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스님의 사사건건 6

적막한 산중에선 무슨일을 하고 사는가

<한겨레 휴심정 제공>
<한겨레 휴심정 제공>

“스님, 지금 저희들과 차를 마시고 있는 시간 밖에서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칼끝이 뾰쪽한 말 한 마디. 진검 승부의 기운이 감지된다. 내가 즉각 답한다. “수시(隋時)- 그때 그때.” 

몇 해 전에 인문학 소양을 두루 갖추고 여러 종교의 공부 내공도 깊으신 지인이 차를 마시다가 무심한 듯 내게 던진 질문이다. 

더러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 배경을 짐작한다. 산사는 대개 한적한 곳이고, 번잡스런 일들이 거의 없으며, 때문에 외롭고 무료한 곳이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한적하고 일 없는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묻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속 사람들은 산중의 수행자들이 ‘별유천지비인간’의 세계인 듯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하늘 아래 평온과 자유가 거저 주어진 곳은 없다. 설령 완벽한 환경이 충족된 극락세계나 천당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그곳이 즐거움만이 늘 가득한 곳일 수가 없다. 왜 그런가? 삿된 생각과 헛된 욕구가 해소되지 않은 인간들의 견해와 욕구가 충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몸은 극락세계일지 몰라도 마음과 감정과 사건들이 갈등과 시비가 끊이지 않으니 어찌 즐거움의 극치인 극락일 수 있겠는가? 

견해와 욕구 충돌과 함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둠과 족쇄가 있다. 그것은 권태의 감정이다. 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하지 않으면 몸과 내면의 심리가 우울과 무기력으로 빠지는 그런 상태라 하겠다. 몸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기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세간의 벗들이 호기심을 갖는다. 적막한 산중에서 날마다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고독하고 무섭고 심심하지는 않는지. 그러나 산중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세계다. 사람들과 더불어 하는 여러 역할이 있다. 그리고 개인의 일상이 있다. 별유천지비인간의 경지는 도피와 회피의 세계가 아니다. 마음이 그 무엇에 휘둘리지 않고 평온과 기쁨이 흐르는 일상이다.

<한겨레 휴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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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사찰이 아닌 산중에 사는 재미 중에 하나는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이다. 달과 별, 바람과 구름, 물소리와 새소리, 꽃과 나무들과 사이 좋게 살아가는 관조와 합일의 기쁨이 있다. 

“휜 구름 쌓인 곳에 초가집이 세 칸인데 

앉고 눕고 쏘다녀도 저절로 한가롭네 

시냇물은 졸졸졸 반야를 속삭이고 

맑은 바람 달빛에 온몸이 서늘하다“ 

산길을 걷다가 문득 고려 후기 나옹 선사의 선시를 읆조린다. 마음이 절로 한가하다. 그런데 산중에 살아가고 있다는 조건만으로 누구나 이런 심정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누구나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대로 마음이 그 무엇에 매이고 휘둘린다면 비록 몸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있을지라도 흰 구름과 시냇물 소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세 칸 초가집이 초라하고 마음은 시끄럽고 무료하다. 결국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평온과 기쁨은 어떤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다. 또 어떤 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실상사에서 나의 소임이 있다. 그 외 시간에는 참선하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틈틈 몸을 쓰는 일을 한다. 공동체 사람들은 매일 아침 30분 도량 청소와 매주 수요일 오후 내내 농장 울력이 있다. 그 외에 몇 사람과 더불어 하는 몸 쓰는 일이 있는데, 소채와 산나물을 따서 공양간에 식재료를 주는 일이다. 또 산야초로 무얼 만드는 재미로 산중에 사는 멋과 맛을 즐긴다.

<한겨레 휴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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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신 분들은 농촌에 살아가는 풍경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좋아 일본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와 이를 차용한 임순례 감독의 한국 영화 모두를 몇 번이나 보았다. 가끔씩 보고 또 보아도 잔잔한 기쁨과 공감을 주는 영화이다. 작년 지리산에 깃들면서 나도 나름 이 영화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관조하는 자연 생활과 활용하는 자연 생활을 해보기 한 것이다. 

실상사 근처에는 식재료로 쓸 만한 것들이 지천이다. 그것도 농약을 하지 않는 곳이 많으니 천연 청정 건강한 재료들이다. 계절에 따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도 소홀할 수 없다. 그것들에게도 수시, 그때그때라는 말이 적용된다. 한가하면서도 세심한 관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한다. 

농장에서 나는 각종 소채는 우리 절 농감 소임을 맡고 있는 덕산 스님이 가꾸고 공급해 준다. 이 스님은 그야말로 농사가 곧 수행인 스님이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농장을 수행터로 삼는 분이다. 나는 산에 있는 취나물, 돗나물, 고사리 등을 채취한다. 늘 사는 대중과 오가는 손님이 많으니 가능한 많이 따서 공양간 보살님들에게 건넨다. 일용할 양식 수준으로 공급해야 한다. 

약용으로 쓸 산야초들도 적기에 거둬들여야 한다. 봄부터 지금 여름까지 풀과 과일들은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만물의 도움을 받아 자란 만물들을 거둔다. 

사월에는 민들레, 겨울을 견딘 월동춘채, 싱아, 화살나무, 마가목의 잎과 뿌리를 거둔다. 이어 오월에는 엄나무, 뽕나무, 소나무, 아카시아 차례가 된다. 유월에는 보리수(전라도에는 포리똥이라고 부른다), 개복숭아, 쇠비름, 방구라지, 황매의 잎과 뿌리와 열매를 거둔다. 그 중에서 굵은 민들레 뿌리를 통째로 먹었는데 마치 더덕의 향기와 흡사했다. 그야말로 풍성하고 풍족하다. 이어 여름과 가을에도 자연이 주는 은혜가 가득하리라. 이러니 현대판 ‘농부사시사’와 ‘농가월령가’를 누가 지어도 좋겠다. 나무 약초보살 마하살!

<한겨레 휴심정 제공>
<한겨레 휴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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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모아 실상사에 사시는, 이 분야에 실력과 열정이 넘치는 분이 식재료를 만들고 약을 만든다. 음식과 약은 근원이 동일하다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을 생각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생님도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자연물과 음식의 조화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산야초를 열거했지만 그리 쉽지가 않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자연물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자면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드는 일은 힘든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생각해 보시라. 보기에는 낭만적일 것 같지만 뜨거운 볕과 모진 바람과 벌레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많은 시간 몸을 써야 한다. 팔다리와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온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힘들이지 않고 그저 주어지는 것들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실제 삶은 편집된 영상으로 보는 그런 풍경이 아님을, 농촌에서 한달 동안만 살아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자연물을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들은 그 좋은 출발과 함께 장삿속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을 창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자연 감성과 마음의 초심과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이렇게 말했다. “ 장미 밭이 상업화 되면 두견새도 시인도 감동 시키지 못한다” 귀촌해서 이런 함정에 빠진 사람들은 더러 보았기 때문이다. 

무사도인(無事道人)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일 없이도 마음이 한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무위도식이 아니다. 어떤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이 없어도, 흔히 말하는 쓸모 있는 일과 쓸모 없는 일로 분별하여 편집적으로 집착하면서 살지 말라는 뜻이다. 그저 ‘오직 할 뿐’이다. 무슨 일을 해도 평온과 기쁨과 나눔이 없으면 그 일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노승이 30년 전 참선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선지식을 친견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 뿐이다.” 중국 송나라의”청원유신(靑源惟信) 선사의 말이다. 선사가 말한 ‘몸뚱이 쉴 곳’은 무엇인가? 마음이 대상을 바라볼 때 삿된 소견과 헛된 욕구에 휘둘리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 무심과 평온의 상태일 것이다.

<한겨레 휴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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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풀을 바라 보고 있으니 

풀이 내 눈으로 들어오고 

내 몸이 온통 풀빛으로 물든다 

나와 풀 사이에 경계 없고 시비 없으니 

나도 빛나고 풀도 빛난다. 

이 밖에 무엇이 있으랴!“ 

어설프게 옛 사람의 자취를 차용해 보았다.

법인 스님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 한주 & 전 참여연대 대표 & 전 조계종 교육부장 & 실상사 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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