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이 책의 문제의식이 싹튼 시기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2002/3년 무렵이었다. 당시에 나는 이른바 ‘소크라테스적 대화’로 알려진 플라톤의 초기 작품들에 나타난 극적인 요소들, 특히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들이 문답 과정에서 보인 감정적 반응들의 철학적 기능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읽어나갈 때마다 종종 필자의 눈에 밟혔던 모습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대화 상대자를 둘러싸고 있었던 청중의 존재였다. 어떤 때 그들은 그저 익명의 청중들로서 마치 대화의 배경처럼 간단히 언급되고 지나가지만, 또 어떤 때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출신이 제법 구체적으로 거론되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때 그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대화에 개입함으로써 논변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나는 플라톤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대화상대자 이외에 굳이 청중을 비롯하여 제3의 인물들을 공들여 다룬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한때 비극시인을 꿈꾸기도 했던 저자가 자신의 문재(文才)를 과시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고,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대화하던 모습을 가급적 충실히 재현하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으며, 혹은 어떤 철학적 교훈이라든가, 경쟁 학파에 대한 비판을 암시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사실 플라톤이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한, 이 모든 생각들은 말 그대로 짐작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소크라테스가 살아생전에 그를 열광적으로 따랐던 많은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적이고 명민했으며 스승 못지않게 비판적이고 반골 기질이 강한 이들로서, 그들 중 다수는 스승의 뒤를 이어 철학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강한 인상을 줌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그들이 소크라테스라는 한 명의 스승에게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며 다양한 입장을 가진 철학자들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철학자들은 플라톤과 크세노폰이었지만, 이들 이외에도 누군가는 스승의 검박한 삶과 덕의 실천을 철학의 모델로 삼았는가 하면(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와 견유들), 다른 누군가는 스승의 삶에서 쾌락의 노예가 아닌 주인의 모습을 보았으며(아리스티포스와 퀴레네학파), 또 어떤 이들은 스승이 행했던 철학적 대화와 탐문의 방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다(메가라학파와 변증술학파). 비록 플라톤과 크세노폰 이외에 다른 철학자들의 저술들은 모두 소실되고 단편들만이 남아있지만, 필자는 언젠가 그들이 펼쳤던 사유의 흔적을 추적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 약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이 책은 그 다짐의 첫 번째 결과이다.
연구를 하면서 발견한 것들
다른 소크라테스주의자들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특히나 메가라학파를 연구할 때 가장 신경 쓰이고 또 힘든 부분은 바로 연구 자료의 불충분함과 불확실성이라 하겠다. 메가라 철학자들의 저술은 모두 소실되었기에, 그들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동시대나 후대의 증언에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불충분함은 오늘날 남아있는 증언들이 메가라학파의 철학적 사유를 온전히 파악하기에 턱없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또한 불확실성은 그나마 남은 증언들을 읽더라도 그 내용이 정말로 메가라 철학을 의미하는지가 확실치 않다는 데 있다.
이렇듯 연구 자료의 불충분함과 불확실성 때문에 메가라학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해당 철학자들의 저술들에 집중하며 숨은 논변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메가라학파를 다루기 위해서는 해당 단편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와 이전 시대의 저술들과 자료들을 곁에 놓고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메가라학파가 활동했던 서기전 4세기와 3세기는 그리스 지성사에서 이른바 고전기가 끝나고 헬레니즘으로 접어드는 시기로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메가라학파 이외의 다양한 소크라테스주의자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로 대결하고 논쟁을 벌였으며, 그 속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상대방의 관점과 개념들을 서슴없이 가져다 사용하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있는 메가라학 철학의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동시대와 후대 철학자들의 증언과 비판에 대한 비교, 검토가 필수적이라 하겠다.

소크라테스주의 전통에 관한 한결 더 포괄적인 연구를 기대하며...
사실 이러한 연구 조건은 비단 메가라학파뿐만 아니라, 견유학파나 퀴레네학파를 비롯하여 당시에 개별적으로 활동했던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데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들에 관한 연구 자료들 역시 메가라학파 못지않게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반면, 이들이 서로 간의 대결과 참조를 통해 주고받았던 영향과 이론적 의존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사료의 빈 부분들에 대한 개연적인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았을 때, 메가라학파에 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다른 학파들과 철학자들 전반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관심을 촉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였던 뤽 브리송(Luc Brisson) 선생님은 소크라테스주의자들 중 하나인 견유학파를 연구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견유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일화들은 대부분 논리적인 정합성도, 역사적 개연성도 결여되어 있으며, 그 내용 역시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있기에, 하나하나의 증언들에서는 별다른 철학적 의미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무가치한 증언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그 안에는 일정한 사유의 흐름 내지는 경향 같은 것이 보인다. 그것이 개별 철학자의 사상인지 아니면 학파 전체의 입장인지, 이론적 정체성이나 사유의 경계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그런 흐름이나 경향이야말로 견유들이 동시대의 철학자들과 대결하는 속에서 빚어낸 고민과 사유의 흔적이라고 추측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철학의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특히나 소크라테스주의 전통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학파들과 철학자들에 대한 한결 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비교 연구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몇몇 개별 학파나 철학자들의 흔적을 쫓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철학자들이 공유했던 문제의식과 철학적 담론들을 보다 풍부하게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쪼록 『메가라학파』가 다양한 소크라테스주의자들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연구자 김유석 교수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파리1팡테옹소르본대학교에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사)정암학당 연구원이자 대학교육협의회 학술연구교수로 활동하면서 플라톤주의 전통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번역으로는 『스토아주의』(2016)와 『티마이오스』(2019) 등이 있고, 저서로는 『서양고대철학』 I, II(2013/2016), 『플라톤의 그리스문화 읽기』(2020)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아이아스, 오뒷세우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안티스테네스의 시범 연설 연구」(2015), 「크세노폰의 엥크라테이아에 관하여」(2016), 「메가라학파의 변증술 연구」(2017), 「안티스테네스의 단편에 전개된 소크라테스주의」(2017), 「안티스테네스와 반플라톤주의의 전통」(2019), 「견유 디오게네스의 수련에 관하여」(2021) 등이 있다.
* 본 연구는 대우재단의 2016년 학술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연구는 2017년에 시작되어 5년 여간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물은 2022년 5월에 636번째 대우학술총서로 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