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스님의 사사건건 12

다이아몬드 뒤엔 소년의 피눈물이 숨어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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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농장 운력은 다른 때보다 보람과 의미가 있었습니다. 겨울맞이 김장을 위해 무를 뽑고 고추밭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음식 나눔으로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감사를 올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농사짓고 함께 일을 하면서 몸으로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화엄경>에서는 ‘한 티끌에 우주의 삼라만상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매우 어렵고 심오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알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거두면서 이런 이치를 자연스레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어 일즉다(一卽多), 즉 하나 속에 여럿이 있다는 사례를 들어 주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먹고 있는 한 사발의 도토리묵에 흙과 물과 바람과 햇볕과 미생물과 작은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노력이 담겨있으니, 이게 바로 화엄경의 인드라망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보며 흐뭇해 하였습니다. 

농장 일을 마친 다음 날, 모처럼 시간이 넉넉하여 서고에서 책 한권을 뽑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애잔한 인정을 그린 영화가 아닌, 12살 소년병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처참한 역정을 고백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온몸이 떨렸습니다. 그건 분노와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향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의 연결망을, ‘밝고 아름답게’만 바라 봤던 나의 안일하고 천박한 사고와 시선이 부끄러웠습니다. 산중에서, 전원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삶의 어두운 연결망에 소홀했던 것입니다. 나는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만 바라본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동안 나의 눈은 숲과 햇볕과 바람과 이웃 사람들의 선한 웃음 쪽으로 치우치게 집중했던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된 그때···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라는 글이 책 표지에 선명합니다. 지은이는 이스마엘 베아. 책의 날개에 실려 있는 이스마엘은 이런 소년입니다. 

「1980년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다. 랩 음악과 힙합 댄스를 좋아하던 소년 이스마엘은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그길로-누구도 예상치 못했던-이스마엘과 친구들의 귀가 여행이 시작된다. 명분도 영문도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이스마엘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비는 소년병이 되어 있었다. 그날로 이스마엘과 그의 친구들은 세상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공감을 배워야 할 ‘어린 시절’을 피비린내 진동하는 광기의 현장에 모조리 빼앗겨버리고 만다.」 

이어 편집자는 말합니다. 이 책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고 기억하는 전 세계 30만 소년병들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자, 현대 전쟁의 얼굴을 숨김없이 보여 주는 책이라고. 이스마엘은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3년 동안 시달렸던 소년병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고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곳곳에서 소년병들의 실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의 저자 이스마엘의 고국은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입니다. 이스마엘과 그의 친구들이 소년병으로 끌려가 고통 받은 이유는 이곳에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 때문입니다. 시에라리온은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식민지였던 모든 나라가 독립 이후 그렇듯이 이 나라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정부에 맞선 반군이 생겨났습니다. 이들 반군들, 그리고 이웃 나라인 라이베리아는,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내전에 개입하고 참여했습니다. 맘몬 신의 주술에 걸린 그들은 오직 다이아몬드 때문에 어린 소년들을 납치하여 광산과 전쟁터로 몰아넣었습니다. 경전에서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은 생명을 죽이는 삼독(三毒)이라고 말한 이유를 실감하겠습니다. 

어린 소년들에 대한 어른 인간들의 폭력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 책의 개정판 서문에 실린, 분쟁지역 전문 PD 김영미 님의 글을 옮겨보겠습니다. 

「반군은 아이들을 강제로 전투 현장에 내몰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소년병’이라 부릅니다. 반군이 소년병을 만드는 가장 흔한 수법은 길거리에서 납치하는 겁니다. 또 한 마을로 들어가 ‘우리를 따라오지 않으면 너희 부모님을 죽이겠다’ 협박합니다. 부모님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반군을 따라나서 결국 소년병이 됩니다. 소년병으로 끌려간 아이들은 전투에서 총알받이가 되고, 짐을 나르거나 잔심부름을 합니다.」 

반군들은 두려움에 떠는 소년병들에게 마약을 주고 복종하게 만듭니다.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은 이제 이성을 잃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게 됩니다. 반군들은 또 소년병들에게 부녀자를 강간하도록 강요합니다. 마약, 살상, 강간으로 아이들의 심성과 삶은 폐허가 됩니다. 지옥이 사후에 있지 않습니다. 탐진치 삼독의 현장이 지옥입니다. 다이아몬드를 향한 탐욕,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한 증오와 폭력, 다이아몬드가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무지의 현장이 지옥입니다. 

수많은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보석’이 될 수 없습니다. 빛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없습니다. 잔인한 광기의 빛일 뿐입니다. 물질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진실하고 순수한 의도를 저버리고, 불순하고 탐욕스러운 의도로 바라 볼 때 보석은 이미 아름답지도 귀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김영미 님의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케마시 인근 광산에서 만난 어떤 아이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 돌은 어디에 쓰이는 것인가요?” 이렇게요. “결혼할 때 신부들이 끼는 반지가 된단다. 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을 이 돌로 하는 것이 서양의 풍습이야” 저는 대답했습니다. 소녀는 다시 말했죠. “세상에! 이 돌은 피가 묻은 거예요. 이 돌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우리 부족은 이 돌을 저주의 물건이라고 불러요”」 

그렇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인연(因緣), 연기(緣起)라고 합니다.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고, 다른 것들의 도움을 받아 성립하고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논서에서는 이런 존재의 연결망을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정연기(淨緣起)와 염연기(染緣起)입니다. 연결망의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을 말합니다.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가 바로 어둠의 연기입니다. 겉으로 보면, 여러 사정 모르고 보면, 시에라리온의 이 보석은 아름다운 빛을 내뿜는 황홀한 보석입니다. 보기만 해도, 상상만 해도, 가슴 설레이고 선망하게 하는 보석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과 그 친구들, 수많은 소년병들, 전쟁터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생각합니다. 이 다이아몬드에는 이들의 한과 설움과 절규와 피눈물과 비명이 들어있습니다. 

이 시에라리온의 소년병 사연을 듣고 ‘한 티끌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화엄경>의 이치가 오늘은 무겁고 고통스럽습니다. ‘하나가 곧 여럿’이다, 라는 관계의 연결망은, 그동안 내게는 주로 긍정과 고마움을 안겨주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여정을 생각하면 이 관계의 연결망은 그지없는 어둠이고 고통입니다. 세상을 긍정하고 감사하기만한 허물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 속에 여럿이 있다’면, 그 ‘여럿’이 움직이면서 단단한 부조리와 악행에 균열을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럿이 참여하지 않으면 ‘하나’가 성립하거나 작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를 행동으로 옮긴 이들이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에라리온에서 불법 채취되거나 반군들이 몰래 파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사지 않는 제도를 마련했다는 사실, 그리고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결혼 예물로 다이아몬드를 주고 받지 않는 운동, 바로 이런 실천이 불순한 관계의 연결망을 해체하는 고귀한 행위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죄가 없는데 오직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인해 저주의 돌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인해 원망과 저주의 시선을 받았던 풀이 있습니다. 바로, 차(茶)입니다. 

타고르가 말했듯이 인간의 장삿속이 개입하면 어떤 꽃과 풀도 향기를 낼 수 없습니다. 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녹차가 시에라리온의 보석과 같은 저주의 풀이 된 역사가 있었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된 1773년 12월 16일의 보스톤 차 사건은 잘 아실 겁니다. 차에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고 강제 공납을 시킨 역사는 동아시아에서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럴 때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힘없는 민중입니다. 고려 시대에도 그런 역사가 있었나 봅니다. 백운 거사 이규보는 차를 애호하여 차에 대한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우리 생에 무엇이 있는가/오직 차 마시고 술 마시는 일이라네/ 예부터 지금까지 풍류는 이로부터 비롯 되었네‘라는 시는 오늘날도 차시의 절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도 차를 진상하는 민중의 고통이 못내 가슴 아팠나 봅니다. 그의 시 한 편 보겠습니다. 

<전략>… 

이어서 화계에서 차 따던 일 논하였으니 

관에서 감독하여 늙은이와 어린아이까지 징발하였네 

험준한 산중에서 간신히 따 모아 

머나먼 서울에 등짐 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끊는 고혈이니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얻은 것이라. 

<중략>… 

일천 가지 망가뜨려 한 모금 차 마련했으니 

이 이치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이없구나 

그대가 다른 날 간관(諫官)이 되거든 

내 시의 은밀한 뜻 부디 기억하게나 

산림과 들판 불살라 차의 공납을 금한다면 

남녘 백성들 편히 쉼이 이로부터 시작되리 

 

그렇습니다. 청경 산수에서 밝은 달과 더불어 시냇물과 솔바람 소리 들어가며 고담준론을 나누는 차 한 잔에는, 이렇게 가난한 민중들의 등이 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당시 화개골의 백성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저 놈의 차나무는 어이 하여 이 고장에 나서 우리 등골을 다 빼 먹노?” 

블러드 다이아몬드, 블러드 녹차! 

밝고, 아름답고, 긍정적인 삶을 조심해야겠습니다.

다동이가 어떤 연유로 입산하여 불문에 인연을 맺었는지를 말해야겠다. 다동이는 출생 이후 에는 서울에서 자랐다. 초대 견주, 즉 다동이 엄마는 ‘이루’라는 별호로 불리는 정진단 선생이다. 지금은 서울 정독 독서실 근처에서 향과 차를 공부하고 문하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다동이는 이루 선생과 그분의 친정어머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아마도 집안에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배려해서 다동이를 데려와 키운 것이다. 다동이는 내가 붙인 이름이다. 서울에 있는 다동이를 대략 한 살부터 봤는데, 그때는 ‘투호우’라고 불렀다.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 뜻을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최근 물어봤는데 우리 말로 옮기면 ‘토호’라고 한다. 헐! 우리가 역사에서 부정적으로 읽은 토호 세력할 때 그 토호(土豪)란다. 지금 중국 본토에서는 신흥 재벌을 뜻한다고 한다. 관셈 보살 ~.. 참고로 이루 선생, 즉 다동이 첫 엄마는 한족 출신의 중국 국적을 가졌다. 다동과 토호, 참 안 어울리는 이름이다. 토호, ‘돈’에서 이제는 다동, ‘차’로 삶의 방향을 바꿨다. 하하하.. 

2년 넘게 이루 선생과 그 어머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투호우의 견생에 시련이 왔다. 집에서 “아이고~ 이쁜 내 강아쥐”하고 키우던 할머니가 돌연 몸이 좋지 않아 더 이상 산책과 운동을 시킬 수가 없었다. 또 대형견인지라 날로 몸집이 불어났다. 이 큰 놈이 하루 종일 집과 가게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있고 누워지내니 살맛을 잃어갔다. 점점 몸은 시들어가고 생기를 잃어갔다. 우울증 비슷한 증세가 왔다. 그래서 응급 상황은 넘겨보고자 내 살던 암자,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입산했다. 아마 그 때 투후우는 수도할 발심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땅끝 일지암까지 온 그날, 대략 눈치를 챈 느낌이었다. 나에게 엄청 애교를 부리고 재롱을 떨었다. 아마 그의 운명을 감지한 모양이다. 이루 선생과 일행들은 일지암에서 하룻 밤을 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를 어쩌나! 이루 선생이 잠에서 일어나 마루 문을 열고 나오니 투호우가 밤새 엄마의 신발 앞을 지키고 있다가 앞의 두 발을 들어 정신없이 안겼다. 이별을 강하게 예감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들은 애절하게 아련한 이별을 했다. 

그로부터 투호우는 다동으로 이름을 바꿔 두륜산에 입산하고 일지암에서 수행했다. 차의 성지여서 차 다(茶), 아이 동(童), 다동으로 견생 2막을 열었다. 참조로 녹차를 우려 주면 잘 마시지는 않는다. 다동이 엄마가 가고 난 뒤 은근 걱정을 했다. 이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않고 시름에 빠지면 어찌하나? 혹시 그 머 나면 천리 길을 걸어서 주인 할머니를 찾아왔다던 진돗개와 같이 나 몰래 하산하여, 엄마 찾아 서울 천리하면 어찌하나? 한밤중에 엄마가 그리워 목을 놓아 서럽게 울면 어찌하나? 그러나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다동이는 생기 충천하며 잘 먹고 잘 놀고 사람을 잘 따랐다. 서울에서 운동 부족으로 오른 편 뒷 다리가 눈에 띄게 불안했는데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자식, 그래도 한 사흘이라도 슬픈 척이라도 하지… 관셈 보살~ 

일지암은 해발 5백 미터 높이 상봉에 있다. 마당은 다소 넓지만 다동이가 활달하게 운동하기에는 부족하다. 녀석이 산책은 좋아하는 데 등산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고 SUV에 태우고 평탄한 길을 산책한다. 대흥사 십리 길 숲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동이는 열린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불어오는 바람을 즐긴다. 뜻밖의 개를 보고 사람들은 여지없이 놀란다. “우아~ 대박!” 환호하며 사진 찍는다. 사람들의 인기를 다동이가 은근 즐기는 것 같다. 정말이지 대박 아닌 개박! 이 아닐 수 없다.

작년 8월 내 거처를 지금의 실상사로 옮겼는데, 이곳을 다동이는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실상사는 다른 산사와는 달리 논밭이 둘러싸인 평지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 산책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두 생물이다. 생물은 움직여야 하고, 움직일 때 생명이다. 생동할 때 생명의 기운은 순조롭다. 그러므로 생명의 평화는 순조로운 움직임에서 시작한다. 산책은 재미있다. 밝은 햇살 받으며 산과 구름을 보며 산길과 둑 길을 걷는 맛이 좋다. 

이제 다동이는 실상사가 있는 산내면 사람들에게 인기 스타가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오, 안녕! 네가 다동이구나. 반가워.”라고 말을 건넨다. 동네 사람들에게 스님이 키우는 개로 화제가 되고 있다. 반려동물 전성시대이기는 하다. 녀석이 워낙 덩치가 커서 거의 송아지 수준인데도 사람들이 레트리버인줄 알고 무서워하지 않는다. 특히 어린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일요일 어린이 법회에 온 초딩들은 어김없이 내 방 앞까지 와서 쓰다듬고 같이 논다. 5학년 연우는, 내가 사람 나이로 따지면 다동이가 오빠라고 했더니, 꼬박 ‘다동이 오빠’라고 부른다. 연우는 예능으로 말하면 다큐로 받아들이는 정직하고 순진한 아이다. 

존재의 관계라는 것이 참 묘하다. 처음에는 내가 다동이 체력 강화 코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내가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런데 다동이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서 몸이 힘들어도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산책해야 한다. 내가 다동이를 끌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아니다. 다동이가 나를 끌고 가고 있다. 어느덧 다동이가 나를 길들이고 있다. 다동이는 산책길에서 꽃과 풀 향기를 맡기 좋아한다. 아마도 첫 엄마가 침향 전문가라서 그런가 보다. 풀꽃 냄새를 충분히 음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밖에서 보면 내가 갑이고 다동이가 을인 것 같지만 내실을 보면 정반대이다.

다동이는 절의 수행견으로 부족함이 없다. 오계(五戒)를 철저하게 지킨다. 첫째, 계율이 불살생이다. 천사견이라는 별명답게 다른 생물을 죽이거나 물지 않는다. 둘째,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가끔은 농장의 음식물 쓰레기장을 기웃거리기는 하지만 주지 않는 물건을 가져 오지는 않는다.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다. 수컷인데 앞의 인간 엄마가 중성화 수술을 해주었다고 하니 본의 아니게 평생 청정 독신으로 사실 것이다.(이 부분은 다동이에게 미안하다). 

또 거짓말도 하지 않고 술도 드시지 않으니 수행견으로 부족함이 없다. 또 공동체 운력에도 꼬박 참석한다. 대중들이 밭에서 일할 때 다동이는 흙바닥에 누워 일하는 풍경을 감상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실상사 농장 근로감독관’이다. 이러니 절의 대중으로서 결격 사유가 없다. 나와 더불어 수행하는 도반(道伴)으로 자질과 품성이 부족함이 없다. 나무 다동보살 마하살! 내가 다동이를 온전하고 고귀한 생명체로 바라보니 팔정도 수행의 첫째 덕목인 정견(正見) 수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동이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경내에 세워진 황룡사 탑 넓이 만큼의 목탑 터 둘레를 화두를 들거나 염불하며 걷는다. 한 시간 이상을 그렇게 걸어도 다동이는 묵묵하게 따라 걷는다. 실로 길위의 벗, 도반(道伴)이 아닐 수 없다. 또 녀석의 표정과 건강을 살피며 기쁨을 주어야 하니 보시바라밀이 절로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마음을 나누는 동행자로서 반려견을 생각하니 그 옛날 통일 신라 시대 김교각(696~794) 스님이 떠오른다. 지금도 중국에서 지장 보살의 후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데, 김지장(金地藏) 스님으로 불리기도 한다. 왕자 출신인 스님은 719년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수행하고 대중을 교화했다. 지금도 김지장 스님의 썩지 않는 육신을 존상으로 모시고 있는 구화산 절의 벽화에는 스님과 함께 빠짐없이 개가 함께 하고 있다. 바닷길로 유학을 갈 때 신라의 개를 데리고 간 것이다. 개의 이름은 선청(善聽)이라고 한다. 하여 오늘날에도 경북 경산에서는 선청을 삽살개라고 하고, 경주에서는 사냥개인 동경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이러니 개도 줄을 잘 서야 후세까지 유명세를 탄다. 

본디 절에서는 개를 키우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금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날 타이나 미얀마 등 남방 지역의 절에는 개가 많다. 절이 일종의 유기견 보호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문화재 지킴이로 개들이 함께하고 있다. 

전생의 어떤 지중한 인연으로 나와 인연을 맺은 다동! 내가 스스로 정한 몇 가지 다짐이 있다. 생각과 감정이 온전한 생명체로 바라보고, 다동이의 마음으로 다동이를 바라보고, 다동이의 건강과 기쁨을 위해 함께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동이가 나이를 먹어 병들고 기운이 없을 때에 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 반려동물을 대할 때, 어리고 귀엽고 건강할 때만 사랑하고, 나이 먹고 시들하면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다짐을 굳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동이를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항상하지 않고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법칙, 하여 인간의 생로병사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때 고뇌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듯이, 언젠가는 다동이와도 금생에는 이별할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하여 집착 없는 사랑이어야 한다. 

이 글을 마치려는 지금, 가을볕이 좋으니 산책하자고 다동이가 문을 두드린다. 그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내가 너를 어찌해보랴. 햇볕 좋으니 너도 좋고 나도 좋다. 나가자~

법인 스님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 한주 & 전 참여연대 대표 & 전 조계종 교육부장 & 실상사 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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