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4

그들이 곡식을 두고도 굶어죽은 이유는

야생초 지혜: 토종 씨앗

<한겨레 휴심정 제공>

토종이란 말에서는 고향의 흙냄새가 물씬 난다. 토종 씨앗에서는 늦가을 배추 뿌리를 씹을 때 혀끝에 느껴지던 들큰한 냄새가 난다. 오늘 난 텃밭에서 토종 씨앗을 받았다. 봄 내내 텃밭에는 토종배추, 토종무, 토종당근, 토종갓이 피운 노란 꽃무리로 찬연했다. 초등학생 키만큼이나 자란 꽃무리는 혹한의 겨울을 이겨낸 존재감을 뽐내는 것 같았다. 지난해 가을에 뿌려 김장용으로 수확한 뒤 몇 포기씩 남겨둔 배추, 무, 당근, 갓들이 추운 겨울을 난 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것. 배추, 무, 갓의 씨앗은 5월 중순쯤 받았고, 오늘은 당근 씨앗을 받는 날.

하얗게 변색된 당근 꽃대궁을 베어 아내에게 건네주자, 토종 씨앗을 받는 것이 설레는지 아내의 얼굴이 바알갛게 물들었다. 꽃대궁을 다 베어 조금조심 마당으로 옮기고 있는데, 앞집의 박씨 할머니가 경로당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날도 뜨거운데, 뭘 하시우?”

“아, 씨앗 받으려구요. 그냥 놔두면 다 터져버리잖아요.”

“요샌 씨앗 받아 농사짓는 사람이라곤 읇는데…뭐 특별한 씨앗이유?”

“네. 토종 당근 씨예요. 나중에 좀 나눠 드릴까요?”

씨앗을 머금은 당근 꽃들 <한겨레 휴심정 제공>

박씨 할머니는 대답 대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경로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우린 마당에 멍석을 펼쳐놓고 그 위에 작은 씨앗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얇은 천을 깐 후 방금 베어온 마른 꽃대궁을 가지런히 펴 널었다. 한여름 볕살이 무척 따가웠다. 사나흘 정도 말리면 씨앗을 채종할 수 있겠지 싶다.

박씨 할머니 말처럼 요샌 씨앗을 받는 농부들이 거의 없다. 봄이 오면 그냥 종묘상에서 사다가 심는다. 토종 씨앗도 거의 사라졌다. 우리가 심은 토종 씨앗들도 충북 진천 땅에 있는 ‘토종씨앗나눔모임’에서 어렵사리 구한 것. 그런 모임을 지속하는 이들은 그 존재가 착한 종자은행들이다. 그 종자은행에서 얻어온 씨앗으로 종자를 얻었으니, 나도 착한 종자은행이 되어 필요한 이들과 나누어야지.

옛날 농부들은 씨앗을 소중히 했다. 자기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다. 자연재해로 흉년이 들어 땟꺼리가 없어도 굶어 죽을지언정 씨앗은 먹지 않았다. 한 번 잃으면 찾을 수 없고, 돈 주고 살 수도 없는 토종 씨앗, 옛 농부들에게는 씨앗을 지켜내는 것이 자긍심이었고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씨앗이 없으면 식량도 없고, 식량이 없으면 인류의 내일도 없으니까.

직접 농사를 지었던 생전의 박경리 <한겨레 휴심정 제공>

씨앗과 관련된 공부를 하던 중에, 토종 씨앗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아 종자은행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려다 목숨을 바친 지구 영웅의 이야기를 읽었다. 노새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토종 씨앗을 모은 러시아의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38만 종이 넘는, 발아 가능한 씨앗을 모아 러시아에 종자은행을 설립했다. 그러나 세계 2차대전 때 러시아를 침공한 히틀러 군대에게 종자은행에 보관하고 있던 소중한 씨앗들을 빼앗기고 나중엔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히틀러는 우스꽝스럽게도 엄격한 채식주의자인데다 생식을 즐겼고 아리아인의 우월성에 사로잡혀 인종 정화를 위해서는 순수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다소 해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바빌로프와 뜻을 같이하던 연구원들도 이 비극을 피해 가지 못했다. 히틀러 군대에게 종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하실에 숨겨 보관하고 있던 씨앗을 지키려다 굶어죽었다. 그 씨앗들을 꺼내 요리해 먹었더라면 굶어죽는 일은 면했을 텐데….(게리 폴 나브한,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서 오는가」 참조)

이 얘기를 읽고 나니, 가슴이 뭉클해지며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 흙벽돌로 지은 허름한 광에 들어갔는데, 나무로 짠 선반 위에 종재기와 조그만 오지항아리들이 가지런히 얹혀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종재기와 오지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그릇 속에는 다양한 씨앗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벼, 보리, 녹두, 팥, 수수, 참깨, 들깨 등이 있었고, 특히 콩 씨앗들은 여러 종류가 그릇에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쥐가 먹지 못하도록 씨앗들을 종재기나 오지항아리에 담아 두셨던 것.

<한겨레 휴심정 제공>
<한겨레 휴심정 제공>

토종 씨앗들은 이렇게 수수만 년 대물림되어 왔다.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들의 생명을 보듬는 극진한 손길을 통해서. 지상의 음식은 어디서 오는가. 농부들이 자기 목숨처럼 소중히 지켜온 씨앗에서 온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우리 시대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생명을 가지고 온갖 장난질을 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씨앗 한 톨 만들 수 있던가. 농부들의 미운털이 박힌 쇠비름이나 바랭이 씨앗, 나팔꽃 씨앗 한 톨 만들지 못하지 않는가. 강원도 원주의 시골에 칩거하며 손수 농사를 짓고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는 씨앗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을 남겼다.

“어떤 작가는 소설가란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다. 씨앗이 함축하고 있는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은 탓일까. 텃밭에서 거둔 작디작은 씨앗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거룩한 창조의 영(靈)의 수런거림이 들리는 듯싶다. 농부소설가로 살던 작가도 하느님의 신비가 깃든 그런 수런거림을 들은 것일까. 이런 작가의 고백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늘날 지구 위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생명에 가해지는 무작스런 핍박 때문이다.

터미네이터(terminator)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영화 제목 아니냐고! 맞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터미네이터는 유전자 조작으로 파종한 뒤 수확기에 거둬들이는 종자를 불임으로 만드는 기술을 일컫는다. 이 기술로 만들어진 모든 씨앗들은 1년이 지나면 배아(胚芽)가 싹을 틔우지 못한다. 이를테면 배아가 자살을 하도록 조작한 것. 종묘상에서는 이처럼 형질이 변경된 씨앗과 모종을 판다. 전 세계의 가난한 농부들은 이런 터미네이터 종자를 해마다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우리나라 밭에 자라는 많은 작물들도 대부분 터미네이터 식물들이다. 터미테이터 고추, 터미네이터 오이, 터미네이터 가지, 터미네이터 수박 등등.

그런 씨앗을 심어 온 농민들은 이제 수확을 하고 나서도 씨앗을 거두지 않는다. 설사 씨앗을 거두어 심어도 싹을 틔우지 못하거나 싹을 틔워도 결실이 없거나 불량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종자를 사고 모종을 사들인다. “배추, 무, 고추, 옥수수, 콩을 비롯한 거의 모든 품종이 자손을 번식하지 못하고 영원히 잠드는 종자의 묘지가 되었다.”(박성률).

풀밭의 쥐눈이콩 <한겨레 휴심정 제공>

이처럼 돈벌이에 미친 인간의 파렴치한 시도로 인해 식물-씨앗-식물-씨앗의 수십만 년 된 자연의 순환고리가 끊어진 것. 이제 평생 농사를 해온 이웃의 농부들도 손수 수확해 갈무리한 씨앗이 없다. 나는 두렵다. 수십만 년 지속해 온 자연의 순환고리를 끊어버린 우리 시대의 천민자본과 결탁한 과학, 그 과학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 역시 그 순환의 고리가 끊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텃밭에서 쑥쑥 자라는 한여름의 푸른 고집들을 보며 울가망한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저물녘, 당근 씨앗을 펴 널었던 멍석을 둘둘 말아 밤이슬을 맞지 않도록 처마 밑으로 옮길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치악산 밑에 자드락밭을 마련해 2년 전에 귀농한 후배의 전화였다. 나이에 비해 몸가짐이 나볏하고 성실해 내가 좋아하는 후배다. 시골 생활이 아직 서툰 후배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형님, 오늘은 뭐하셨어요?”

“아, 씨앗을 받았어. 토종 당근 씨!”

토종이라는 말에 구미가 당기는 걸까. 후배는 그것 좀 넉넉히 나눠줄 수 없겠냐고 묻는다.

“나눠줄 사람이 많아 넉넉히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씨앗 값은 드릴 테니, 저한테 좀 많이 주세요.”

“옛날부터 토종 씨앗은 돈을 받고 팔지 않았어. 조금 나눠줄 테니 일단 심어봐.”

무꽃들 <한겨레 휴심정 제공>

그렇다. 옛날 농부들은 씨앗을 절대 사고팔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그러셨고 선대의 모든 농부들이 그러셨다. 씨앗을 이웃과 나누는 것은 그분들의 농심(農心)이요 자긍심이었다. 오늘날 토종 씨앗에 관심을 갖는 농부는 매우 드물다. 토종 씨앗을 심어 수확한 곡식이나 채소는 개량종에 비해 크기도 작고 수확량도 적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토종 씨앗은 소농이나 자급농을 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찾는 형편이다.

“형님 뜻 알았으니 조금 나눠주시면 심어볼게요.”

“그래, 몇 알만 심어 잘 가꾸면 자네도 금방 종자은행이 될 수 있어.”

“하하, 종자은행요? 그런데 왜 형님은 토종 씨앗을 고집하죠?”

나는 후배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토종 작물은 병충해에도 강하고 무엇보다 맛이 좋아. 토종 배추나 무, 시금치나 오이를 수확해 냄새를 맡으면 향이 아주 진하지. 마트에서 사 먹는 개량종 채소나 과일에서는 향이 거의 사라졌어. 식물의 향미가 깊고 진하면 영양소도 풍부하다는 건 영양학의 정설이거든.”

“오늘 정말 귀한 걸 배웠어요!”

초록 땅별의 지속 가능성이 위태위태하고 식량 위기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이즈음, 나는 내 식구의 호구를 채워주는 소농이 희망이라고 믿는다. 귀농한 후배가 돈벌이가 안 되는 소농의 힘든 과정을 잘 견디기를! 통화가 끝난 뒤 토종 씨앗을 나누는 작은 종자은행장(!)의 마음으로 후배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잠언 몇 구절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음식이 씨앗이라면 생각은 그 열매다. 음식이 바다라면 생각은 진주다.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하느님을 섬기려는 마음과 그분의 나라로 가려는 결심이 서게 된다.”(잘랄루딘 루미)

고진하 목사시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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