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고전

“고전에 고전苦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이 책에서 만날 고전 중의 고전 10편은 위대한 만큼 난감한 책들이다. 도통 낯선 데다 잔뜩 두툼해서 정 붙이기 힘들고, 남들 앞에서 아예 모른다고 하기도 참 곤란하다.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이 고약한 책들의 매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아니, 도대체 있기는 할까? 서양 고전학자 5인이 이 위대한 책들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고전의 고전

서양 고전학자들이 들려주는 문사철 탄생의 순간 10

강대진 김주일 이기백 이준석 장시은 지음
인문>인문학일반>인문교양 | 420쪽 | 130×205mm | 18,000원
ISBN 978-89-5733-726-4 03000 | 2021년 4월 12일

#고전 #인문학 #문사철 #문학 #역사 #철학 #교양

인문학의 심장, 문사철 최고의 고전 10편을 만나다!
호메로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서양 고전학자들이 풀어놓는 위대한 책들의 이야기

인문학의 또 다른 이름, 문사철文史哲. 이 문-사-철은 서양 문명의 기초를 놓은 고대 그리스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운 대체적인 순서를 가리키기도 한다. 기원전 9~5세기에 쓰인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아테나이 비극은 문학의 원형이자 영원한 모범으로 추앙받아 왔고, 인간이 주역이 된 사건을 다루는 역사가 기원전 5세기 후반에 비로소 탄생했으며, 기원전 4세기에 접어들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철학자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의 토대와 체계를 다졌다.

“고전에 고전苦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이 책에서 만날 고전 중의 고전 10편은 위대한 만큼 난감한 책들이다. 도통 낯선 데다 잔뜩 두툼해서 정 붙이기 힘들고, 남들 앞에서 아예 모른다고 하기도 참 곤란하다.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이 고약한 책들의 매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아니, 도대체 있기는 할까? 서양 고전학자 5인이 이 위대한 책들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고전에 홀린 사람들이 말하는 고전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이 책의 지은이들은 청년 시절 서양 고전에 잔뜩 홀려서 정신없이 읽고 또 읽었던 공통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뒤 서양 고전학과 고대철학 책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번역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고, 여전히 서양 고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정암학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이들이 이렇게 모여서 위대한 책들에 대한 책을 쓴 것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욕심에서가 아니다. 단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고전 중의 고전 10편의 감동과 재미 그리고 의미와 가치를 하나라도 더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이다.

문학의 고전으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그리고 위대한 비극 작가 3인의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 문학 분야의 이준석과 강대진은 호메로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에 단 둘밖에 없는 연구자로서, 이준석이 서사시를 맡고 강대진이 비극을 맡았다. 역사의 고전으로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다룬다. 역사 분야를 맡은 장시은 역시 국내에서는 드물게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이다. 철학의 고전으로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고르기아스》와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두 작품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시학》을 읽는다. 철학 분야의 이기백과 김주일은 플라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정암학당을 이끌었고, 이끌고 있으며 고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이기백이 플라톤을, 김주일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맡았다.

여전히,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아름답다
인간 존재의 비극성에서 비극은 탄생한다

“여전히,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아름답습니다. 시인의 섬세한 계획과 치밀한 이야기 구조에서 그 각별한 예술성은 솟아납니다.” _이준석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여전히 인기 있는 문화 콘텐츠이다. 대중매체에서 잊을 만하면 재생산되는 덕에 대강의 줄거리도 잘 알려져 있고,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와 전략의 천재 오뒷세우스의 이미지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특출난 무력과 지혜를 지닌 멋진 영웅은 모든 영웅 서사시에 등장하지 않나? 그런데 왜 유독 이 두 작품만 서양 문학사의 영원한 고전으로 추앙받아 왔을까? 다른 영웅들보다 더 힘세고 똑똑해서?

이 난처한 물음에 답하려면,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 두 영웅으로부터 기원전 9세기를 살았던 호메로스라는 시인에게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무력보다 더 강한 정서의 힘을 아킬레우스에게 부여하고, 섬세한 계획에 의해 한 걸음 한 걸음, 그 난폭하게 분노하는 영웅을 부드럽게 연민하는 인간으로 돌려놓는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 그 시인은 또한, 아들 텔레마코스(‘먼 곳에서Tele-’ ‘싸워준machos’ 텔레-마코스)의 신비로운 여행을 통해,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 망각/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영웅 오뒷세우스의 눈물겨운 부활을 준비한 바로 그 사람이다.

“때론 장엄함, 때론 감동, 때론 부조리로. 아테나이의 걸출한 세 비극 작가들은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_강대진

그리스 비극 작품은 33편이 온전하게 전해지고, 이 모두가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단 세 사람의 작품이다. 그런데 위대한 비극 작가 3인이 한 번씩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가장 비극적인, 그래서 매혹적인 주제가 있다. 바로, 트로이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었던 아가멤논 가문의 이야기이다. 전쟁이 끝나고 귀향한 아가멤논을 아내와 그 정부가 살해하고, 그로부터 10년 뒤 딸 엘렉트라와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막장드라마’의 원조 격인 이 끔찍한 사연을, 아이스퀼로스는 《오레스테이아》라는 3부작으로,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는 각각 《엘렉트라》라는 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라지만, 어머니를 죽인 딸과 아들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작품 속에서 세 작가는 이 남매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무죄일까? 유죄일까?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상징하는 이 저주받은 가문의 이야기를 이 걸출한 세 작가가 각각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신들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역사로

“신들이 퇴장하고 인간이 주역인 사건을 다루는 새로운 형태의 장르가 서서히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역사의 탄생이었습니다.” _장시은

서사시와 비극에서는 신들이 인간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이제 신들이 퇴장하고, 최초의 역사가 두 사람이 기원전 5세기에 앞다투어 등장했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와 ‘비판적 역사의 아버지’ 투퀴디데스이다. 이들에게 역사는 ‘탐구’였다. 역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history의 뿌리도, 이들이 쓴 역사책의 제목이자 탐구를 일컫는 그리스 말인 ‘히스토리아historia’에 뿌리를 두고 있다(his+story가 아닌!). 헤로도토스에게는 페르시아 전쟁이, 투퀴디데스에게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대위기의 시간이 탐구의 대상이었다. 위기의 시간에는 인간 본성과 우연한 일들, 그리고 권력의 논리가 온전히 제힘을 발휘하며 파국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까닭이다. 최초의 역사가들이 그려내는, 신들 없는 인간의 서사시이자 비극으로서의 장대한 역사가 펼쳐진다.

최초의 정의론자 플라톤의 꿈 ‘아름다운 나라’
거의 모든 것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한 개론

“수천 년 전, 여성도 공직을 맡아야 하고 공직자에게는 사유재산을 금해야 한다고 믿은, 시대를 멀찌감치 앞서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_이기백

플라톤은 전쟁에서의 패배와 정파들 간의 내전이라는 정치적 혼란의 시대를 살았고, 시대는 그의 삶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특히 청년 시절에는 큰 절망감을 안겨주는 사건을 겪었는데, 큰 기대를 걸었던 민주정 시기인 기원전 399년에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지혜로우며 가장 정의로운 사람”인 스승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처형을 당한 것이다. 그 충격으로 플라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던 꿈을 접고, 철학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철학을 통해서도 여전히 아테나이의 정치적 악순환과 암울한 현실을 타파할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자 한 것이다. 《고르기아스》에서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그 가능성을 탐구했고, 마침내 그 결실로 《국가》에서 철학자들이 통치하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이상국가의 얼개를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 뒤 이 ‘아름다운 나라’는 때론 경탄의 대상으로, 때론 지독한 비난을 당하며 정치철학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철학자만이 통치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아름다운 나라’는 과연 말 그대로 아름다고 정의로운 나라일까?

“우리의 행복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숫자 2는 뚫어지게 쳐다봐도 꿈쩍 않지만, 내 선택에 따라 내 삶과 세상은 좋아집니다.” _김주일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학문을 분류했던 철학자이다. 그리고 그 분류에 따라 거의 모든 학문 영역을 탐구했다. 특히 그는 이론학과 실천학을 구분하는데, 이론학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대상이 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한 학문이다. 수학이나 자연과학을 떠올려보자. 예컨대, 숫자 2를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숫자 2가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 우리가 어떻게 행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에 대한 학문이 실천학이다.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바뀌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바뀐다.

명저 중의 명저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이렇게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 즉 행복을 다룬다. 누구에게나 행복은 궁극의 목적이다.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지 무엇을 하기 위해 행복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또 한 권의 명저 《시학》도 시를 짓는 기술에 관한 책이지만, 결코 행복과 무관하지 않다. 속된 말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예술적 체험은 삶의 진실을 통찰하는 각별한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거의 모든 지식을 탐구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조건으로 또 어떤 것들을 꼽고 있을까?

 

강대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플라톤의 《향연》 연구로 석사 학위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및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그랜드투어 그리스》, 《옛사람들의 세상 읽기, 그리스 신화》,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 오뒷세이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읽기》, 《그리스 로마 서사시》, 《비극의 비밀》, 《잔혹한 책 읽기》, 《신화와 영화》, 《신화의 세계》,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아르고호 이야기》,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오이디푸스 왕》,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 《루키아노스의 진실한 이야기》 등이 있다.

김주일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파르메니데스 철학에 대한 플라톤의 수용과 비판〉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와 군산대학교에서 글쓰기와 고전 읽기 관련 강의를 하는 한편으로 정암학당 연구원이자 학당장으로 재직하면서 서양고대철학의 연구와 번역에 힘쓰며 고전강좌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공저), 《서양고대철학 I》(공저),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I》(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아빠와 함께 떠나는 철학여행》(공역),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단편 선집》(공역),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 II》(공역), 《에우튀데모스》, 《파이드로스》, 《편지들》(공역), 《법률 1, 2》(공역) 등이 있다.

이기백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필레보스》를 중심으로 플라톤의 윤리학과 우주론 및 방법론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정암학당 이사이며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플라톤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공저), 《철학의 전환점》(공저), 《서양고대철학 1》(공저), 《아주 오래된 질문들: 고전철학의 새로운 발견》(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역), 《히포크라테스 선집》(공역), 플라톤의 《크라튈로스》(공역), 《크리톤》, 《필레보스》, 《법률 1, 2》(공역) 등이 있다.

이준석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 연구로 석사 학위를,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행복에 이르는 지혜》(공저), 《동서양 고전의 이해》(공저) 등이, 주요 논문으로는 〈오이디푸스 튀란노스: 두 목자에 대한 해석〉, 〈아레스를 닮은 메넬라오스: 일리아스의 내적 포물라 연구〉, 〈호메로스의 휴머니티〉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있다.

장시은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아이스퀼로스의 《에우메니데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투퀴디데스의 《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안양대학교 HK+ 동서교류문헌연구 사업단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있다. 주로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 역사 문헌을 연구하고 번역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아테네의 위기와 페리클레스 연설〉, 〈뮈틸레네 논전에 나타난 아테네 민주정과 제국주의〉, 〈테스모포리아 축제와 아리스토파네스의 『테스모포리아주사이』〉, 〈『탄원하는 여인들』과 아테네 민주정〉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공역)이 있다.

 

책을 펴내며_위대한 책은 위대한 악이다

I 문학
1장 《일리아스》 호메로스
진노하는 영웅, 연민하는 인간_이준석
2장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아버지의 모험, 아들의 모험_이준석
3장 《오레스테이아》 아이스퀼로스
저주받은 가문 혹은 인간 구원의 드라마_강대진
4장 《엘렉트라》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장엄에서 감동으로, 감동에서 부조리로_강대진

II 역사
5장 《역사》 헤로도토스
역사는 ‘탐구’다_장시은
6장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인류를 위한 영원한 자산_장시은

III 철학
7장 《고르기아스》 플라톤
부정의하거나 무절제해도 행복할 수 있을까_이기백
8장 《국가》 플라톤
개인의 정의와 나라의 정의_이기백
9장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아닌 것_김주일
10장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성숙과 도약으로 빛나는 예술의 시간_김주일

책을 쓴 사람들

 

이 책은 책에 대한 강의를 책으로 담은 책, 그러니까 책에 대한 책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강의로, 책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이야기하는 책을 보다 많은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볼까요? 불안해서 누군가가 뒤를 잡아주어야 조심스레 페달을 돌릴 수 있었지요. 우리는 자전거의 뒤를 잡아주는 이 누군가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하지만 결국 남이 잡아주는 자전거는 재미가 없습니다. 본인이 자기 발로 쌩쌩 달려야 재미가 있죠. 그렇게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이 위대한 고전들을 읽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우리는 할 뿐입니다.
책을 펴내며, 7~8쪽

아킬레우스의 기준은 희랍군의 관습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독특하고, 비범한 인물입니다. 전쟁 서사시에서 영웅의 비범함이란 으레 무력에서 비롯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정서에 있습니다. 이 시는 여신에게 아킬레우스의 진노를 노래해달라고 청하며 시작합니다.

 

“노여움을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카이아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고, / 그 많은 영웅들의 강인한 목숨을 하데스로 떠나보내었으며, / 그들 자신을 온갖 개 떼와 새 떼의 먹이로 만든 / 그 저주받을 것을! (…)”
1장 《일리아스》 호메로스, 17쪽

오뒷세우스가, 고립된 아킬레우스보다도 더욱 고립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갇혀 있는 세계는 그가 돌아와야 할 세계와 차원이 달라요. 인간 세계에서 떨어져 나간 채, 저 너머의 세상에 갇혀 있어요. 시인은 그를 저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되돌려놓아야 합니다. 제의적인 해결책 말고는 없지요. 그것이 텔레마코스의 여행입니다. 그의 제의적 여행을 통해, 아들은 영웅의 귀환에 요구되는 조건들을 모두 해결해냈어요. 그는 저세상으로 건너가 포세이돈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망각/죽음으로부터 오뒷세우스를 일으켜 세웁니다. 과연 고귀한 명성을 얻을 자격이 있는 젊은이입니다. 그런 까닭에 텔레마코스의 여행은 이 시 자체가 진행될 수 있는 진정한 원동력입니다.
2장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72쪽

또한 그 바탕의 상상력이 출중합니다. 복수의 의무와 친족살해 금기 사이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피의 복수의 악순환을 벗어날 길이 없을 때, 이전에 없던 발상으로 새로운 제도를 창안했습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추격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질 찰나, 그동안 바닥만 내려다보던 시선을 위로 향하고, 거기에 또 다른 차원, 수직의 방향이 있음을 발견한 듯, 돌연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 위기를 벗어난 듯, 깨달음의 짜릿함과 후련한 해방감이 있습니다. 인간들 모두가 제 손으로 직접 정의를 세우겠노라 하면 사회는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이 작품은 공적인 제도에 복수의 권리를 양도하고, 사적 구제를 피하자는 발상을 제시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형법의 기본정신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인류의 정신이 도약하는 그 놀라운 순간을 우리 앞에 놀랍게 재현해주었습니다. 대단한 걸작입니다.
3장 《오레스테이아》 아이스퀼로스, 124쪽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좋은 작품이라면 보통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용, 형식, 그리고 의미입니다. 한국에서는 대개 좋은 작품을 소개할 때, 대충의 내용과 작품의 의미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의미만 놓고 보자면 거의 모든 작품이 똑같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이런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운명에 대한 심오한 통찰.’ 그리고 이건 형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유려한 문체’라는 평가도 자주 보입니다. 하지만 유려하지 않고서 좋은 작품이 어디 있을까요? 또 인간과 운명을 깊이 살피고,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시대를 넘어서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는 《돈키호테》나 소포클레스 비극이나 다 똑같습니다. 그러니 앞에 한 말들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입니다. 저로서는, 형식에 주목하지 않으면 결코 작품의 진수를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4장 《엘렉트라》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133~134쪽

이 작품은 맨 마지막까지도 감정을 차단하고 분산시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고 계속 뜻밖의 사건이 이어집니다. 주인공도 다른 데서 보던 전형적 인물이 아닙니다. 관객들의 시선을 중심 흐름에서 벗어나게 하고, 계속 토론과 설명이 등장하며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천재의 작품입니다. 여기서는 감동을 찾지 말고 에우리피데스가 얼마나 현대적인지 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구슬을 쭉 꿰어서 목걸이처럼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입니다. 그런데 이제 현대에 이르러 그 목걸이의 끈을 끊고, 구슬을 부숴서 구슬의 깨진 한쪽 면이 반짝이는 순간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에우리피데스가 그런 경향의 시조입니다. 물론 아이스퀼로스도 소포클레스도 훌륭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이들과는 좀 다른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면모에 주목하고, 즐기기를 바랍니다.
4장 《엘렉트라》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189쪽

또 하나의 주제는 그리스인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인 ‘오만hybris’에 대한 ‘징벌nemesis’입니다. 한 사람이나 한 나라가 번영하거나 과도하게 무언가를 갖게 되면 쉽게 오만해집니다. 그리고 오만함은 반드시 징벌의 대상이 된다고 그리스인들은 믿었습니다. 번영은 그리스어로 ‘올보스olbos’라고 합니다. 인간이 번영하면,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면 오만해지고, 오만해지면 눈이 멀어버립니다. 이렇게 정신이 눈먼 상태를 미망, ‘아테ate’라고 합니다. 아테에 빠지면 판단도 잘못 내리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결국 징벌을 당합니다. ‘네메시스nemesis’라는 개념입니다. 이런 패턴은 많은 그리스 비극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작품에서뿐 아니라, 인간의 실제 역사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번영-오만-미망-징벌’의 수렁에 빠지고 마는 수많은 개인과 나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5장 《역사》 헤로도토스, 219~220쪽

아테나이를 “헬라스의 학교”로 만든 그 아테나이의 힘이 끝내는 아테나이를 파멸로 몰고 갑니다. 아테나이가 가진 참주적 지배력은 아테나이를 가장 강력한 해상제국으로 만들었으나, 그 지배력의 본성이 아테나이에 재앙으로 되돌아왔던 셈입니다. 그리고 아테나이 민주정의 핵심인 아테나이 민중과 민회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아테나이 민주정의 쇠락을 가져옵니다. 민중의 끝없이 팽창하는 욕망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궁극적으로 비극적인 역사적 파국을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투퀴디데스가 바라본 아테나이의 이런 현실은 과거 아테나이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젠가 다시 인간 조건에 따라 앞으로의 일들이 그런 식으로 반복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며, “사람의 본성이 동일한 한, 더 가혹하든 좀 더 견딜 만하든, 그리고 각각의 일들이 놓이는 변화들에 따라 양상의 차이가 있어도, 일어나는 일이 생기고 또 계속하게 일어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6장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256쪽

사실 일상적으로도 욕구 충족이 밑도 끝도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됩니다. 욕구의 충족에 따른 쾌락은 일시적이고 쉬이 사라집니다. 취업 준비생을 떠올려볼까요. ‘취업만 하면 진짜 행복할 텐데!’ 그런데 막상 취업을 하면 어떨까요? 취업이 더 이상 기쁨이나 행복을 안겨주지 않습니다. 월급이 올라가면 행복할까요? 막상 월급이 오르면 더 오르길 바랄 것이고, 혹 돈에 대한 욕심이 약해진다 해도 또 다른 욕심이 계속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더 나은 상황에 도달하면 거기에 금세 적응하고 당연시하게 되고 새로운 기대가 생기는 과정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돈, 건강, 명예, 권력 등 외적인 조건들이 나아지면 주관적 기대가 상승하고 이전의 조건으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합니다. 욕구 충족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계속 채워나가야 하는데 욕구는 한없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7장 《고르기아스》 플라톤, 290쪽

그가 보기에 사유재산의 불허만으로는 미덥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혈연이라는 것도 탐욕과 부패의 강력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호자들은 서로 가족을 공유해야 합니다. 내 부인도, 내 남편도 없고, 내 자식도 없습니다. 사적인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이다”라는 잠언대로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는 공유를 통해서만, 탐욕으로 인한 나라의 분열과 분쟁을 제거하고 ‘하나의 나라’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입니다.
사실, 앞서 수호자들이 ‘처자’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부정확한 표현입니다. 플라톤의 제안은 수호자인 남편들과 수호자인 부인들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놀랍지요. 여성도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수호자로서 나라를 경영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도 이 일을 하려면 남성과 똑같이 통치자 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여성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도 주어집니다.
8장 《국가》 플라톤, 334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행복의 윤리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즐거움과는 동떨어진 덕 있는 행동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즐거움이 없는 행동은 덕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단지 흉내에 불과하지요. 아까 용기를 예로 들어 중용에 대해 설명했죠? 부족하면 비겁이 되고 너무 과하면 만용이 된다고요.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 이게 중용의 덕입니다.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아이들을 매섭게 야단쳐야 할 때도 있고, 한없이 온화하게 대할 때도 있지만, 늘 같은 마음이잖아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식으로 중용을 찾아가는 겁니다.
9장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363~364쪽

예를 들자면,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괴물은 남성의 성기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굉장히 끔찍한 형상을 한 괴물인데, 인간들은 이런 끔찍한 형상도 잘 모방하면 즐거움을 느낍니다. 인간은 모방을 통해서 배우고 모방된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고 했는데, 이 두 가지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 즐거운 이유는 보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건 그 사람을 그린 것이로구나’ 하는 식으로 그림 속 각각의 사물이 무엇인지 추론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추론’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그림을 보면서 사고한다는 것, 그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하고 알게 되고 지각하는 것이 즐거운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인간은 누구나 날 때부터 알기를 좋아한다”고도 말합니다. 득이 되는 것도 없는데 인간은 구경하기를 좋아합니다.
10장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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