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아니 간달프, 질문 있는데요

법인 스님의 사사건건 02

얼마 전에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스님 선생님’이다. ‘실상사작은학교’의 교사가 된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이다. 그러니 요샛말로 투잡을 뛰고 있는 셈이다. 작은학교 선생님들이 내심 반겼는지 몰라도 실은 내가 자청하고 자원한 일자리다.

중학교 2학년까지 어렴풋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우체국 집배원이거나 시골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집배원과 선생님 위에 ‘시인’이 올려진 꿈이었다. 시 쓰는 우체국 아저씨, 시인 선생님, 은근 낭만적이고 멋지다 싶었다. 그러나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의 꿈은 접어야 했다. 이유인즉 나의 치명적 약점 때문이다. 음치와 박치, 그림치이니까.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은 만능이어야 했다. 시골 집배원을 왜 선망했을까? 우선은 일이 단순한 거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상쾌하게 달릴 수 있다.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집배원을 반겨주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또한 농번기에는 농군들이 주는 새참과 막걸리를 얻어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좋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시골 선생님과 집배원은 밤이나 일요일에 책 읽을 시간이 많으니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석가모니 선생님에게 덜미를 잡혀 금생에는 그 꿈도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꿈을 못 이룬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어느 모임에서 어릴 적 꿈을 포기했다고 하니 사람들이 말한다. “스님, 왜 꿈을 못 이루었다고 생각하세요? 스님은 스님이 된 순간부터 선생님 아니에요?” 불특정 다수에게 강의하고 법문을 하니 이미 교사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등단작이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지만, 문예지를 통해 시인 타이틀을 따지 않았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렇지만 중고생들에게 일회성 특강이 아닌 정규 과목을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틈틈히 있었다.

몇 해 전 순천의 ‘사랑 어린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김민해 목사가 대장으로 있는 대안학교이다. 그때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민해 목사에게 ‘님’자를 넣지 않고 ‘두더지’라며, 별명을 부르는 모습이 사뭇 부러웠다. 나도 만약 학교 선생님을 할 수 있다면 ‘스님’이 아닌 별명으로 불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염원이 씨앗이 된 것일까? 지금 나는 실상사작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어김없는 진리가 증명된 것이다. 실은 직접적 계기가 있었다. 고병권 선생의 책 《묵묵》을 통해, 노들 야학과 대안학교의 수업 내용을 접했다. 그때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우리 실상에 학교가 있지. 그리고 며칠 후 학교 선생으로 써달라고 청했다. 하여 서류 없이, 필기시험 없이, 면접 없이, 그저 신용으로 합격했다. 역시 지성이면 감천이다.

전북 남원 산내면 지리산 실상사작은학교 수업 모습. 사진 제공: 휴심정

좋은 일에는 입이 가벼운 내가 이 경사스러운 취직을 널리 자랑하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작은학교에서 불릴 별명을 공모했다. 그중에서 선택한 별명이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간달프’. 마음씨 좋고 인품 넉넉하고 지혜로운 마법사라 한다. 어감도 좋으니 머뭇거리지 않고 간달프가 되었다.

실상사 작은학교는 올해 개교 20년을 맞는다. 처음에는 절 경내에서, 컨테이너 건물 세 체에서 시작했다. 숙소는 동네 집을 얻었다. 선생님을 포함해 여섯 명이 가정을 이루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했다. 지금은 절 건너편 산 위에 자리 잡고 공부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언니네’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과정도 생겼다. 나는 언니네 반에서 수업을 한다. 모두 열네 명이다. 과목은 철학인데, 교재는 신영복 선생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강의》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이제 세 번째 수업을 진행했다.

불기 2564년, 단기 4353년, 서기 2020년, 양력 5월 6일, 음력 윤4월 14일 오전 9시 10분. 아! 드디어 은근 기다렸던 간달프 선생의 첫 수업이다. 이날은 내 인생 역사에 소중하게 기억되고 기록해야 할 날이 아닐는지…….

첫 수업 며칠 전부터 작은학교의 왕고참 김태훈 선생이 내게 예방주사를 놓았다. “스님, 너무 기대하시면 안 돼요, 상처받으시면 안 돼요.” 왜냐고 물으니, 아마도 잠을 못 이겨 조는 학생, 수업에 심드렁한 반응을 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니, 애정과 열정이 넘치는 스님이 모쪼록 상처받지 말라고 한다. 당장의 화두가 생긴 셈이다. 어떻게 한 명도 안 졸고 생생하게 깬 정신으로 강의에 집중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조주 선사의 ‘무자 화두’보다도 더 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여 나름대로 작전을 수립했다. 첫째, 졸음은 생리적인 반응이니 퇴치법도 생리적으로 처방해야 한다. 그래서? 수업하기 전에 맛과 향기가 좋은 녹차와 우롱차 등 각성 효과가 높은 고성능의 차를 듬뿍 주었다. 아울러 입맛 당기는 과자도 다식으로 곁들였다. 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나를 대하는 표정도 환하고 흔연하다. 역시 줄과 인기는 ‘먹이’로 세우는 것이 최고이다.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기 위해 출석부에 있는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을 보니 내가 아는 얼굴도, 이름도 있다. 순아는 내가 예전 실상사에 살 때 아마 서너 살 때부터 얼굴을 익혔던 아이다. 그 시절 순아는 참 새침 공주였는데, 이제 반듯하고 속 깊은 고등학생이 되어 나와 선생과 학생으로 만났다. 또 금강이를 여기서 이런 관계로 만나다니, 인연은 참 묘하다. 금강이 엄마 아빠와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금강이는 실상사에서 가까운 마천면에서 태어났다. 그 아이를 생후 백일 즈음에 본 것 같다. 그때 우연히 실상사에 들른 미황사 주지 스님과 함께 금강이 집을 방문했다. 아이가 얼마나 귀여웠겠는가? 아이 이름을 물었다. 순간 엄마 아빠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왜냐면 미황사 주지 스님 법명이 금강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웃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덕담을 많이 했다. “햐~ 금강이요. 녀석 볼수록 착하게 생겼네. 금강이는 참 복스러운 상이네. 금강아, 금강아, 부디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잘 크거라.” 당연히 금강 스님의 얼굴을 슬쩍 보면서 덕담을 했다. 그 후 금강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여름이면 금강 스님이 주지로 있는 미황사 어린이 한문학당을 성실하게 다녔다고 한다. 아마도 미황사에서 금강 스님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금강이를 보면서 ‘금강아, 금강아 놀자’라고 장난쳤을지도 모르겠다.

실상사작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법인 스님. 사진 제공: 휴심정

학생들 이름을 부르면 당사자는 일주일 동안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을 말하는 것으로 수업 인사를 한다. “비가 오고 난 다음 날 햇볕이 밝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키우는 닭들이 병아리를 낳아서 신비로운 감정이 들어 행복했습니다.” “외줄타기에 성공해서 하수용 샘이 약속했던 피자를 얻어먹어 기분이 짱이었습니다.” …… 나의 응답, “그래요, 우리가 행복할 거리는 별의별 게 다 있지요. 사소한 것들에 기쁨을 얻을 수 있고, 행복의 가짓수가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또 행복은 누구와 비교되지 않지요.”

이어 간단한 내 소개를 했다. 먼저 호칭은 ‘간달프’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했다. 내심 짐작을 해봤다. 정작 별명으로 부르라고 했지만, 과연 그렇게 부를까? ‘스님, 법인 스님, 스님 선생님, 간달프 선생님.’ 편하게 별명으로 부르라고 했지만 그래도 스님인데 어려워서 ‘스님, 아니면 간달프 선생님’이라고 부르겠지. 그러나 그건 순진한 상상이었다. 수업 중에 학생들 하시는 말씀, “저, 간달프. 질문이 있는데.” 참 스스럼없고 자연스럽다. 그래, 그렇지. 김민해 목사에게 학생들이 ‘두더지’라고 부르는 그 어감이고 정감이다. 십 대와 육십 대를 일 년 앞둔 나와의 소통 방식이 이렇게 발랄하니 절로 기분이 좋다. ‘맞먹다’는 말은 ‘맘먹다’는 의미와 통하는 것인가?

“자, 여러분. 왜 철학을 해야 하나요?” “철학은, 아니 우리의 인생은 답보다 더 먼저인 게 있습니다. 그것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은 왜 필요한가요?” 이렇게 첫 수업을 시작했다. 왜 이런 질문으로 첫 수업의 문을 열었느냐고 물으신다면? 왜냐고 묻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답을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건조하고, 답답하고, 불행한 삶을 부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http://www.hani.co.kr/arti/well/)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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