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6

쥐약 먹은 고양이도 살려내는 괭이밥풀

야생초 지혜: 비단풀

그 약초를 만난 건 전혀 뜻밖이었다. 나는 그날 원주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고산호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평소에도 물을 좋아해 이따금 찾아가던 호수. 그냥 호숫가에 퍼질러 앉아 잔잔한 물 위로 날아다니는 두루미들을 보고, 시간을 엿가락처럼 줄였다 늘였다 하는 뻐꾸기 소리를 듣기만 해도 온갖 마음의 시름을 덜어낼 수 있는 곳. 낚싯대도 챙겨 갔지만 몇 마리 잡은 물고기마저 그냥 놓아주고 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가에는 농가들이 드문드문한 송곡이란 마을이 있는데, 나는 그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을 앞 길목에는 내가 흠모하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비(被逮碑)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던 해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바닥 인생들조차 하느님으로 공경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일생을 살아 온 해월은 바로 이곳 송곡 마을에서 은거하던 중 체포되었던 것이다. 이 피체비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살아계실 때 손수 글을 써서 세운 것인데, 나는 피체비에 새겨진 해월의 글귀를 매우 좋아한다. 

“천지는 부모요, 부모는 천지니, 천지부모는 한 몸이라.”

원주시 호저면 송곡마을 앞에 있는 동학 지도자 해월 최시형의 피체비 옆에 선 필자 고진하 목사시인.

무위당의 힘찬 글씨를 가슴에 새기며 돌아서는데, 동행한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길 좀 봐요. 우리가 찾던 풀이 쫙 깔렸네요.” 

아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개울 옆 둔덕에 비단풀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우리는 비단풀을 두고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비단풀의 본디 이름은 ‘애기땅빈대’. 땅 위를 빈대처럼 기어다닌다 해서 붙여진 이름. 이 풀이 비단풀이란 이름을 갖게 된 건 땅을 비단처럼 곱게 덮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우리나라 들이나 길가에서도 많이 자라는데, 윤기가 흐르는 푸른 잎에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반점이 찍혀 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지만 우리는 비단풀을 뜯기 시작했다. 이런 군락지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비단풀을 뜯던 아내가 줄기에서 나오는 흰 즙을 꾹 짜서 보여주며 말했다. 

“이 즙 색깔이 꼭 젖 같아 보이지 않아요?”

“오호, 그렇네. 이 젖 같은 성분이 사포닌이라죠?” 

“맞아요. 산삼이나 더덕, 도라지에도 많이 포함된 성분이죠.” 

나는 아내가 비단풀의 줄기에서 나오는 흰 즙을 보고 젖 같다는 말에 문득 평생을 애기땅빈대처럼 삶의 바닥을 치며 살았던 해월 선생이 말한 그 유명한 젖 얘기가 떠올랐다. 나중에 ‘밥 사상’으로 불린 대목이다. 

“젖은 사람 몸에서 나오는 곡식이요, 곡식은 천지에서 나는 젖이라네. 그러니 사람이 어려서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도 천지의 젖을 먹는 것이고, 자라서 곡식을 먹는 것 또한 천지의 젖을 먹는 것일세. 그래서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알면 만사를 아는 것이라네.” 

우리는 젖 같은 생명의 즙을 지닌 비단풀을, ‘조선의 위대한 혼’ 해월에 대한 아픔의 기억이 서린 마을 앞에서 채취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약으로 쓸 만큼만 비단풀을 뜯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 풀은 그리 흔하진 않지만 우리나라 전역에 돋아나는 풀이다. 우리 집 마당에도 자라는 이 비단풀은 봄풀이 다 스러진 뒤 돋아나기 시작하는 여름풀. 뜯어먹을 만큼 양이 많진 않지만, 나는 자주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이 소중한 풀의 생태와 습성을 관찰하곤 했다. 꽃 핀 모습을 보면 꽃이 작아도 너무 작다. 저 작디작은 꽃은 무엇이 수정해주려나. 나비나 벌들이 할까. 

어느 날 가만히 엎드려 꽃을 들여다보는 내 눈앞에 꼬물꼬물 나타난 잔 개미들. 아, 바로 너희구나.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비단풀 꽃의 환한 미소가 개미 형제들을 꼬득인 것일까. 옆으로 옆으로 줄기를 뻗어 자라는 폭신폭신한 비단풀을 밟고 다니며 작디작은 붉은 꽃에 붙어 꿀을 빠는 잔 개미들. 그걸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 돋보기까지 동원했는데, 그때 나는 보았다. 비단풀이 꿀을 내줄 때 개미는 꿀을 얻는 대신 수정을 해주며 서로 공생하는 아름다운 몸짓들을. 쬐끄만 것들이 쬐끄만 것들과 어울려 땅별을 살리고 땅별의 착취자인 인간들마저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듬는다는 것을. 그렇다. 만일 조물주께서 비단풀과 개미의 아름다운 공생을 보고 계신다면 “기쁘게 입 맞추고 포옹하기 위해 연인으로 가장한 채”(숀 맥도나휴) 이 피조물들에게 다가서시지 않았을까. 

이름은 비단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천덕꾸러기 잡초 취급을 당하는 비단풀. 일찍이 이 하찮은 풀이 뛰어난 암 치료제라는 소문을 들은 한 약초학자는 이 풀을 구하기 위해 아마존 정글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숱한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아마존에 도착한 그는 약초에 대한 지식이 많은 인디오 주술사의 안내를 받아 그 신비의 약초를 구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는 많은 양의 그 풀을 말려 비행기 화물로 싣고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그는 자기가 살던 집 앞 공터에 무심코 나갔다가 비단풀이 공터 여기저기에 돋아나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가 공터에서 본 풀은 아마존 정글에 가서 죽을 고생을 해서 가져온 약초와 꼭 같이 생긴 풀이었다. 푸른 잎의 모양도 같았고, 잎 가운데 갈색 점이 있는 것도 같았고, 줄기를 끊으면 흰 즙이 나오는 것도 같았으며, 쓴맛이 나는 것도 꼭 같았다. 그 약초는 아마존 정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흔하게 자라는 잡초였던 것. 신비의 영약을 발밑에 두고 그는 그 머나먼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찾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인도의 시인 까비르는 사람이 자기 존재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머나먼 곳을 헤매다니는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사향노루에 빗대어 노래했다.

사향은 사향노루 속에 있지만, 

사향노루는 그것을 찾을 수 없네. 

그래서 그것을 찾아 초원을 헤매다닌다네.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의 배꼽 부근에 있는 향낭에서 풍기는 향이다. 이 향으로 암컷을 유인하는데, 사향노루는 그 향이 제 몸에 있음을 모르고 초원을 헤매다닌다는 것. 지구 반대편 아마존 정글을 헤매다녔던 약초학자 역시 약초는 늘 자기가 사는 곳에 있건만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다며 ‘눈뜬 장님이었다’고 고백한다.(최진규) 

약초학자는 이처럼 겸허한 고백을 하지만, 그의 지극한 열정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환자들의 아픔을 자기 몸의 아픔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자기가 겪어보기 전에는 불치에 가까운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기 어렵다. 

비단풀은 애기땅빈대라는 이름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는 식물이지만, 그 약성은 어떤 다른 식물보다도 뛰어나다. 비단풀은 항암작용이 가장 뛰어난 식물 가운데 하나로, 특히 뇌종양, 골수암, 위암 등에 효과가 크다. 암세포만을 골라서 죽이거나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여러 가지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빨리 돋아나게 하고 기력을 늘린다고 한다. 비단풀은 플라보노이드와 사포닌이 들어 있어, 치매 예방 및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 지금초(地錦草)라 불리는 이 풀의 놀라운 효능은 세간에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비단풀은 일단 여름이나 가을에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린다. 비단풀은 아주 가늘고 부드러워서 많은 양을 채취하여 말려도 얼마 되지 않는다. 잘 마른 비단풀은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달여서 먹는다. 비단풀은 맛이 맵고 쓴데 대추를 넣고 달여서 먹으면 매운맛과 쓴맛을 완화시킬 수 있다. 

며칠 전이었다. 저녁 무렵 아내가 특별한 죽을 끓였다며 식사를 하자고 했다. 평소 엉뚱한 요리 실험을 많이 하는 아내의 식사 초대를 궁금해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엔 허여멀건 죽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무슨 죽인데 특별한 죽이라 하는 거요“” 

“알아맞춰 보세요.” 

멀건 빛깔의 죽 속에 거친 식물 줄기가 보이는데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아내가 입을 뗐다. 

“항암죽이에요.” 

그제야 나는 알 듯싶었다. 해월의 피체비가 있는 곳에서 뜯어온 비단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하하… 비단풀항암죽이로군요!” 

숟가락으로 떠먹어보니, 약간 쌉싸름하고 매운맛이 나는 데 먹을 만했다. 죽에 넣은 대추의 단맛이 쓴맛과 매운맛을 잡고 맛의 균형을 맞춰준 것 같았다. 나는 혀에 미뢰(味蕾)가 발달하지 않아 미감이 다른 사람보다 떨어지는데, 맛의 감각은 학습되는 것인지 아내가 끓여낸 비단풀항암죽에 거부감이 없었다. 

죽 한 그릇을 비웠을 뿐인데 포만감이 밀려왔다. 약성이 뛰어난 신비로운 비단풀이 들어 있는 죽이기 때문이리. 어떤 식물학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내면의 빈자리, 식물만이 채워줄 수 있는 빈자리를 비단풀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리. 우리는 이 빈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반쪽짜리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비단풀을 뜯으면서도 연실 ‘고마워’, ‘미안해’라고 중얼거렸지만, 우리는 다 먹고 난 빈 죽그릇을 앞에 두고도 감사의 비나리를 바쳤다.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는 인도의 속담처럼 땅별의 동반자인 그대가 없으면 인간이 치유될 수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해질 수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없으므로!

고진하 목사시인 글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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