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14

개망초는 망하게하는 풀아닌, 몸 흥하게 해요

불편당 일기 14: 개망초

권포근 야생초요리가의 개망초 주먹밥

식물도 여행을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식물을 움직일 줄 모르는 ‘지구의 붙박이 가구’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다. 물론 식물이 개체로 있는 동안에는 서식하는 공간을 떠나 이동할 수 없는 것이 맞다. 그러나 식물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장 먼 땅,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극도로 열악한 지역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라는 멋진 책을 쓴 식물생리학자 스테파노 만쿠소는 말한다. 

“식물을 정의하는 형용사는 실제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이 아닌 ‘원하는 곳에 뿌리를 내리거나 정착할 수 있는’이 되어야 한다. 고착성 유기체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이동할 수 없지만, 식물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이동할 수 있다.” 

그렇다. 식물은 포자나 씨앗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해 세상의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기 위해 이동하고 전진한다. 고사리 같은 양치류 식물은 수천 킬로미터까지 바람에 실려 운반될 수 있는 천문학적인 양의 포자를 방출하여 자손을 퍼뜨린다. 씨앗을 맺는 식물은 바람에 실리거나 땅 위를 구르거나 동물 털에 붙어서, 또는 곤충이나 조류, 포유류 같은 특정한 동물의 힘을 이용해 종자를 퍼뜨린다. 

식물은 우리가 흔히 잘못 생각하듯 수동적인 생물이 아니라 얼마나 활달하고 능동적인 생물인지! 화단에서 키우는 분꽃은 씨앗이 여물면 탁, 탁 소리를 내며 되도록 멀리 씨앗을 날려 보낸다. 길가에 자라는 야생 돌콩 같은 경우도 꼬투리가 바짝 마르면 포탄을 쏘듯이 씨앗을 멀리멀리 날려 보낸다. 아주 특이한 경우지만 라틴 아메리카 열대지방에 자라는 후라 크리피탄스라는 나무는 다이너마이트 나무라는 무서운 별칭을 지니고 있는데, 이 나무는 큰 폭발음을 내며 씨앗을 초속 400미터까지 날려 보낸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가.

개망초

바다를 건너 대륙을 이동하는 건 보통 새들에게나 가능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식물 또한 다른 운반체를 이용해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이동하며 씨앗을 퍼뜨린다. 특히 스스로 귀화해 새로운 국적을 얻은 식물들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귀화식물로 ‘개망초’가 있는데, 귀화한 지 백 년을 조금 넘은 이 식물은 우리 국토를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본래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개망초는 구한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맨 처음 철도가 들어올 때 거기에 사용되는 철도 침목을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수입해 왔는데, 그때 개망초 씨앗이 침목과 함께 묻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생명력이 강한 개망초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이웃의 일본 국토를 점령했다. 메이지 시대에 귀화했다니 우리나라보다 몇 십 년 먼저 일본 땅에 정착한 셈. 일본의 잡초연구가인 이네가키 히데히로는 개망초를 ‘새로운 새상으로 나아가는 기차 소녀’라고 재미있게 표현했는데, 일본에서도 철도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개망초가 일본 전역으로 점차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개망초를 ‘철도초’(鐵道草)라 부르기도 한다. 

귀화식물인 개망초가 한국과 일본에 정착할 때 기차 철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니 참 흥미롭다. 하여간 우리나라에 철도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철길이 놓이는 곳을 따라 흰색 꽃들이 왕성하게 피어나는 것을 본 조선인들은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려고 이 꽃의 씨를 뿌렸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 식물에 이름을 붙이면서 처음엔 망할 망(亡)자를 써서 망국초라로 불렀고, 후에 다시 개망초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어느 식물의 이름 앞에 ‘개’자를 붙이는 건 급이 낮다는 인식을 전제하는데, 개망초 또한 그런 폄하의 운명을 안고 있나보다. 

개망초는 그 이름에서부터 원망과 폄하의 시선을 담고 있지만, 나는 이 식물을 망초가 아니라 흥초(興草)라 부르고 싶다. 무엇보다 개망초 꽃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개망초는 국화과 식물로 봄부터 초가을까지 꽃을 피우는데, 가을에 피는 국화꽃 못잖게 아름답다. 흔하디흔한 풀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화원에서 재배한 개망초 꽃을 품에 안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했으리라. 개망초의 아름다움에 반한 한 시인의 노래를 들어보자.

권포근 야생초요리가가 만든 개망초계란말이

백의(白衣)의 억조창생이 한 데 모여 사는 것 같고, 

한 채의 장엄한 은하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흰 구름이 내려와 앉은 것 같기도 하구나 

-김선굉, <개망초꽃 여러 억만 송이> 부분 

개망초는 그 미색으로 시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식재료로도 사랑을 받아 왔다. 1960-70년대 무렵 내 어린 시절의 춘궁기에는 허기를 달래는 나물과 국거리로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그 시절을 건너온 시골 노인들은 마땅한 찬거리가 없으면 개망초를 채취해 먹는다. 

봄의 들판으로 나가면 개망초는 그야말로 지천이다. 옥토든 박토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물론 기름진 땅에서는 무성하게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는 왜소하게 자란다. 개망초는 어린 묘의 상태로 겨울을 난 후 여름에 꽃을 피우는 두해살이 식물인데, 키는 30~100cm 정도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줄기잎은 달걀 모양으로 어긋나기로 달리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드문드문 있고, 양면에 털이 있으며 잎자루에는 날개가 있다. 꽃은 지름 2cm 정도로 6~8월에 흰색으로 핀다. 꽃잎은 혀 모양으로 생겼다. 가장자리의 꽃은 암술만 가지고 있으며, 중앙 부위의 꽃은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가지고 있다. 꽃대의 끝에서 꽃의 바로 아래 부분에는 긴 털이 있고, 꽃은 가지 끝에 달린다. 꽃이 계란 프라이를 닮아 계란꽃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장난감이 흔치 않던 시절 시골 꼬맹이들은 이 꽃을 뜯어다 놓고 계란프라이라고 부르며 놀기도 했다. 

잡초요리를 즐기는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뜯어 먹는 풀이 바로 개망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우렁이농법으로 유기농을 해 논두렁에 자라는 개망초를 마음 놓고 뜯어먹을 수 있다. 농부들은 개망초를 매년 서너 번 정도 예초기로 베곤 하는데, 그렇게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다시 어린 순이 돋아나기 때문에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채취해 먹을 수 있다. 

개망초는 맛이 순하고 독이 없다. 주로 어린 잎을 뜯어다가 요리하는데, 날것으로 먹지 않고 주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요리 재료로 사용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해 먹는 요리는 개망초무침이다. 어린잎을 데쳐 된장이나 간장, 혹은 고추장에 무치는 데, 갓 피어난 꽃도 무침에 넣어도 된다. 다른 잡초에 비해 풀비린내가 적어 요리하기 쉽다. 

계란말이를 할 때도 개망초를 뜯어넣고 요리하는데, 계란 특유의 비린내를 싹 잡아줄 뿐만 아니라 소화에도 도움을 준다. 또 여러 잡초를 넣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주먹밥을 만들 때도 개망초를 많이 이용한다. 개망초는 맛이 순해 다른 잡초들과도 잘 어울리는데, 향이 강한 쇠비름이나 개똥쑥처럼 자기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꽃도 그렇지만 잎의 맛도 순하고 부드럽다.

권포근 야생초요리가가 만든 개망초무침

개망초는 아주 옛날부터 약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개망초를 비봉(飛蓬)이라 부르는데,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리며, 가려움증을 멎게 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또 민간에서는 해독과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려지며 장염과 설사, 감기 치료에도 이용했다. 최근에는 개망초에서 추출한 폴리페놀 성분으로 기능성 화장품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폴리페놀은 항산화 물질(Antioxidant)의 하나로 건강 유지와 노화 방지, 질병 예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폴리페놀 성분이 화장품의 재료로 활용된다니 탄력 있는 피부를 원하는 여성들이 개망초에 더 많은 시선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너무 흔해빠진(!) 개망초는 여전히 잡초로 치부되는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농부들이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환삼덩굴이나 돌콩처럼 농사에 직접 방해가 되지 않고, 돼지풀처럼 화분병을 일으키는 유해식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비를 비롯해 많은 곤충들에게 기쁨을 주는 식물이다. 개망초 꽃 만발한 농로를 걷다가 꿀 채집을 나온 벌들의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홀로 걸어도 적적하지 않아서 좋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다. 이 꽃말처럼 논밭가에 핀 수수한 개망초 꽃들을 보면서 농부들은 흰 수건을 쓴 어머니를 만난 듯 큰 기쁨과 위안을 얻지 않을까. 한국의 한 젊은 시인도 당신 어머니의 얼굴 혹은 영혼을 만난 듯 기쁘다며 개망초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한다. 

만발한 개망초는 공중에 뜬 꽃별 같아요 

섬광 같아요 

작고 맑지요 

대낮에 태양을 이고 혼자 서 있을 적엔 

슬퍼 보이기도 하지요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한적한 여름 대낮을 

그렇게 홀로 서 있지요 

무엇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나는 개망초가 어머니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지요 

하얀 수건을 쓴 

밭일하는 내 어머니의 얼굴 혹은 영혼 

나는 개망초가 흐트러진 들길을 수도 없이 오가곤 했지요 

그러나 그 풀꽃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못했지요 

공중을 편안하게 날아가는 잠자리처럼 

나는 그 위를 지나쳐 가는 더운 바람이요 

뭉게구름이요 

뙤약볕일 뿐이었지요 

활짝 핀 개망초는 대낮을 더 환하게 하지요 

-문태준, <개망초> 전문

 

고진하 목사시인 글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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