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은 끼리끼리, 군자는 함께 어울린다

법인 스님의 사사건건 03

실상사 작은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작은학교 두 번째 수업이다. 학생들과 가까워지게 위해 가벼운 질문을 한다.

간달프(나) :민이는 고향이 어디예요?
김 민 : 충청도입니다.
간달프 : 아! 그래요? 나도 아주 옛날에 계룡산에서 3년 살았는데, 어느 군에서 살았나요?
김 민 : 말해 줄 수 없어요.
간달프 : 아니 왜?
김 민 : 그건 개인 정보예요.

더 이상 묻지 마세요.이렇게 민이 덕분에 나는 한 번 크게 웃는다. 다른 학생들도 여러 의미를 담은 묘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이후 민이가 나에게 무엇을 물으면, “음~ 그것은 곤란한데, 내 개인 정보를 함부로 노출할 수 없거든”하며, 복수할 생각이다. 나는 평소 뒷심이 약하고 뒤끝이 성실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모르리라. 왜냐면, 이 또한 나의 개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작은학교의 철학 수업 교재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이다. 애들에게는 많이 어려울 수 있다. 첫 수업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부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입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 낯설고, 싫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기꺼이 가는 일입니다.” 내게 익숙하고, 쉽고, 좋아하는 길만 걸으려 하면 당장은 편안하겠지만, 성장과 성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교재로 선택한 책이 어렵더라도 무조건 파고들어 읽자고 했다. 다행스럽게 공감해 주었다. 예습은 간단하다. 다음 시간에 공부할 내용을 읽고, 자기의 마음을 울리는 구절에 밑줄을 그으면 된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각을 말하면 된다.

농부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는 실상사 작은학교 학생들 <한겨레 휴심정 제공>

화이부동(和而不同)… 아무리 신영복 선생의 해석과 해설을 중심으로 동양 고전을 공부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핵심 사상은 한문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아 먼저 ‘화이부동’을 꺼내었다. “자, 여러분 읽어 볼까요” 모든 학생들, 말이 없다. 왜냐면? 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하… 일단 이렇게 학생들 기를 죽이고 선생의 권위를 세운다. 대부분 학생이 화이부동을 읽지 못한다. 한두 학생이 겨우 세 번째 글자가 ‘아니 불’자인 것 같다고 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한자가 몇 자 정도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매우 당당하게 10자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한다. 뭐냐고 물었다. 본인의 이름 세 자, 그리고 나머지 일곱 자는 월화수목금토일, 이란다. 오! 관셈 보살.( 참조로 당황스런 상황이 생기면, 나는 ‘오마이 갓’ 대신 곡조를 넣어 ‘관셈 보살’한다. 이제는 내가 어이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학생들이 눈치 고, 재빨리 ‘관셈 보살’이라 한다. 나름 재미있는 모양이다.)

비록 ‘화이부동’ 한자는 못 읽지만 나의 대략적 설명을 듣고서, 이 뜻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설명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공자님이 자주 사용하는 ‘군자’는 요샛말로 하자면 훌륭한 인품을 갖춘 사람을 말합니다.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말씀하셨지요. 예를 들어 군자의 꽃밭은 여러 꽃들이 차별 없이 피어 있고, 소인의 꽃밭에는 자신만이 좋아하는 꽃들만 가꾸고 있는 것과 같지요. 부처님은 ‘화엄’(華嚴)이라고 하셨지요. 세계는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 존엄을 지키고 다른 존재들을 향해 존중하고 공경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말했습니다” 이어 학생들이 각자 의견을 말한다. 말은 어눌하지만 대략 ‘다양성’과 ‘획일성’의 차이를 알고 있다. 특별히 책을 많이 읽어서 학습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닌 것 같다. 외려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낀 앎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마음에 닿아 그은 밑줄과 나의 밑줄이 많이 겹친다. “어? 그대도 거기에 마음이 핀 모양이네, 나도 예전에 거기에 줄을 그었는데.” 애들의 얼굴이 순간 밝게 피어난다. 공감의 기쁨이란 게 이렇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강의> 175쪽.

세 번째 수업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 구절에 주목해 놀랐다. 이거는 문장을 해독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뜻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관계, 사랑, 앎, 공감의 맥락을 이해하고 소통하기가 어디 그리 만만하겠는가? 학생들은 다양한 비유와 경험을 바탕으로 잘 안다는 것은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정보의 습득과 앎의 차이를 어느 정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번지가 인(仁)에 관하여 질문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인이란 애인(愛人)이다. 이어서 지(知)에 대해 질문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지(知)란 지인(知人)이다.”』 -<강의>, 172쪽.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이렇게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사랑의 대상도 앎의 대상도 바로 ‘사람’이다. 사람과 사물을 향해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 나를 내세우지 않고 편견을 두지 않으면서 바라보고 귀를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친구와 사물을 잘 알 수 있다고 생각을 나누었다. 이렇게 공부가 술술 잘 풀릴 때 진도를 더 나가야 한다. 첫 수업 때 철학의 본뜻이 사랑과 지혜라고 말했음을 상기했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앎은 그저 정보에 지나지 않음을, 참다운 삶은 침착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함께해야 함을 논했다.

6월 3일 수요일 수업은 야외 수업이다. 야외 수업이라고 해서 한가한 소풍을 상상하면 안 된다. 실상사 공동체가 모든 대중이 모내기하는 날이다. 학생들, 스님들, 공동체 각 영역에 사는 사람들 포함 70여 명이 모였다. 오전 6시에 시작하여 오후 4시에 끝냈다. 사물놀이 풍악으로 길을 내고 흥을 돋우며 논으로 향했다. 이 날 나는 내심 내 숨은 실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왜냐면 손으로 벼싹을 심는 일은 내가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을 잊은 내 순전한 오판이었다. 작은학교 학생들이 나보다 훨씬 모을 잘 심었다. 농촌에서 성장한 나는 모를 많이 심었다. 모심는 기술 중에 하나가 서너 개 정도의 모를 찢어서 심는 일이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 일이 서툴고 힘들어 동작이 느릴 수밖에 없다. 예전에 실상사에 살 때는 그랬다. 초보자들이 두 포기 정도 심을 때 나를 비롯한 경험자들은 여덟 포기를 심는다. 올해 논에 모를 심어보니 원천적으로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호트 모’라고 해서 알맞은 개수로 모가 묶어져 있다. 모판에서 뽑아 그대로 심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내 실력을 자랑할 수 없게 되었다.

옆에서 보니 학생들이 잘 심기도 하려니와 노동이 몸에 익었다. 바다 갯벌의 흙 같은 바닥에 맨발을 담가 가며 오랜 시간 게으름 없이, 쉼 없이, 요령 피우지 않고 진득하게 일한다. 이는 평상시의 실력이다. 작은학교 수업 과목 중에 ‘자치 살림’이 있다. 논과 밭에서 노동하는 공부이다. 학교에 가보면 남녀 학생 모두 장화를 신고 삽과 괭이, 호미를 들고 일터로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참 이쁘고 대견하고 듬직하다. 한 학생은 은근 자랑한다. “간달프! 제가 일 중독에 걸릴 것 같아요.” 그 연유를 물으니 며칠 동안 작은학교 소유의 논에 일을 했는데,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오! 나무 노동보살마하살… 애들도 대견하지만 자식들을 작은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생각과 자신감이 더 존경스럽다. 사실 이런 결심을 하려면 보통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일을 힘들면 절로 노래를 부른다. 학생과 교사들도 논에서 일하며 절로 노래를 부른다. 일을 신나게 하려면 흥을 돋우어야 한다. 모 내는 날, 흥을 돋우는 이는 논 양쪽에서 줄을 잡고 옮기는 이의 몫이다. 나도 한 시간 정도 못줄 옮기는 일을 했다. 내 건너편에 있는 못줄 잡이는 전 편에 말했던, 아마 백일 때 보았던, 미황사 주지 스님과 동명인 허 금강군이다.

간달프:(줄을 들어 옮기고자) 어이 ~
허 금강: 어이~
(한 줄 옮기고)
허 금강: 어이~
간달프: 어이~
(이렇게 몇 줄을 옮기고)
허 금강: 어이~
간달프: 금강아~
허 금강: 네, 왜 그러세요?
간달프: 금강아, 너 왜 나에게 ‘어이’하면서 반말하니?
(허 금강, 대답을 못한다)
(다음 줄을 옮길 때다)
허 금강: 스~으~님!
간달프: 왜 부우울~러
허 금강: 줄을 옮기자고요

에고, 순진한 녀석. 나무 관셈보살….

6월 10일 수요일 수업은 <맹자> 두 번째이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논한다. 그나저나 한자를 모를 터이니 이를 어쩌나, 관셈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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