 주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한일 도자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임진왜란 전후 일본으로 피랍된 조선도공과 그들에 대한 평가, 왜관을 중심으로 한 일본으로의 다완 무역, 조선과 다른 일본 도자의 발전 과정, 유럽 내 자포니즘의 핵심이 되는 일본 무역 도자 등에 대해 기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일본 내 최신 연구와 발굴 자료 등이 정리되길 기대한다.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한국 도자기 제작기술과 작품의 품질은 반드시 비례했을까. 예를 들어 고려 비색청자의 가마 구조는 공학적으로 최상이었을까. 불교와 조선 성리학 같은 사상이나 종교는 도자 제작기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조선시대 상회자기 제작기술의 부재는 백자 위주의 단색미를 선호한 성리학적 생활방식의 결과일까. 끝으로 원료와 연료의 제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21세기에서 한국도자 제작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이들 대답은 사실 독자뿐 아니라 현대 도예가들에게 더 듣고 싶다. 자신만의 기술과 디자인 개발을 위한 치열한 실험정신은 한국도자제작기술사에 면면히 흐른 전통이자 우리 도자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

1.

백자청화투각운룡문연적(사진)은 필자가 1980년대 후반 이천에서 직접 제작 경험을 했다. 박물관 유리장 너머 보면 무슨 특이점이 있나 하겠지만 이 연적은 투각된 안에 물탱크 같은 수조가 들어있는 이중투각기법을 사용하여 성형, 장식하였다. 또한 물을 붓는 입수구가 보이지 않는데, 연적 바닥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적 내부에는 관이 설치되어 연적을 뒤집어서 물을 따르면 관을 통해 수조 안으로 유입된다. 다만 관 높이 이상으로 물을 따를 경우 아래로 전부 흘러내리는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하였다. 튜브를 통해 인입된 물은 다시 바닥과 외면에 숨겨진 관을 통해 출수구로 이어진다. 이처럼 제작이 까다롭고 외부에선 도저히 알 수 없는 연적 제작을 직접 경험했던 필자는 30여년 전부터 이 연적은 반드시 X-ray, CT 사진(Fig 2)을 촬영하여 도록에 삽입해야 제작기법을 알 수 있을 거라 주장했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제작기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백자청화투각운룡문연적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2.

2000년부터 시작한 제자들과의 답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로 이어졌다. 2003년 일본 백자의 고향인 아리타 답사 때 함께 한 제자들은 이제 다 40대가 되었다. 2009년 중국 하남성 박물관 답사 때는 중국 하남성 TV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2016년 중국 송대 최고의 청자 생산지인 여요(汝窯)를 방문했을 때는 지역 TV와 전문가들이 몰려와 한국의 고려청자와 중국 여요청자 중 어느 것이 세계 최고인가라는 질문에 각각 유약의 특징과 소성방식, 가마 구조의 차이를 들어 나름 최고의 색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2017년 중국 백자의 고향인 경덕진 고령을 제자들과 답사하면서 고령토의 기원을 설명하며 고령산을 넘었다. 2018년에는 포르투갈 리스본 산토스 궁전의 천장에 장식된 중국 명대 청화백자를 조사하기 위해(사진) 어렵게 방문하였다.

2018 리스본 산토스 궁전에서 중국 청화백자 조사

연구자 방병선 교수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 학사와 석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0년 3월부터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학연구소장, 대만예술대학 초빙교수, 인문대 학장, 인문정보대학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시와 충청남도, 세종시 문화재위원,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및 전문위원,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조선후기백자연구』,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중국도자사연구』, 『도자기로 보는 조선왕실문화』, 『한국도자사전』(공저) 등이 있고, 60여 편의 국내외 논문을 발표했다.

* 본 연구는 대우재단의 2019년 학술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2022년 12월에 639번째 대우학술총서로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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