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12

우린 미운 이름을 붙여도 그는 사람을 살린다네

불편당 일기 12: 곰보배추

곰보배추를 채취하는 고진하 목사 시인

불편당의 겨울은 마냥 한가롭지만은 않다. 콩 타작을 끝으로 추수는 마무리되었지만 구들방을 덥힐 땔감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원도 오지에 사는 친구가 벌목한 나무를 나눠주겠다기에 참나무 한 트럭을 실어 왔다. 기계톱으로 나무를 토막 내 주었지만, 땔감으로 사용하려면 통나무를 도끼로 쪼개야 한다. 오늘도 일찍 조반을 먹고 대문간에서 나무를 쪼개고 있었다. 도끼질을 하다가 지쳐 통나무 위에 앉아 구슬땀을 닦고 있는데, 누가 불쑥 대문간으로 들어섰다. 

 “고 선상, 아침부터 수고하시네. 내가 좀 거들어 드릴까?” 우리 마을의 반장 김기덕 씨다. 성품이 다정다감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 그의 눈엔 나무 패는 게 영 서툴러 보인 모양이다. 반장은 내 곁에 있는 도끼를 집어 들더니 통나무를 패는데, 75세가 넘은 노구임에도 단단한 참나무가 단번에 쫙쫙 쪼개진다. 순식간에 통나무 다섯 개를 잘게 쪼개놓고는 도끼를 내려놓고 숨을 몰아쉰다. 

“아니, 어르신. 얼마 전에 기침이 그렇게 심하시더니, 이젠 괜찮으신가요?” 

한 달 전쯤이었을 게다. 매일 경로당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반장은 계단 앞에 앉아 무섭도록 기침을 하고 있었다. 천식이 심한지 반장은 기침을 하다 곧 숨이 넘어갈 듯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쉬었었다. 

“아, 이젠 괜찮아요.” 

“병원치료를 받으셨어요?” 반장은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병원 약을 먹어봐야 낫지 않더라는 것. 마침 도시에 사는 아들이 민간약을 잘 처방하는 친구를 통해 구해준 약초를 달여 먹었는데, 먹은 지 일주일만에 신기하게 낫더라는 것. 나는 그 약초가 궁금해 물었다.

고진하 목사 시인 부부가 사는 강원도 원주 불편당 장작

“그 약초 이름이 뭐라던가요?” 평소 농담을 즐기는 반장은 히죽이죽 웃더니 입을 열었다. 

“허허 참. 이거 천기누설인데! 고 선상만 알고 계슈… 곰보배추라고!” 

“아이구 어르신. 천기누설은요. 많이들 알고 있어요. 구하기가 쉽잖아 그렇지.” 

“허허허…… 그런가!” 

“하여간 다행이네요. 좋은 약을 찾으셔서….” 반장은 기분이 좋은지 내가 오늘 팰 분량의 장작을 절반이나 더 패 주고 갔다. 

우리 가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곰보배추가 기관지 계통의 질환에 특효라는 걸 알고 해마다 그걸 캐서 말려두었다가 겨울이 오면 차로 달여 먹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식구들이 감기로 고생한 적이 없다. 두 해 전 겨울엔 내가 섬기는 교회의 초등학생 아이가 천식이 심해, 한겨울날 곰보배추를 캐기 위해 들판을 헤맨 적도 있다. 곰보배추는 겨울철에는 퍼렇게 언 채로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키가 쑥쑥 자라서 많은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 생명력이 강한 풀이다. 

겨울 동안에는 넓적한 잎을 한껏 펴서 땅을 덮어 햇볕을 독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다. 눈 속에서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어서 설견초(雪見草)라고도 불리는 독한 풀인데, 꽝꽝 얼어붙은 땅에 돋아난 이 풀을 뜯으려면 손발이 얼고, 괭이로 이 풀을 캐다 보면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하여간 내가 캐다 준 곰보배추를 보름쯤 달여 먹고 심한 천식으로 고생하던 아이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우의 아이가 천식이 나았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워서 찾아갔더니, 맨날 콜록대던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며 물었다. 

“그런데 목사님, 왜 풀 이름이 곰보배추죠?” 

자기 병을 낫게 해준 약초의 이름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곰보’라는 말뜻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어릴 적엔 마마라 불리는 이 전염병[천연두]을 앓고 나면 얼굴이 움푹움푹 패이는 곰보가 많았는데, 요즘엔 그런 질병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곰보배추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기 보아라. 식물의 잎이 움푹움푹 얽었지? 그래서 곰보배추라 부른단다.”

천식에 좋은 곰보배추

나는 아이에게 이런 설명을 해주면서도 그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사람이 병을 앓고 난 후에 생긴 아픈 자국을 따 식물의 이름을 붙였는지. 경상도에서는 한 술 더 떠 곰보배추를 문둥이배추 혹은 문디배추라고 부른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이런 호명은 ‘이 문둥이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풀아!’ 하고 풀한테 욕을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무리 못생기고 더럽고 냄새나는 풀이라고 해도 풀한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욕을 하는가. 식물도감을 보면 곰보배추의 정식 명칭은 ‘배암차즈기’다. 꽃이 마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 그렇게 부쳤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욕된 이름으로 불려도 풀은 말이 없다. 한 성서학자는 “세상에 비천한 것을 묘사할 피조물은 없다”(민영진)고 했는데, 조물주로부터 이름 짓는 자격을 부여받은 인간은 앞으로 이름을 붙일 때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사물에 이름 짓는 일을 많이 하는 시인인 나는 그래서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때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인간이 자기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든 곰보배추는 자기를 살리고 남는 화학물질을 아픈 존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준다. 곰보배추는 사람의 기침을 멈추는 게 하는 명약이다. 곰보배추는 독한 기침, 독한 해수, 독한 천식 등 폐와 기관지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최고의 신약(神藥)이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에서도 죽기는커녕 푸른빛을 조금도 잃지 않고, 눈이나 얼음 속에 묻힌 채로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식물의 독한 성질이 독한 질병에 강력한 약성을 발휘하는 것일까. 

곰보배추는 우리나라 논밭이나 물기 있는 들판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잡초다. 내가 사는 마을 둘레길을 걷다 보면 논두렁이나 밭가에서 자주 눈에 띈다. 겨울철에는 푸른 잎을 한껏 펴서 광합성을 하며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되면 줄기가 무성하게 올라온다. 5〜6월 무렵이면 줄기가 30〜90센티미터쯤 자라고 자잘한 잎과 잔가지도 많이 돋아난다. 줄기는 익모초처럼 네모꼴이며 짧고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다. 잎은 타원형이거나 피침형으로 잎 가장자리에 둥근 톱니가 있고, 잎맥에는 짧고 부드러운 털이 나 있다. 

6월이 되면 연한 보랏빛 자잘한 꽃이 가지 끝에 흩어져서 핀다. 꽃은 조그만 종을 수없이 매단 듯 예쁘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귀를 열고 있으면 은은한 풍경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7월이 되면 진한 갈색의 자잘한 씨앗이 익어 바람에 날려 흩어진다. 

씨앗은 겨자씨보다도 작다. 씨앗이 익은 뒤에는 곧 잎과 대궁이 누렇게 말라 죽고, 8월이 되면 아무도 이 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몇 달이 지난 뒤 10월 말이나 11월 무렵 서리가 내려 다른 풀들이 다 말라죽고 나면 그 때서야 파란 싹을 살포시 내밀기 시작한다. 

곰보배추는 이처럼 생명력이 강한 풀이지만 해가 갈수록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농부들이 제초제나 농약을 점점 더 많이 치기 때문이다. 영하의 추위에도 끄떡없이 살아남는 풀이지만 제초제 같은 농약엔 맥을 못춘다. 평생 농사를 해온 시골 노인들 중에도 곰보배추가 귀중한 약초인 걸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러니 다른 잡초들과 똑같이 취급해 독한 농약으로 씨를 말려버리는 것이다. 

내 주위에도 천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알고 죽는 천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병은 알지만 고칠 방법을 몰라 죽는 이들이 많은 것이 천식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만성천식은 불치병처럼 여겨진다. 마땅한 치료약이 없는 것이다. 의사들도 천식은 암보다도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고 한다. 

곰보배추는 뛰어난 효능을 지닌 천연 항생제다. 온갖 항생제를 써도 낫지 않는 감기, 폐렴, 결핵에 곰보배추를 쓰면 쉽게 빨리 낫는다. 인공으로 만든 항생제가 지닌 부작용이 곰보배추에는 없다. 모든 약초에 독이 있다고 하지만 곰보배추는 독성도 없고 부작용도 없다(최진규).

곰보배추

그러나 곰보배추는 뿌리와 잎, 줄기, 꽃에서 모두 비릿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난다. 이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들도 이 풀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벌레들도 먹지 않는다. 이처럼 사랑받기 힘든 냄새를 지니고 있는 풀을 어떻게 약초로 활용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어떤 약초학자의 권유를 따라 이 풀로 막걸리를 담아 먹은 적이 있다. 술은 우리 몸에 침투력이 매우 좋은 음식이다. 이 풀을 한 광주리쯤 뿌리째 캐서 잘 씻어 물을 붓고 푹 달여서 그 달인 물로 막걸리를 담아 먹으면 된다. 우리 경험으론 곰보배추로 두 번쯤 막걸리를 담아 먹으면 오래된 기침이나 천식도 잘 낫는다. 

막걸리 담기가 귀찮으면 유리그릇 같은 데 곰보배추를 넣고 물로 달여 먹어도 된다. 비릿한 풀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약이라 생각하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비릿한 냄새와 맛 때문에 먹기에 불편하면 곰보배추 푸른 잎과 줄기를 흑설탕이나 꿀에 넣고 버무려 6개월이나 1년쯤 두어 발효음료로 만들어 마실 수도 있다. 곰보배추발효음료는 맛이 좋아서 아이들도 잘 먹는다. 감기나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먹이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는 곰보배추가 지닌 이런 놀라운 약효를 경험하면서 체로키족 인디언들이 했던 얘기를 늘 떠올리곤 한다. “식물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스승이자 치유사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식물이 우리의 스승이며 치유사라니! 인디언들은 식물이 인간을 자신의 자손이라 여기기 때문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류에 대해 연민을 느낄 뿐 아니라 인간의 질병에 필요한 치료제를 제공해준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인간을 식물의 자손으로 생각하면, 자연과의 가족적인 유대감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그러면 식물을 이용 가치가 있는 자원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의 연장자나 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관계의 초점이 바뀌는 것이다. 진정 힘을 가진 쪽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흰 눈밭에 푸른빛의 위엄을 간직한 채 생생히 살아 있는 곰보배추 같은 풀들을 보면, 그들이 내 조상이기나 한 듯 엎드려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곤 하는 것이다.

고진하 목사시인 글

이 시리즈는 한겨레신문 휴심정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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