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9

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내게 주었다

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9: 식물의 향과 맛

싸리꽃

얼마 전 불편당엔 자연요리를 하고 싶어하는 셰프 한 사람이 찾아왔다. 야생의 숲과 들에서 재료를 구해 요리하기를 즐기는, 요즘엔 보기 드문 젊은 셰프였다. 생계 때문에 부득이 한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야생초 요리라고. 우리는 아름다운 뜻을 품고 살아가는 그 젊은 셰프 K를 환대했다. 지난해 여름 강가에서 채취한 차풀차를 끓여 대접한 뒤 내가 사는 마을의 아름다운 둘레길을 보여주고 싶어 천천히 함께 걸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둘레길을 걷다가 둘레길 끝자락에 인접한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갔다. 얼마 오르지 않아 녹음으로 빽빽이 우거진 여름 숲이 나타났다. 등산이 목적이 아닌 터, 우리는 토끼나 오소리나 다닐 법한 오솔길을 걸으며 헐겁고 느슨한 숲의 시간을 즐겼다.

여름 숲에는 하얀 꽃등을 밝힌 초롱꽃, 바위취, 사위질빵, 함박꽃, 매발톱, 꿀풀, 개다리덩굴, 노랑꽃창포 등 숱한 꽃들이 우리를 반겼다. 셰프 K는 꽃을 매우 좋아했다. 각종 꽃들이 나타날 때마다 허리를 구부려 코를 대고 큼큼 향기를 맡았다. 세상에 꽃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있던가. 그렇다. “꽃들은 자신이 내뿜는 향기로 자신의 의사를 세상에 전달하고, 인간의 말이나 호흡보다는 좀 더 즐거운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알리는 것이 아닐까?”(피터 톰킨스, <식물의 정신세계>) 

셰프 K가 앞장을 서고 내가 뒤를 따라가는데, 그는 벌나비처럼 숱한 꽃들이 내뿜는 향기를 즐겼다. 꽃향기에 반한 듯 연신 와우〜와우〜 경탄까지 토해냈다. 무릇 요리의 절반은 후각이 담당한다고 했던가. 마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셰프 K처럼 예민한 후각으로 채소나 과일을 고르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대개는 식물의 향보다는 번지르르한 겉모양만 보고 식품을 고른다.

고진하 목사시인의 원주 집 인근 둘레길에서 야생초를 채취하고 있는 부인 권포근 야생초요리연구가

“이보게, 자넨 후각이 매우 발달한 모양이야!” 

“아, 그런가요, 평소 저는 요리 재료를 구할 때 향부터 먼저 맡아봅니다.” 

“왜 향부터 맡아보나?” 

“좋은 식재료는 강한 향을 품고 있기 때문이죠.” 

나는 셰프 K가 하는 얘기가 맘에 들어 거듭 질문을 던졌다, 

“강한 항기를 품고 있으면 왜 좋은 식재료라는 건가?” 

“채소나 과일의 향이 강하면 영양가가 풍부합니다. 사실 이건 영양학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그가 하는 얘기를 듣자니, 문득 몇 년 전에 보았던 <맛의 배신>이란 EBS 다큐가 떠올랐다. 식물 본연의 향과 맛을 잃어버리고 가짜 맛이 판을 치는 오늘의 먹거리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였는데, 특히 시금치와 관련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화면에는 먼저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시금치밭을 보여주고, 다음 화면엔 포항 바닷가 노지에서 자라는 시금치밭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각 자란 시금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두 명의 전문 셰프에게 어떤 것이 비닐하우스 시금치이며 어떤 것이 노지 시금치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했다. 두 셰프는 시금치를 손에 들고 코로 냄새부터 맡더니 정확하게 비닐하우스 시금치와 노지 시금치를 구분해 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시금치는 향이 약하고 노지 시금치는 향이 강하다고. 

어디 시금치뿐이겠는가.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모든 채소와 과일들은 재배 기간이 짧고 수확량 중심으로 키우다 보니 풍미가 떨어진다. 다수확을 위해 엄청난 퇴비와 비료를 써서 외양만 그럴 듯하게 만들려다 보니 향과 맛이 떨어지는 것. 품종개량과 대량재배를 통해 우리는 식물의 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향이 사라진 식물들은 영양가가 현저히 떨어진다.

서로 죽이 잘 맞아 이런저런 얘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산을 오르던 우리는 싸리꽃 군락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예전엔 산에 흔하게 피던 꽃인데 요즘은 보기 드문 꽃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턴가 소나무 외의 식물들을 모두 잡목으로 취급해 다 베어버린 탓이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빚어진 우리 산림(山林)의 뼈아픈 현실이다. 

셰프 K는 싸리나무 앞에 서서 꽃향기를 맡느라 싸리나무 곁을 떠날 줄 모른다, 싸리꽃은 뜨거운 여름볕을 받아 피는 꽃이지만, 사위질빵이나 인동꽃처럼 향기가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다. 사위질빵과 인동꽃은 멀리서도 그 짙은 향을 맡을 수 있으나 싸리꽃은 가까이 다가가 코를 대야 향을 느낄 수 있다. 회초리로 썼던 그 단단한 성질에 비해 싸리꽃의 은은한 꽃향기는 동글동글한 잎을 지닌 싸리나무의 내면에서 나오는 건 아닐는지. 

“정말 은은하면서도 매혹적인 향이네요. 오늘 싸리꽃 좀 뜯어가도 되겠죠?” 

나는 셰프 K의 질문을 듣고 나니 문득 인디언들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사냥을 할 때 먼저 대자연의 정령에게 허락을 구하고 난 뒤 표적을 향해 화살을 당긴다고 했다. 

“나한테 묻지 말고 싸리나무한테 허락을 구하게나!” 

내가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셰프 K는 정말 허락을 구하려는 듯 잠깐 눈을 감고 뭐라뭐라 중얼거리더니 보랏빛 싸리꽃과 잎을 훑어 비닐봉지에 담았다. 나는 셰프 K에게 그걸 왜 뜯어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산을 내려와 헤어진 셰프 K는 그날 밤 환대해주셔서 고마웠다는 인사가 담긴 긴 문자를 보내왔다. 

싸리비로 마당의 먼지를 쓸어내듯 

꽃향기로 제 안의 더러운 먼지를 

쓸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수퍼마켓엔 

왜 제가 원하는 맛이 없는지 오늘 분명히 알았습니다. 

진정한 맛은 야생에 있는 것 같습니다. 

허허, 이 친구! 좋은 요리가가 되겠구나. 자연이 주는 본연의 향, 본연의 맛이야말로 우리에게 건강을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태양과 바람과 비를 머금고 자란 자연의 맛, 그게 진짜 맛이다. 뜨거운 햇볕과 소나기, 가뭄과 홍수를 이겨내고 자란 식물들,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자란 식물들일수록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이 풍부하다고 한다. 파이토케미컬은 식물성 화학물질을 가리키는데, 항산화, 항염, 항암 및 해독 따위의 작용을 하는 중요한 물질이다. 그러니까 이 물질은 비닐하우스에서 속성으로 키운 식물보다는 산이나 들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식물에 훨씬 더 풍부하다.

싸리꽃전

이것이 우리 가족이 자연농을 선호하는 이유이며, 수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나 과일보다 야생의 산과 들에서 먹거리를 찾는 이유이다. 그리고 텃밭에 토종 씨앗을 심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토종 씨앗으로 키운 작물들은 맛, 색깔, 향이 진하다, 향이 진한 식물일수록 요리를 해도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다. 모름지기 건강한 음식은 좋은 재료로부터 나온다. 이 천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는 쓸데없는 인공 양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미각은 합성향미료나 인공 조미료에 길들여져 있다. 자연의 순수한 맛을 즐길 줄 모른다. 사실상 인공 조미료는 우리 건강을 해치는 독이나 다를 바 없다. 잡초 혹은 야생초 요리를 해 먹으며 우리 가족은 이제 자연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의 맛과 향은 우리의 뱃속을 편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머리도 맑게 해준다. 야생의 먹거리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세포가 활성화되고 몸이 가벼워지고 하루하루 사는 게 기쁘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과 영혼을 살아 있게 하는 진정한 섭생은 건강한 먹거리의 선택에서부터 시작된다. 

며칠 뒤 텃밭에 웃자란 여름풀들을 베어내고 토종순무 씨를 뿌리고 있는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얼마 전 다녀간 셰프 K였다. 

“선생님, 오늘 점심 무렵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무슨 일인가?” 

“아, 제가 요전에 뜯어온 싸리꽃으로 요리를 만들어 봤어요. 생전 처음 만들어 본 요리라 떨리긴 하지만, 선생님 부부에게 맛 뵈어드리고 싶어서요.” 

“아, 그래? 고맙네. 기꺼이 가겠네.” 

아직 독신인 셰프 K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음식 냄새가 물씬 풍겼다. 식탁 위엔 싸리꽃과 잎으로 만든 전(臇)이 나름 멋을 부린 접시에 다소곳이 담겨 있었다. 싸리나무 잎을 갈아 찹쌀에 넣어 반죽하고 꽃을 얹어 부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싸리꽃전. 식탁 의자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이 요리의 비주얼을 보니 젊고 건강한 감각을 지닌 세프의 정성이 느껴지네. 안 먹어도 벌써 포만감이 드는데….” 

“아이구, 별 말씀을!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첨 해 본 요리라…” 

아내와 나는 접시에 담긴 싸리꽃전의 냄새부터 맡았다. 그리고 전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베어무니 은은한 싸리꽃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시식을 하던 아내도 그 향과 맛에 반한 모양이었다. 

“나도 야생초 요리를 즐기지만, 이 레시피는 널리 공유해야겠어요.” 

아내의 말에 세프 K는 기분이 좋았던지 활짝 웃으며 다답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소중한 식재료를 야생에서 거저 얻었는데, 레시피는 당연히 공유해야죠.”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을 듣자니, 문득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란 시가 떠올랐다.

신이 대지와 물과 태양을 주었다. 

대지와 물과 태양이 사과나무를 주었다 

사과나무가 아주 빨간 사과 열매를 주었다 

그 사과를 당신이 내게 주었다 

부드러운 두 손바닥에 싸서 

마치 태초의 세계처럼 

아침 햇살과 함께 

어떤 말 한마디 없이도 

당신은 나에게 오늘을 주었다 

잃어버릴 것 없는 시간을 주었다 

사과를 길러낸 사람들의 미소와 노래를 주었다 

……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새 

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나에게 주었다 

 

음식은 창조의 기초이기 때문에, 음식은 창조이며 창조자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반다나 시바). 그러니까 음식은 곧 우리를 살리는 신(神)이라는 것. 그렇다. 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젖으로 우리를 먹여 기르신 어머니들이야말로 우리의 신이 아니었던가. 오늘, 산에서 얻은 재료로 싸리꽃전의 은은한 향기와 맛을 흔감하게 해준 세프 K, 정말 고맙소. 그대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맛보게 해 줘서!

고진하 목사시인 글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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