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스님의 사사건건 8

간달프의 편지

지리산 도보 순례길에서 실상사작은학교 아이들

그동안 모두들 안녕! 

나는 간달프 선생이다. 이제 더위도 기운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구나. 아침 저녁은 선선하고 밤에는 조금 춥기도 하다. 산에 밤도 제법 모양새를 잡아가고 있고 호두도 뜨거운 햇볕 아래 굵은 열매를 만들어가고 있다. 

작은 학교 고운 벗님들! 

재미 없고 힘들었을 ‘철학’ 수업 열심히 들어주어서 고마워. 눈까풀이 무겁게 누르는 졸음을 참아가며 간달프 말을 듣느라고 힘들었지? 그러나 어쩌랴, 이 모두가 통과해야 하는 인생 수업이니 말이다. 나무 관세음 보살~~ 

이제부터 여러분이 작성한 철학 수업 돌아보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을 8회 정도 한 것 같습니다. 애초에 계획에 크게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그 내용이 나의 뇌를 흔들고 심장을 울리면, 그게 바로 큰 공부의 소득일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 작은학교 언니네들 한분 한분의 소감을 감상해 볼까요. 

먼저 려강의 소감입니다. 려강은 “수업에서 배움도 많고 재미도 있었는데 왜 잠이 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군요. 하 하 하…. 당연하지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고 하잖아요. 간달프도 누군가의 강의를 들을 때는 많이 졸아요. 려강은 오래 전에 기록된 가르침이 현재에도 적용된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고전(古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고전은 비유하자면 ‘오래 된 거울’입니다. 거울을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늘 지금의 나를 비추고 있지요. 그런데 고전을 읽을 때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그 다음에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로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새롭게 해석하는 힘, 이게 바로 공부입니다. 공부란 그저 누가 말한대로, 책에 기록된 대로 듣거나 암기하는 것이 아니지요. 또 이렇게 말했군요. <강의> 책에서 “사랑할 때 진정으로 알 수 있다”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여러 사람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읽는 내가 확실하게 이해하고 가슴에 새기고 나의 체험이 되었다면, 이 말은 곧 내가 한 말과 같습니다. 

이나루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한자를 몰라 수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자는 단지 지식을 늘리는 차원에서 공부하기 보다, 고전을 제대로 읽기 위하여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이른바 기본적인 인문교양의 차원은 채워야 하겠지요. 나루는 공자의 ‘덕치(德治)’와 맹자의 ‘민본주의(民本主義)’에 관심이 기운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자본과 권력, 법률과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개개인의 마음 가짐과 바른 태도가 중요할 것입니다. 덕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요. 개개인의 인권과 행복을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맹자의 사상도 공자의 덕을 잇고 있습니다. 지금 실상사작은하교가 속한 실상사 공동체도 바로 개개인과 전체가 서로 존중 하고 존중 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중심 과제인 인권, 공정, 자유, 정의에 함께 너그럽고 사랑이 넘치는 ‘덕’의 윤리가 함께 할 때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할 것입니다.

다은이는 본인이 생각한 철학과 이번 간달프의 철학이 달랐다고 했군요. 아마 작년에는 서양 철학을 공부한 모양입니다. 서양 철학, 참 어렵지요. 복잡합니다. 서양 철학자들은 단순한 메시지를 어렵게 말하고 간단한 내용을 복잡하게 말하는 취미가 있나 봅니다. 저도 서양철학의 어떤 분야는 몹시 어려워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정도의 이름만 나오면 될 터인데 듣지도 못한 철학자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하지요. 관셈 보살~ 들뢰즈, 데리다, 라캉, 소쉬르…. 현상학, 구조주의, 해체 주의….. 여하튼 많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서양 철학을 공부할 기회가 온다면, 작은 학교에서 들은 기억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든든이는 “평소라면 읽을 수 없는 책을 읽게 되었다”라고 소감문 첫 줄에 말했군요. 그래요.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는 많은 사람이 읽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생각하며 사는 사람, 나는 다르게 살겠다는 사람,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겠다는 사람, 나만 잘 사는 삶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사람들만이 이 책을 읽습니다. 실로 이 책은 현대의 고전입니다. 간달프도 벌써 7번째 이 책을 읽었군요. 든든이는 이 책에서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선생님들의 말씀이 어려웠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어려웠지만 재미있다’는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쉬우니 재미있다, 혹은 내가 잘 하는 것이어서 재미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재미있다’는 사실도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봅시다. 든든이도 려강과 같이 ‘사랑과 이해는 같이 간다’는 구절이 마음에 남았군요. 

다음은 순아의 차례이군오. 참 감회가 새록새록합니다. 순아 나이 서너살 때부터 보았는데 이제 의젓한 학생의 모습으로 성장했군요. 순아는 <강의>라는 책을 절반 정도는 이해 못했다고 했는데, 이런… 그럼 엄청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전부를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그때 알 수 있는 부분을 깊이 생각하고, 나의 마음과 생활의 거울로 삼으면 됩니다. 공부는 지식을 많이 쌓는 일이 아닙니다. 많이 알기보다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 앎이 내 생활이 될 때 그걸 공부가 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학이불사즉망’ 하고 ‘사이불학즉태’이니라, 라는 <논어>의 구절을 순아는 외우고 있군요. 하 하 하… 이 구절은 첫 수업의 숙제인지라 긴장하고 성실하게 외웠던 모양입니다. 이 구절을 다시 상기해 봅시다.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쌓더라도 그 지식과 책의 내용을 이리저리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면 별로 소득이 없다는 뜻이지요. 또 반대로 이리저리 사색만 하고 체계적으로 학문을 하지 않고 논리를 세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주장과 생각은 매우 편협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식과 사색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현수는 ‘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명쾌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현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철학은 생각하는 힘이다. 내가 내린 결론이지만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것이 철학은 아닌 듯하다. 여러 가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보다 깊이 생각해 보고, 계속 고뇌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낸 철학이 아닐까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르게 살고자 한다면, 동일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야 하고, 그런 힘을 길러야 합니다. 생각하는 힘이 바로 철학입니다. 가령 ’행복‘을 하나의 정의와 개념으로 한정한다면 이는 철학하는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도 ’나의 행복은 이렇다‘라는 주체적인 사고와 입장, 태도를 가지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이고, 개념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수는 간달프에게 제법 무거운 질문을 던졌군요.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혹은 살아 숨쉬는 자체가 죄가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무엇일까요? 통상적으로 남에게 고통를 주는 행위를 죄라고 하지요. 또는 어떤 규칙을 어기는 일을 죄라고 합니다. 죄라는 말이 무겁다면 실수나 허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누가 실수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허물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나친 책임감, 도덕 감정, 완벽하려는 태도 등은 좋은 것 같지만 나와 이웃 모두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태도는 좋지만 자칫 완벽한 정직함을 추구할 때 그것을 ‘자기 억압’이라고 합니다. 

은범이는 수요일은 피곤해서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학생들도 여러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간달프가 차와 커피와 초코릿의 힘을 빌렸지요. 은범이는 아마 중국 역사에 관심이 있었나 봅니다. 중국 고전을 가지고 수업을 했는데, 중국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있기때문인지 공부에 끌렸다고 말했군요. ‘생각을 다르게 해본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했군요. 그렇지요. 다르게 생각해 보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은범이는 다음에는 삶과 연관된 책, 보다 쉬운 책을 교재로 공부했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허금강은 매우 간단하게 소감을 발표했군요. 많은 예화와 사례를 들어 강의해 주어서 이해가 편했다고 했군요. 간달프의 자비와 덕을 닮고 싶다니…. 애고, 관셈 보살~ 덕과 자비를 더 많이 쌓아라는 충고로 듣겠습니다. 가끔 깨달음을 얻게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말에서 울림을 받았는지 궁금하군요. 금강이는 철학 시간이 좀 길었으면 하는 바람을 주었습니다.

백수민, 철학하면 어려운 이미지였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고 소감을 전해왔네요. ‘가장 심오한 진리는 단순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 부처님이나 예수님, 그리고 역대 성현들은 말을 참 쉽게 했습니다.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에 관계 없이 대중들이 잘 이해하고 감동 받을 수 있게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후대에 연구하는 철학자들이 굉장히 어렵게 말을 해요. 그래서 철학은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철학자들의 뇌의 구조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철학은 늘 새롭게 생각하는 눈이고 힘입니다. 시인 폴 발레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대로 살 것인가? 생각하면서 살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사실 생각입니까? 장자는 참 재미있습니다. 많은 예화를 통해서 우리의 기존 관념과 습관에 깨뜨립니다. 상징, 비유, 조롱, 질타, 등을 통해서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웁니다. 중국에서 노자와 장자는 참선하는 불교, 그러니까 선종과 더불어 삶의 자유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수민이는 나중에 장자의 예화를 많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 이번에는 김민의 차례이군오. 철학이 민의 인생에 조금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군요.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게 바로 깨달음이예요.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런 생각이 바뀐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요. 자연스레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앓게 참된 앎은 나의 삶을 바꿉니다. 그러므로 ‘앎’과 ‘삶’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민이가 간달프에게 이런 부탁을 했네요. “ 스님이 괴롭힌다는 표현을 쓰실 때 그냥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 하 하… 명심하겠나이다. 

아린이는 중학교 시절 한자를 조금 배워서 수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책 읽기 숙제를 간달프가 내주었는데, 하는 날도 있었고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개 다 그렇습니다. 간달프는 학교 다닐 때 숙제 안하기로 1등, 학교 결석도 1등, 만화책 읽기도 1등, 교과서 외 다른 책 읽기도 1등, 선생님께 대들기도 1등을 차지하였습니다. 아, 그런데 수업 시간에 잠 자기는 1등을 못했습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아린이는 앞으로 질문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승희, <강의>를 꼬박 꼬박 읽은 적은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했군요. 정직한 고백이 마음에 듭니다. 관셈 보살~~ 성현들의 지혜를 함께 배우고 해석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으니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공부는 해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해(注解)’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에 자기의 견해를 다는 일입니다. 그럼 해석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것은 누군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자신의 삶, 혹은 우리 시대의 모습 등과 연결시켜 나름대로 자기 의견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승희는 철학이 어려웠지만 내 삶과 연결되는 것들이기에 마음에 다가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마직막, 제일 늦게 훤민이가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훤민이는 수업 만족도가 매우 높았나봅니다. 인상적이었던 책의 구절을 따로 필기할 정도로 마음에 다가왔던 모양입니다.그리고 간달프에 대해 매우 놓은 점수를 주었군요. 이리저리 설명을 잘 해주어 쉽게 이해되고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훤민이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질문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철학은 새롭게 보는 눈이고 힘입니다. 그런 눈과 힘을 얻으면 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 탄생합니다. 주체적인 인간은 세상의 이런저런 유행과 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철학은 주체, 자유, 사랑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훤민이가 아쉬움을 표했군요. 모둑가 함께 책을 열심히 읽고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이제 평을 모두 마칩니다. 여러분과 함께 공부를 하니 간달프도 많이 배웠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모두들 글을 쓰는 실력을 키웠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깊고 참신합니다. 그런데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생각, 말, 글은 하나입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을 가다듬고 깊이를 더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비법은 없습니다. 그거 많이 읽고, 관찰하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쓰는 일입니다. 

그럼, 남은 방학 시간 성실하고 재미있게 보내십시오. 

2020년 실상사 선우당에서 간달프 법인.

법인 스님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 한주 & 전 참여연대 대표 & 전 조계종 교육부장 & 실상사 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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