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마치며: 소피스트 단편 선집

1. 『소피스트 단편 선집』 연구 작업의 주안점은?

고대 희랍에서 인간이 갖춰야 할 훌륭함은 흔히 ‘아레테’(‘덕’ 혹은 ‘탁월함’)로 표현되었는데, 처음에는 상고 시대의 호메로스적 의미로, 전사의 훌륭함인 용기와 무용(武勇)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그러다가 고전기 민주주의 아테네에 와서 그것은 군중 모임에서 동료 시민들을 설득하는 수사학적 능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이런 이행의 대척점에, 소크라테스학파가 강조하는 인간 내면의 진정한 덕(즉, 지혜, 정의, 절제, 용기) 개념이 대두되고 이후 지성사의 ‘주류’를 이루지만, 적어도 당대 현실의 장에서 시중에 통용되는 덕 논의는 그러했다. 

고전기 희랍에서 인간의 훌륭함이 전사의 용기로부터 담론장에서의 설득 능력으로 바뀌는 이런 대전환을 교육의 측면에서 주도하며 최초 민주주의 활성화에 동참한 이들이 바로 소피스트다. 흔히 기원전 5세기 아테네라고 하면 대개 페리클레스(민주주의)를 떠올리거나 소크라테스(철학)나 소포클레스(비극), 투키디데스(역사)를 기억하곤 하지만, 사실 소피스트 운동을 빼놓고 그것을 제대로 포착하거나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본이다!” 전몰자 장례 연설 중인 페리클레스 (Philipp Foltz, , 1875-1880, The Rijksmuseum 소장) *1

그런데 플라톤 등에 의해 주도된 주류 지성사가 소피스트들을 진리보다 쟁론에서의 승리에 집착하는 반-철학자 그룹으로 규정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전파, 보존되는 대신 점차 잊혀져 갔다. 인류가 민주주의를 시작한 경험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해진 만큼이나 그 경험의 주요 구성 인자인 소피스트들의 사유와 활동 또한 되새겨 볼 만한 소중한 문화 자산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아직 그것은 우리에게 충분히 돌아오지 않았다. 『소피스트 단편 선집』(이하 『선집』) 작업은 역사 속에서 희미해진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그런 복귀와 복권에 시동을 거는 일이다.

『선집』은 저자와 텍스트가 주어져 있는 고전의 단순 번역이 아니다. 소피스트의 발언이나 생각이 언급된 문헌 대목(=‘단편’)을 찾아 모으는, 텍스트 자료의 비평적 선별과 분류 작업부터 정리와 번역, 주해와 코멘트, 스토리 구성 등에 이르기까지 저서에 맞먹는 구상과 노력이 필요한 ‘연구 번역’이다. 

가장 오래된 중세 필사본(Codex Oxoniensis Clarkianus 39: 895년)에 들어 있는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서두. 프로타고라스의 저작은 이렇게 타인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다.(출처: wikimedia)

작업자가 일정한 구상을 갖고 끌고 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어서 단순 저서보다 오히려 어려운 작업이기도 했다. 누구를 소피스트로 꼽을지 결정하는 일조차 편역자의 몫이며, 맥락 없이 던져진 텍스트들은 어느 위치에 넣느냐에 따라 메시지의 내용과 의의, 발언자의 위상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우선 텍스트의 바다 속에서 특정 소피스트에 해당할 단편들을 모은 뒤 일종의 ‘조각 그림 맞추기’ 퍼즐을 실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잠정적인 전체 그림 상정 → 단편들에 적용 → 전체 그림 재수정 등 순환적 작업이 수없이 반복되었는데, 나는 2차 문헌들을 참고해 가며 매번 최선의 그림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런 어려움에 더해 자료들이 대개 적대적 전승자(그것도 플라톤 등 강력한 지적, 제도적 권력의 담지자)에 의해 전달된 것이라는 원천적 한계가 있다.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데다 그나마도 적대자의 프리즘으로 이해(오해)되고 가공(이용)된 텍스트 속에 전해져 있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전승자 시각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비판적 안목과 거리를 유지하되 균형감을 잃지 않는 나름의 입장을 확보하려 애썼다.

2. 작업의 배경과 의의는?

플라톤 연구와 번역을 주된 업으로 삼다가 박사 논문으로 시인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연구를 수행한 후 두 사람 사이를 잇는 초기 희랍의 철학 담론 발전사를 연구해 왔고 그것을 『설득과 비판』(2016)에 담았다. 그 두 거장 사이에 소크라테스라는 매개자를 설정하고 다시 그를 소피스트 전통 속에서 조명하려는 시도였는데, 이 선집은 그 시도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면서 뼈와 살을 붙이는 구체화 작업이다.

플라톤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조명하는 작업으로는 그것이 국내 첫 시도였는데, 특히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소피스트들은 플라톤 중심의 주류 지성사 전통에서 진지하지 않은 비철학적 그룹으로 논의 선상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일차 자료를 모아 가닥을 잡고 색을 입히는 일은 역사적 소피스트를 탐구 대상으로 복권하는 일의 첫걸음이다. 서양에서는 진즉에 진전을 본 일이고 우리 학계에서도 만시지탄이긴 하나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다.

소피스트 연구는 우리 담론 문화에 상당한 울림을 줄 만하다. 정치와 종교를 식탁의 주제로 올리기가 자못 껄끄러운 우리 사회의 특수성은 주로 이분법적이고 자기 확신에 찬 폐쇄적 담론 문화 때문이다. 고대 희랍과 유대 기독교라는 서양의 두 ‘주류’ 전통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으면서 그런 특성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사실 희랍 담론 문화는 본래 반이분법적, 개방적인 겨룸의 전통, 진지한 유희 전통을 내장하고 있고 그 한 결실이 소피스트 운동이다. 소피스트 조명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담론 문화를 일신하며 열린 대화와 소통에 기여하는 생산적 문화 자산으로 기능하리라 기대한다.

3. 작업 중 어렵거나 아쉬웠던 것은?

대상 자료 저자만도 최소한 142명이다. 장르, 출신, 지적 배경, 언어, 맥락(그것조차 빠진 경우도 많다.) 등이 다양하며 간접 전달이 대부분이어서 이해, 가공은 고사하고 접근 자체가 힘들다. 온갖 텍스트 편집본과 온-오프라인 자료들을 탐색하며 텍스트 정본을 찾는 일부터가 도전이며, 거기 도달했다 해도 그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 속에서 타깃 텍스트를 취사선택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아쉬웠던 건 우리말 고전 번역 자료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이다. 142명 저자 중 국역을 일정하게 참고할 수 있던 경우는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세 비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두 역사가 등 거의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참고용이었고 내 글 맥락 속에 안착시키기 위해 일일이 새로 번역하느라 애를 먹었다. 일본이나 서양에 비하면 기댈 언덕 없는 맨땅에서 시작하는 무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물론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맨땅에 기댈 뭔가를 남기는 일이니 말이다.

4. 작업 과정에서 깨달은 사항은?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인가? 소크라테스를 플라톤과 다른 시각과 방식으로 바라보는 실험을 꼭 플라톤 학자인 내가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편히 통상의 관행을 따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관점과 발상을 바꾸고 바라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는 걸 체감했다. 이런 역발상 실험은 매우 소피스트적일 뿐만 아니라 플라톤적이기도 하다.

또 하나 새삼 깨달은 것은 기초 고전 번역 작업의 중요성이다. 서양에서도 손 많이 가고 공은 별로 안 되는 기초 텍스트 작업은 미국이나 서유럽 대신 이탈리아 차지다. 이름 없고 빛도 없는 그 ‘3D’ 노동 덕을 우리가 누린다. 우리에겐 기초 텍스트 번역이 문제인데, 누군가가 해 놓지 않으면 필요한 모두가 텍스트 속을 헤매는 시간과 노력을 제각각 들여야 해서 비경제적이다. 자기 분야 기초 텍스트는 번역과 주해를 해 놓는, 자기 몫의 기여(『향연의 ‘에라노스’) 정신을 발휘하면 좋겠다. 오랫동안 나는 번역의 질적 제고를 위한 리뷰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는데, 요즘은 오히려 고급 인력 유입을 위해 아량을 가지고 번역의 의의와 노고를 평가해 주는 일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데모크리토스와 프로타고라스 (Salvator Rosa, Démocrite et Protagoras, 1663-1664, Hermitage Museum 소장) *2

5.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연구자나 학생 독자에게는 기초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일의 성과와 의의가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전을 음미하며 우리말로 옮기고 해석을 제공하는 기본 작업이 재미도 의미도 있는 일이므로 감히 도전하시길 권한다. 묵묵히 떼는 발걸음이 뒷사람들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연관되어, ‘마이너’ 탐색의 가치를 나누고 싶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대가나 일등, 일급, 스타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웬만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는 고급 선호 취향에 길들어져 왔다. ‘고전’을 읽고 음미하는 일도 그런 고급 취향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고전이나 고급을 선별하고 후대에 남기는 기제가 언제나 정의롭고 공정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우리 대부분은 일등이 아니라 평범하다. 범상한(혹은 범상하다고 평가된) 자들의 기록은 우리에게 닮음의 동기를 제공하는 이점이 있다. 각자가 자기다움을 찾고 개발하는 일엔 오히려 더 유용할 수 있다.

6. 향후 연구 계획

비슷한 연구 번역으로 『헬레니즘 철학 단편 선집을 네 연구자가 공동으로 작업 중인데, 그 중 스토아 윤리학을 맡았다. 플라톤의 ‘작은’ 대화편들이나 플라톤 『고르기아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쌍 등을 번역하면서 코멘트 붙이는 작업도 해 보고 싶다. 연구 화두로는 설득과 진리, 진지한 유희, 관조와 실천, 플라톤의 변명 기획, 소피스트 등 역사 속 마이너 담론 조명, 소크라테스와 예수 등이 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에로스를 아프로디테에게 데려가는 페이토(설득의 여신) (Fresco depicting the punishment of Eros by Venus, found in the House of Punished Love in Pompeii, 25 BC, Naples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소장)

7. 끝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화두가 있다면?

“아름다운 것들은 어렵다.” 곧잘 언급하는 희랍 속담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작은 것들이 아름답다. ‘폼나는’ 일등만 대우받는 승자독식 세상은 그닥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화려하고 향내 뿜뿜 하며 거창한 이름 가진 꽃과 풀들만큼이나 어느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사는 이름 모를 풀과 꽃이야말로 그 삶 자체가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에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나는 내 삶을 열심히 단단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런 작고 아담한 것들이 나름의 의미를 갖추고 삶의 활기를 더해 가도록 함께 가꿔 가는 일은 그래서 어려우면서도 소중한 일일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세상을 여러분과 함께 꿈꾸고 싶다.

연구자 강철웅 교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플라톤 인식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파르메니데스 단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 철학과에서 박사 논문 연구를, 케임브리지대 고전학부에서 기원전 1세기 아카데미 철학을 주제로 박사후 연수를 수행했다. 고대 희랍-라틴 고전의 번역과 연구에 매진하는 정암학당의 창립 멤버이자 케임브리지대 클레어홀 종신 멤버이며, 미 국무부 초청 풀브라이트 학자로 보스턴 칼리지 철학과에서 활동했다. 강릉원주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2023년 7월 현재 튀빙엔대 철학과에서 진지함과 유희, 관조와 실천, 플라톤의 고르기아스 수용 등을 화두로 안식년 연구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 『설득과 비판: 초기 희랍의 철학 담론 전통(2017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제29회 열암철학상), 『서양고대철학 1(공저)이 있고, 편역서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역), 『소피스트 단편 선집이 있으며, 역서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뤼시스, 『향연, 『법률 1, 2(공역), 『편지들(공역), 『미노스·사랑하는 사람들, 존 던의 『민주주의의 수수께끼(공역, 2016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다. 고대 희랍이 가꾼 문화 자산인 ‘진지한 유희’를 단초로 삼아 우리 담론 문화가 이분법과 배타성을 넘어 열린 자세와 균형을 찾는 데 일조하려 하며, 특히 역사 속에서 희미해진 ‘마이너’들의 목소리를 듣고 되살리려 애쓰고 있다.

그림 이야기

*1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자유로운 토론과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이 그저 상상과 이념으로만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와 관행으로 확립되는 일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일어난 현장이 바로 기원전 5세기 아테네다.

*2 데모크리토스와 프로타고라스 : 나뭇가지 묶는 기술을 드러낸 프로타고라스와 그걸 높이 산 데모크리토스의 만남 장면은 달리 보면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들에게 외면되는 소피스트가 마지막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에게 인정받는, 그래서 새로운 기술(즉, 소피스트술)의 장으로 전회하는 장면인 셈이다.

* 본 연구는 대우재단의 2013년 학술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2023년 1월에 57, 58번째 대우고전총서로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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