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5

쥐약 먹은 고양이도 살려내는 괭이밥풀

야생초 지혜: 괭이밥

삶에서 진정으로 값진 것들은 모두 값이 없다네. 중세 독일의 시인 에바 스트리트마터의 <가치>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매일 소농의 밭으로 출근해 밭에 자라는 식물들과 아침 인사를 할 때마다 이 시구를 실감한다. 백여 평 정도 되는 밭엔 고추, 고구마, 들깨, 서리태 , 쥐눈이콩, 참외, 수박 등이 자라는데, 그 사이사이엔 내가 파종하지 않은 풀들도 자란다. 고맙게도 저절로 날아와 자란 식물들. 남들은 잡초라고 뭉뚱그려 비하하지만 내가 심어 먹는 작물과 다를 바 없는 귀한 식물들이다. 여러 해 전부터 나는 자연농을 하는데, 자연농의 이로움은 내가 심어서 가꾸는 작물 말고도 저절로 자란 풀들도 뜯어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아무런 수고도 없이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있다. 값이 없는 것들이지만 우리 식구들에겐 소중한 식재료들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우리 식구들이 뜯어먹은 식물들을 소개하면 대략 30여 종이 넘는다. 꽃다지, 광대나물, 달개비, 개똥쑥, 개망초, 비름나물, 곰보배추, 수영, 소루쟁이, 명아주, 까마중, 고마리, 우슬초 등등. 봄풀들은 다 지고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며 텃밭엔 푸른 잎, 붉은 줄기의 쇠비름이 드문드문 돋아나 자라고, 밭 여기저기엔 괭이밥이 많이 피어 있다. 지난해엔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키 큰 작물들 사이에 숨어 있지만 황금빛 꽃을 피우며 그 존재감을 한껏 뽐내는 괭이밥. 잎사귀가 토끼풀과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둥근 타원형의 토끼풀 잎과 달리 괭이밥 잎은 딱 심장 모양이다. 웃자란 명아주를 낫으로 베어내다가 잠시 쪼그리고 앉아 내 심장 모양의 괭이밥 잎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한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문 하나. 올해는 왜 괭이밥 씨가 더 많이 날아들어 피어난 걸까. 오래전에 읽은 인디언 추장의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식물이 그 아픈 사람의 병을 치료할 식물의 씨앗을 그가 사는 곳으로 날려 보낸다고! 광채 없는 피조물이 없다지만, 식물의 세계는 참 오묘하고 신비롭다. 요즘 우리 집 식구 가운데 특별히 아픈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예방 차원에서 괭이밥 씨앗이 날아든 걸까. 전 세계를 강타한 돌림병 때문에 이따금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마당과 텃밭에 핀 괭이밥 노란 꽃등(燈)을 보면, 그래 너희가 땅별을 살리는 백신이지! 하는 생각이 들며 우울한 감정도 씻은 듯이 사라지곤 한다.

괭이밥 <한겨레 휴심정 제공>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괭이밥은 숱한 식물 가운데 최고의 해독력을 지닌 식물이다. 어릴 땐 그냥 뭣 모르고 뜯어먹었지만, 이젠 그 강력한 약성을 알고 자주 뜯어먹는다. 괭이밥이란 호칭이 생긴 이유도 그 뛰어난 해독력 때문이다.

내 어릴 적엔 시골에 쥐가 많아 쥐 잡는 날을 정해 마을 반장이 쥐약을 나눠주곤 했다. 탈륨이라는 중금속으로 만든 쥐약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가장 무서운 독약, 그걸 먹은 쥐들은 모두 죽었다. 그렇게 죽은 쥐를 먹은 개나 고양이들도 모두 죽었다. 자살하려는 이들도 그 독성 강한 쥐약을 먹고 세상을 저버렸다. 그러나 목줄에 묶이지 않은 고양이들은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삼키고 나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다가도 마당이나 들에 핀 풀을 뜯어먹고 살아나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 풀 이름이 ‘괭이밥’이 되었다. 고양이가 뜯어먹고 살아난 풀이라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

평소 풀을 뜯어먹지 않는 육식동물인 고양이가 괭이밥이 지닌 해독력을 어떻게 알았을까. 대체 누가 녀석들에게 그걸 가르쳐 주었을까. 원주민 문화와 약초에 대해 해박한 학자인 스티븐 해로드 뷰너는 식물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생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식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식물들은 그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 군락을 창조하고 유지한다. 나아가 모든 생명체들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제공해주며, 병든 생물들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스티븐 뷰너의 이런 말은 괭이밥 같은 신비로운 식물에게 딱 어울린다. 괭이밥은 사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는 괭이밥이 없다. 우리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오래된 폐가가 있는데, 마당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다른 풀들은 쑥대처럼 무성한데 괭이밥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엔 어디든지 괭이밥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 서울에 사는 친구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주변을 산책했는데, 아파트 주변에도 괭이밥이 돋아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괭이밥을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풀’이라고 명명했다. 사람 곁에 머물며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괭이밥.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며 치유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는 그 ‘창조적 자발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김순현, 「정원사의 사계」 참조)

괭이밥 <한겨레 휴심정 제공>

나는 요즘 거의 매일 마당과 텃밭에 자란 괭이밥을 뜯어먹는다. 군것질거리가 귀하던 어린 시절 괭이밥 잎을 따서 씹으면 입속에서 느껴지는 새콤한 맛을 즐기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하여간 괭이밥은 개화 기간도 길어서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배시시 웃는 꽃을 보며 위로받을 수 있고, 다른 식물보다 오래 식용할 수 있어서 무척 고마운 식물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단오가 지나면 독성이 생기는데, 괭이밥은 단오가 지나도 독성이 없다.

앞서 해독력에 대해 언급했지만, 괭이밥의 약성은 대단하다. 백혈병 같은 질환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는데, 산성화된 몸을 알카리성 체질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괭이밥은 면역력을 늘려주는 효과도 매우 뛰어나 간염 같은 질병도 예방할 수 있고, 자주 뜯어먹으면 감기를 비롯한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 해독작용이 뛰어나서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중금속 중독 등 온갖 독으로 인한 중독을 풀어주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최진규)

괭이밥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해가 지면 편안한 잠을 즐기려는 듯 잎을 오므린다는 것. 이처럼 밤이 되어 잎을 오므리는 괭이밥이나 차풀 같은 식물은 불면증에 좋다고 하니 얼마나 신비로운가. 식물들은 잎의 생김새나 변화를 신호로 사람에게 자기의 쓰임새를 알려주는 것일까. ‘불면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나를 뜯어먹으세요!’라고 일러주듯! 지난 늦은 봄 나는 며칠 동안 불면으로 잠을 설친 뒤 괭이밥을 뜯어먹고 깊은 잠을 이루는 신비한 체험을 직접 한 적이 있다.

이처럼 약성이 뛰어난 풀이지만, 괭이밥은 너무 시큼해서 신 것을 잘 못 먹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초식동물들도 그 신맛 때문에 괭이밥을 건드리지 않는다. 풀만 뜯어 먹는 소나 양이나 염소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벌레들도 좋아하지 않아 괭이밥은 언제 보아도 쌩쌩하다. 괭이밥이 지닌 이 신맛은 옥산살이라고 하는 수산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인데, 괭이밥 외에도 수영, 시금치, 소루쟁이 같은 풀들도 수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괭이밥은 요리법이 필요하다. 신맛을 줄여주는 요리법. 우리 집에서는 괭이밥 요리를 자주 해 먹는데, 주로 괭이밥샐러드나 괭이밥물김치를 담아 먹는다. 특히 괭이밥샐러드를 만들면서 신맛을 잡기 위해 시큼한 레몬을 넣어보았더니 신맛이 확 줄어들더라. 신맛을 신맛으로 잡을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여기서 꼭 덧붙여야 할 것은, 수산이 많이 함유된 식물은 절대 열을 가해서 요리하면 안 된다는 것. 그러니까 데치거나 끓이지 말아야 한다, 괭이밥을 요리하기 위해 열을 가하면 유기수산이 무기수산으로 바뀌며 우리 몸속에 담석 같은 돌을 만든다. 따라서 괭이밥은 반드시 날것으로 먹어야 한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옛말이 있는데,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는 것. 그렇지만 음식은 제대로 알고 요리해 먹어야 약이 된다.

꽃말이 ‘빛나는 마음’인 괭이밥. 잎 모양이 완벽하다고 할 만큼 하트 모양이다. 그래서 화초로 키우는 잎이 넓은 괭이밥 품종을 ‘사랑초’라 부르기도 한다. 키가 작아 풀숲에 있을 때 키 큰 식물에 가려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지만, 다른 식물과 키 재기를 하거나 다투지 않고, 오직 아픈 사람을 위해 늘 사랑을 호소하는 듯한 괭이밥. 시인인 나는 표절 충동을 항상 경계하지만, 괭이밥의 신비로운 치유의 힘, 사랑의 힘은 표절하고 싶구나!

고진하 목사시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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