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스님의 사사건건 5

산승의 방문 안은 이렇습니다

<한겨레 휴심정 제공>

출가 이후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방에 열쇠를 채우지 않는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는다. 이 둘은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방에 열쇠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유는, 먼저 산사의 방에 열쇠가 잠겨있는 풍경이 아름답지도 않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도둑이 내 방에 들어와 탐낼만한 물건이 있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소유로 삶의 기쁨을 누려야 할 수행자로서 떳떳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자는 ‘비움’으로 ‘충만’한 삶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때 적적하여 텔레비전을 사용할까 했는데 그만 마음을 접었다. 보는 시간을 절제할 자신도 없고, 이러면 세간 사람과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에서다. 텔레비전에 관해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홀로 사는 암자에 처음 온 분에게 차를 대접했는데, 그분이 대뜸 이렇게 말씀하신다. “스님, 오늘 처음 뵙는데 스님에게 일단 믿음이 갑니다” 다소 당황하여 그 연유를 물었다. 오자마다 암자 주위를 둘러보고 방안에 들어왔는데 텔레비전 시설이 보이지 않더란다. 그래서 믿음과 호감이 간다는 것이었다. 에구~ 관셈 보살!

오지에 사는 인디언들은 평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품이 스물다섯 가지면 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 이제부터 내 방안의 소유물을 공개한다. 방의 크기는 대략 8평 남짓하다. 가장 가짓 수가 많은 것은 책이다. 지금 방에는 책이 많지 않다. 작년 이사하면서 크게 정리했다. 이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만 두었다. 또 전자책을 이용한다. 예전에는 책을 안 읽더라도 일단 사 두어야만 안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책과 함께 옷이 있다. 내 소유물 중에서 죄송하고 후회되는 일이 옷이다. 옷의 종류와 가짓 수가 적정하지 않고 어지럽다. 상의 회색 조끼는 두 벌이면 적절한데 여섯 벌이 있다. 두루마기도 겨울 여름 봄가을 용도로 서너 벌이면 되는데 훨씬 많다. 아주 난감한 옷은 방한 패딩이다. 산중이 추울 거라 생각해 불자들이 가장 많이 주는 선물이 패딩이다. 여덟 벌 정도의 패딩을 이리저리 나누는 일도 만만하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지인이 와서 패딩 조끼를 선물한다.) 나무 관셈 보살… 이외 양말과 일반 상하의 옷도 필요 이상으로 많다. 한두 번 입거나 입지 않는 옷도 많다. 차분하지 않고 짜임새 없는 내 성격이 드러나 있다.

<한겨레 휴심정 제공>
<한겨레 휴심정 제공>

현재 제일 고가품은 아마 음향기기이고 그 다음이 컴퓨터일 것 같다. 음악을 듣는 스피커는 십여 년 전 절친한 지인이 선물한 것이다. 뭐 내 감성이 삭막하다고 기를 죽여 가며 사주었는데 대략 이백만 원 정도인 것 같다. 컴퓨터는 노트북과 함께 두 대가 있다. 내 소유물 중에서 가장 몸과 친숙하며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아! 고가품이 또 있다. 백이십만 원 정도의 돌침대를 사용하고 있다. 몸이 부실하여 여름에도 등이 따뜻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이를 알고 어느 지인이 사용하지 않는 돌침대가 있다고 해서 고맙게 받아쓰고 있다. 산중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가전제품이 있는데 제습기가 그것이다. 절을 옮겨 다닐 때마다 분신처럼 가지고 다닌다. 공기 좋은 산중에서 어인 제습기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산중 살이에는 필수품에 가깝다. 도심보다 습기가 자주 침범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사용하던 중고 승용차는 작년 실상사에 와서 공동체에 기증했다. 지금은 대중교통과 절의 공용차를 사용하고 있다. 개인 차를 처분하니 책 읽고 노동하고 산책할 시간이 많아졌다.

얼마 전, 이걸 살까 말까 며칠을 망설이다가 결국 구입한 물건이 있다. 이십이만 원에 지불하고 산 빈 백 소파라 불리는 안락 등받이 의자이다. 구입을 망설인 이유는 있었다. 물건을 살 때 세 가지 기준이 있다. 반드시 필요한가? 굳이 필요는 없는데 편리해서 사려는 것일까? 필요하지는 않는데 새롭고 좋아서 사려는 것인가? 이 중 가급적 반드시 필요한 것만을 사자고 다짐한다. 그런데 빈 백 소파는 반드시 필요해서 구입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편리하기 때문에 구입하려는 것인가. 선승이 화두 들 듯 궁리 고심 끝에 가급적 필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의자와 침대 사이에 빈 백 소파가 있어야 했다. 몸이 다소 피곤할 때, 의자에서 책을 읽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침대에 누우면 잠에 깊이 빠지기 쉽다. 독서와 휴식에 적절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용해보니 결정이 옳은 것 같다. 요새는 산승에게도 커피를 청하는 분들이 많아 구천팔백 원에 커피 분쇄기 하나, 삼만 이천 원에 더치커피 내리는 용구를 샀다. 맞춤형 서비스가 곧 현대판 보시라고 변명한다.

편리해서 산 것 중에 하나는 차 탕기이다. 녹차 외에 약용을 겸한 차를 다기 용구에 우려내기는 알맞지 않다. 그런데 차 탕기가 유용하기는 하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세속에서 수많은 가전제품이 창고에 잠을 주무시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냉장고는 조금 고심하다 들여놓지 않기로 했다. 삼십 미터만 걸으면 대중용 냉장고가 있는데 조금 편리하다고 소형이나마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소형 전기 청소기는 하루 정도 생각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방이 넓어서 힘들기 때문이 아니다. 내 방은 한 쪽 벽면이 온통 창이다. 그 틈새에 먼지와 벌레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빗자루와 걸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조금 몸을 사용하면 될 일을 기계의 도움을 받기는 싫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로봇 청소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 감각이라는 게 자기 합리화를 잘 하기 때문이다. 굳이 필요하지 않고, 현재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좋아서 사고 싶은 품목은 다기 종류다. 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멋있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차 관련 제품에서는 수시로 마음이 흔들린다.

<한겨레 휴심정 제공>
<한겨레 휴심정 제공>

청소를 말끔히 하고 방안을 살펴본다. 이제는 일상에서 사용할 소모품을 제외하고 새로 구입할 소유물은 없을 듯하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권태와 기호에 바탕하여 발생하는 소소한 욕망과 애착의 번뇌를 낮잡아 보면 큰코 다치기 쉽다.

현대사회에서 수행자의 소유물과 소비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문화가 발생한다. 바로 종교인과 신자의 관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자들의 선물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 때로는 나도 신자들의 과도한 보시에 당황한 적이 있다. 1970년대 초까지 비구 수행자가 시계를 차고 있으면 스님들끼리도 속스럽다고 수군대던 때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인데 이십 대 초반에 어느 불자에게 시계를 선물 받았다. 받고 보니 이걸 어쩌나! 척 보기에도 고가품이었다. 그것도 황금빛이 호화롭게 빛나는 시계다. 누가 보아도 삭발하고 회색 승복을 입은 젊은 수행자에게 어울릴 수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계는 당시 삼백만 원대에 해당하는 고급 제품이었다. 명백한 사치품에 해당했다. 신심이 깊고 돈이 많은 불자가 본인들의 소비 수준에서 그런 고급 명품을 선물한 것이다. 받고 나서 매우 곤혹스러웠다. 차마 황금빛 반짝반짝 빛나는 시계를 손목에 걸 수가 없어 서랍에 보관하다가 보시한 분이 오면 그때 사용하곤 했다. 평생 수갑을 찬적은 없어 그 기분을 모르지만 여하튼 당시에는 그건 마음을 묶는 족쇄였다. 불교만 그런가 해서 알아보니 이웃 동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신부와 목사님에게도 어울리지 않은 고가품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나무 관셈 보살…

이 지면을 빌어 신자들에게 부탁한다. 이른바 종교인들에게 선물을 줄 때는 깊이 숙고하기 바란다. 첫째, 선물(공양)을 주는 나의 의도는 순수한가? 둘째, 내가 선물을 드릴 상대는 선물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셋째, 선물 자체는 주고받는 이의 마음에 청정하고 소박한 기쁨을 만들어 주는가? 이른바 개념 없는 선물은 종교인을 망칠 수 있다. 적정하지 않은 선물이 낮고, 소박하고, 겸허하고, 평등하고, 세심하게 살피고, 최소한의 소유로 내면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종교인의 내면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겨레 휴심정 제공>
<한겨레 휴심정 제공>

농경사회를 넘어 산업화 사회로, 산업화 사회를 넘어 금융과 자본이 판치는 사회로, 정보와 디지털 사회로, 삶의 속도와 양은 매우 빠르고 넘쳐난다. 이제 대중의 소비는 손에 잡히는 물품을 넘어 디지털의 공간에서 생산하는 정보와 영상과 게임 등을 소비한다. 

나도 가끔은 인간의 예민한 기호를 자극하는. 기업의 ‘진부화 기술’과‘ 노후화 기술’의 유혹을 받고 있다. 오! 붓다여! 싫증 나니 사고 싶고, 새로운 것이어서 사고 싶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필요하지도 않은데 온갖 구실 붙여 사지 말게 하소서. 단지 좋아서 사지 말게 하옵소서. 편리와 취향이 나를 흔들지 말게 하옵소서… (여름을 맞아 좀 더 조용하고 세련된 모양의 선풍기를 사려다가 그만두었음을 고백한다.) .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관념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단순 소박한 삶이란, ‘나는 자연인이다’의 버전이 아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과 이웃, 더불어 사는 세계의 평온과 공존을 위한, 적정한 규모의 살림살이를 뜻한다. 존엄한 인간이 돈과 물건들에게 지배당하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 횡설수설을 거두고 타고르 시인의 <기탄잘리>을 낭독하며 단순 소박한 삶을 음미한다. 

나의 노래는 모든 장식을 떼어 냈습니다. 나의 노래는 자랑할 만한 옷과 치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장신구는 우리의 하나 됨을 방해합니다. 그것들은 당신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장신구 소리가 당신의 목소리를 지워 버릴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시인의 자만심은 당신 앞에 서면 부끄러워 모습을 감춥니다. 오, 최고의 시인이여, 당신의 발아래 나는 앉습니다. 나의 일생이 다만 소박하고 곧은 것이 되게 하소서. 당신이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갈대 피리와 같이.

법인 스님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 한주 & 전 참여연대 대표 & 전 조계종 교육부장 & 실상사 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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